[수요칼럼] 근로시간 논란에 대한 고찰
[수요칼럼] 근로시간 논란에 대한 고찰
  • 승인 2023.04.0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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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원 ㈜데씨제 대표, 인간공학박사
최근 주 69시간 근로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주 근로시간의 증가가 기업의 노동 유연성과 효율성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과 근로자의 장시간 노동에 따른 폐해와 문제점 등이 심각할 수 있다는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모양새다. 개인적으로 볼 때 모두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근로시간 증가가 주는 장점과 단점은 분명히 존재하며, 이는 산업의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다양한 산업과 직무 그리고 각기 다른 노동현장을 하나의 근로시간 법을 통해 효과적으로 통제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정 근로시간을 어떻게 규정하는 가는 우리나라의 고용시장과 노동생산성 더 나아가 국민의 생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고 또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법정 근로시간 규제가 미치는 영향들에 대해서 고찰해보고자 한다.

먼저 우리나라의 법정 근로시간 규제는 근로자들의 실제 근로시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2018년 7월부터 주당 근로시간 52시간(법정시간 40시간+연장(휴일)한도 12시간)으로 주 68시간에서 법정 근로시간 단축을 실시하였다. 이를 기준으로 실제 근로시간 추이를 살펴보면, 2018년 월 평균 163.9시간이었던 근로시간은 2022년 158.7시간으로 약 5.2시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통계치는 우리나라의 법정 근로시간이 실제 근로시간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법정 근로시간이 현행보다 증가하였을 때, 근로자의 실제 근로시간이 증가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우리나라는 2021년 기준 실제 근로시간이 1,915시간으로 OECD 국가 중 5번째로 높은 국가이다. 우리나라보다 근로시간이 긴 나라들은 멕시코(2,128시간), 코스타리카(2,073시간), 콜롬비아(1,964시간), 칠레(1,916시간)의 중남미 국가들뿐이다. 이들 국가들은 우리나라와 산업구조나 기술력에 있어 큰 차이가 있다. 산업이 고도화되고 기술이 발달할수록 사람이 직접적으로 투입되는 일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실제 근로시간이 세계적으로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법정 근로시간 증가는 심각하게 고민해 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실제 근로시간이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법정 근로시간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많다고 할 수는 없다.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와 같은 주 40시간을 법정 근로시간으로 그리고 초과근무 상환 시간을 월 45시간, 연 360시간 허용함으로써 우리나라보다 주당 약 0.7시간 정도 적게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노사가 협의를 하면 연 360시간(1개월 100시간 이내)을 추가 근로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따져보면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의 법정 근로시간 규제를 실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실제 근로 시간은 연 1,607시간으로 우리나라보다 308시간이 더 적다. 더욱이 EU는 연장근로를 포함한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78시간(연장근로는 최대 4개월)으로 권고하고 있으므로, 우리나라의 법정 근로시간이 결코 높은 수준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결국 우리나라에서 법정 근로시간이 실제 노동시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법정 근로시간을 어떻게 규제하는가가 우리나라의 근본적인 노동환경과 문화를 바꿀 수 있는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더욱 중요한 것은 법정 근로시간보다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기업문화와 노동현실에 관한 것이다. 만일 법정 근로시간이 늘어나서 실제 근로시간이 늘어난다면 우리나라의 근로와 노동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후진국 수준에 머물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또한 실질 근로시간이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인 대한민국에서 세계적 추세와는 전혀 다르게 법정 근로시간을 늘이는 정책을 굳이 시행하려고 하는 이유도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더욱이 관련 연구들 중 다수는 근로시간단축이 생산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하고 있다.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법정 근로시간을 늘이느냐 줄이느냐를 두고 고용주와 근로자, 여당과 야당이 다툴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대한민국에 맞는 근로문화와 정책을 만들어갈까에 대한 고민과 논의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근로시간 개편이 과연 대한민국의 노동환경을 바꿀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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