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놀이 동산에서 선 긴 줄
[수요칼럼] 놀이 동산에서 선 긴 줄
  • 승인 2023.04.11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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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광 대구경북소비자연맹 정책실장·경제학 박사
빈부격차 문제를 얘기할 때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을 주로 인용한다. 돈이 없는 장발장은 가난과 배고픔, 그리고 가엾은 조카들을 위해 빵 한 조각 훔친 죄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그는 수차례 탈출을 시도한 죄로 19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장발장은 빅토르 위고의 따뜻한 표현으로 인해 여전히 대중들로부터 사랑 받고 있다.

얼마전 SBS '집사부일체'라는 프로그램에서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는 돈과 권력에 얽힌 뇌 과학의 비밀을 파헤치면서 놀이동산과 공항의 페스트 트랙을 언급하였다. 정 교수는 미국에서 어떤 사람이 (애플사의 기기를 사기 위해) 직접 가지 않고 로봇을 보내 줄을 서게 한 기사를 읽고 난 후 '돈으로 시간을 사는 것은 과연 정당한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 토론에 참석한 김동현 씨가 놀이동산, 어린아이, 병원 응급실 등 감성적인 단어를 언급하였으며, 토론 참가자들은 "긴급, 위험 상황에서는 돈이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입을 모았다.

현실에서는 부족한 상품을 효율적으로 나눠주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해왔다. 시장기구에 맡기면 상품의 가격이 올라갈 것이고, 가격을 묶으면 선착순으로 판매해야 한다. 상품의 가격을 올리면 소비자 중 일부는 그 상품이 꼭 필요하지만 가진 돈이 부족해 소비할 수 없게 된다. 반면 긴 줄을 세운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긴 줄을 서게 되면 시간에 대한 기회비용이 발생하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의사나 변호사의 1시간에 대한 기회비용과 직장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의 1시간 기회비용에는 큰 차이가 날 것이다.

그런데 놀이동산에서 긴 줄을 서는 것을 연구한 학자가 있다. 폴 로머는 미국 로체스터 대학 교수들과 점심식사를 하면서 나눈 대화에서 디즈니랜드에 가면 긴 줄을 서야 한다는 것이다. 디즈니랜드에 입장료만 지불하고 입장하게 되면 놀이기구는 모두 무료로 탈 수 있다. 이에 따라 놀이기구를 타려는 사람들이 그처럼 긴 줄을 섰던 것이다.

이처럼 놀이동산이나 스키장에는 1일 이용권을 구매하게 되면 놀이기구나 리프트를 얼마든지 탈 수 있으며, 스키 리프트를 타기 위해 긴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놀이공원이나 스키장 운영자는 왜 가격 조정을 통해 긴 줄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을까? 리프트를 탈 때마다 돈을 받거나 고객이 붐비는 성수기에 요금을 더 많이 부과하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베로와 로머는 스키장 운영자들은 수요가 높을 때는 이미 가격을 올리곤 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소비자는 스키 리프트 1일 이용권을 구매하지만 실제 지불한 비용은 하루 사용료가 아니라 한번 탈 때마다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리프트를 한번 탈 때마다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스키장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스키를 타러 왔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면 리프트 하루 사용료가 10달러인 데 스키장 이용객이 너무 많아 리프트를 하루에 다섯 번밖에 타지 못했다면, 한번 타는데 지불한 비용은 2달러가 된다. 반대로 날이 너무 춥거나 습기가 많아 스키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 하루에 리프트를 스물 번 탈 수 있다면 리프트를 한번 타는데 50센트라는 비용을 지불한 셈이다.

스키장 운영자는 스키 리프트를 타기 위해 긴 줄을 서게 하는 것이나 리프트 이용료를 올리는 것이 전체 수입 측면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다. 왜냐하면 스키장 운영자는 리프트 이용료를 동일하게 받지만, 스키장 이용객 입장에서는 그날 스키장을 찾는 이용객의 수에 따라 부담하는 실제 비용은 자동적으로 조절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장의 반응은 경제학자들 보다 훨씬 빠르게 나타난다. 지금은 인터넷을 구매하지만 현장에서 티켓을 구입할 때는 영화표, 열차표, 인기 있는 스포츠 경기 티켓을 구매하기 위해 긴 줄을 서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었다. 긴 줄은 서는 사람은 여유 시간이 많은 가족이 담당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르바이트를 고용하거나, 꼭 필요한 경우 암표도 거래했던 것 같다.

그런데 돈으로 타인의 시간을 사는 것이 도덕적인냐?라는 질문, 그리고 돈과 권력이 인간의 마음과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호기심이 높다. 시간이라는 상품은 가치재이지만 어떻게 활용하는냐에 따라 큰 차이가 나며, 돈이라는 상품을 도덕이라는 주관성에 어떻게 연결시킬지 미지수다. 그런데 자본주의라고 해서 모든 상품을 다 거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거래할 수 있는 상품이 될 수 없다. 또한 부자라고 해서 도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지극히 편협된 것이다. 그래서 전제 조건이 비약된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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