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간신이라는 말
[대구논단] 간신이라는 말
  • 승인 2023.04.16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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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하 변호사
요즘 정치권에서 설화로 인해 이름이 오르내리는 한 정치인에게 세간의 비난이 쏠리고 있다. 늘 청산유수처럼 말을 하던 사람이라서 스스로는 영리하게 말을 했다고 생각했을지 몰라도 국민은 그리 어리석지 않다,

영특하고 머리 회전이 빨라 전략통으로 알려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백 마디 말보다 때로는 침묵이 더 묵직한 울림을 준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 텐데 연속해서 실언으로 설화를 일으켜 안쓰러운 마음이다.

여당 지도부의 일원으로 야당을 상대로 최전선에서 잘 싸울 것이라는 국민과 당원의 기대를 저버리고,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자신의 정치생명도 위태롭게 만드는 것을 보면, ‘말(言)이라는 것은 두 번 생각한 후에 천천히 입을 열어야 비로소 말이 된다’라는 옛 어른들의 가르침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말이란 본래 침묵을 통해서 더 깊어지는 법이다.

설화도 문제이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정치권에서 상대방에 대해 거칠고 모진 말들이 횡행한다는 것이다. 최근에 정치권에서는 ‘간신(奸臣)’이라는 말이 회자하곤 했다. 지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모 후보가 윤석열 대통령의 핵심 관계자들을 지칭하는 소위 ‘윤핵관’들을 향해 간신배들이라고 격하게 비난하였고, 이준석 전 당 대표 시절에 부대변인이었던 사람은 국회 상임위원장을 맡은 같은 당 중진의원이 국회 상임위에서 공무원에게 반말로 호통을 쳤다는 이유로 ‘삼성가노형 전형적인 정치 간신’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국민의힘 상임고문 한 사람은 국민의힘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충고했다는 이유로 모 변호사를 비난하자 간신이라고 언론에서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간신은 사전적으로는 간사스러운 신하를 지칭하는 말로, 그 마음가짐이 신하로서 가져야 할 바른 마음을 팽개치고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온갖 수단을 써서 군주나 자신이 모시는 주군을 해롭게 하는 자를 말한다. 한(漢)나라 말기 학자 유향(劉向)이 지은 설원(說苑)에는 나라를 어지럽혀 결국은 망하게 하는 해로운 신하, 즉 육사신(六邪臣)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주변의 눈치만 살피는 구신(具臣), 군주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아첨만 하는 유신(諛臣), 사리사욕을 위해 공명정대함을 버리는 간사한 간신(奸臣), 남을 짓밟고 올라가기 위해 군주에게 거짓을 고하는 참신(讒臣), 개인적인 이익만 추구해서 반역하거나 불충하는 적신(賊臣), 나라를 망하게 하며 적을 이롭게 하는 망국신(亡國臣)으로 구별했다. 이러한 육사신(六邪臣)이 넓은 의미의 간신일 것이다.

역사상 유명한 간신으로는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 환공에게 자기 아들을 요리해서 바친 ‘역아(易牙)’ 비롯해서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휘두르는 경우를 일컫는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고사를 유래시킨 진나라 시황제 때의 환관 조고, 당나라 대종 때의 대표적인 탐관오리였던 재상 원재, 송나라 때 악비를 모함하여 죽인 진회, 우리나라 조선 시대의 을사오적인 이완용 등이다. 이렇듯 권력의 주변에는 늘 간신이 존재했었다.

간신과 충신의 잣대는 누가 권력을 잡았느냐에 따라 평가가 바뀌기도 하지만, “천하를 다스림에 있어 군자가 여럿이어도 부족함이 있지만, 나라를 망치는 데는 소인 한 명이면 족하다”라는 옛말처럼 동서고금의 역사는 우리에게 간신이 득세한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역사 앞에 홀로 선 권력자는 늘 외롭고 두려움을 느낀다. 간신은 이러한 권력자의 두려움, 외로움을 이용해서 그럴듯한 말과 충성스러운 얼굴로 본심을 숨기고 자신의 이익과 권력을 지키기 위한 처세를 한다.

지나온 역사와 달리 역사라는 참고서가 없는 현실에서는 충신과 간신을 구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간신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함의(含意)를 알고 있다면 함부로 상대방에게 할 수는 없다고 본다. 정치인의 말은 일반인의 말과 달리 국민에게 끼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생각하면 시정잡배처럼 함부로 내뱉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말에는 그 사람의 품격이 드러나고, 됨됨이가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것이 한 가지 잣대로만 판단할 수 있는 쉬운 일이 아닐뿐더러, 자신이 정한 기준이 절대적이지도 않다고 생각해서, 나이가 들수록 말 수를 줄이고 더 많이 들으라고 가르쳤다.

우리는 주변에서 늘 타인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을 보곤 한다.

자신에 대한 평가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남에 대한 비난과 비판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가 가진 권력의 크기나 위치의 높고 낮음을 떠나 아직 인격적으로 부족함이 있는 사람이란 느낌이 든다. 상대방을 상하게 하는 말은 언젠가는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말은 때로는 곡선처럼 구부려질 수도 있어야 상대방을 껴안을 수 있다.

“말이라는 악기를 아름답게 연주하지 않고 오로지 뾰족한 무기로만 사용하는 것은 아닌지를 종종 가슴에 손을 얹고 돌아볼 필요가 있다”라는 시인(詩人)의 말처럼 필자도 그동안 날카로운 혀로 남에게 상처를 준 적이 없는지 되돌아보고 있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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