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강 르네상스 시원을 찾아서] 금호강은 하늘과 땅이 자연스럽게 만든 거문고
[금호강 르네상스 시원을 찾아서] 금호강은 하늘과 땅이 자연스럽게 만든 거문고
  • 김종현
  • 승인 2023.04.18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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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금학루(琴鶴樓)와 금호범주(琴湖泛舟)가 금호를 확정
도관찰출섭사 김요 금학루 기문
“이제 금씨제후가 읍에 부임했고,
누각의 모양이 학이 춤추는 듯해
세속의 먼지 털 한 올까지 다 털어
마음 거리낄 것 없는 쾌상한 형상”
금호강, 중생대 백악기 화산폭발로 형성
생사기로 처했던 공룡들, 경상호수에
마지막 백악기 공룡 낙원으로 불려
잦은 지각변동으로 오늘날 금호가 돼
금학루풍류
금학루에 풍류가 흐른다

◇금학루의 기문을 쓴 김유

1444년(세종26)에 금학루(琴鶴樓, 오늘날 중구 대안동 50번지)가 건립되었다. 위치는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에선 “대구도호부의 객관(達城館)에서 동북 모퉁이에 있다”고 적혀 있다.

이곳에 있던 금유(琴柔)의 시는 “백성을 다스리는데 몸은 피곤하겠지만, 누각에 오르니 시야가 확 트이니. 금호강에 새로움만이 가득하게 흐르네. 관청 기풍은 청렴결백(淸廉潔白)이라니. 감히 거문고 소리를 타듯이. 벼슬살이의 영광도 이와 과장됨이 아니리라. 삼 년 동안 조그마한 공적이라도 없을까만. 붓을 잡았으니 속내만을 읊을 뿐이라네.”라고 했다.

경상도 도관찰출섭사(慶尙道都觀察黜涉使) 졸재(拙齋) 김요(출생미상~1455, 재임1446~1447)가 금학루의 기문(記文)을 썼다. “옛사람들은 사물의 이름을 지을 땐 그곳 지명에 따르거나 사람의 이름을 따서 짓게 된다. 이제 금씨제후(琴候, 琴柔)가 읍에 부임했고, 금호(琴湖)의 이름이고 보니, 이 누각의 모양이 학이 춤추는 듯하여 금학루(琴候位政而邑有琴湖之名樓繪鶴舞之狀登玆樓也)라고 하니. 세속의 먼지 털 한 올까지 다 털어버리고, 마음에 거리낄 건 하나도 없는 쾌상(快爽)한 기운과 형상이로다.”라고 적었다. “거문고 소리 은은하게 화합이라도 하듯이. 남풍이 불어 세상 시름을 헤쳐버리는 즐거움이 있도다. 일금일학(一琴一鶴)이니 그 이름이 금학루라고 함이 옳도다.”라고 금학루 이름을 풀이했다.

또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은 ‘금학루의 밝은 달(鶴樓明月)’시에서 “한해에도 열두 번이나 달을 보겠지만. 한가위 둥근달은 더욱 둥글게 보이네. 한 번 더 긴 바람이 구름을 쓸어 가버리니. 온 정자에 먼지 털 한 오리라도 붙어 있겠는가?”고 읊었다.

강진덕(姜進德)은 1427년(세종9) 12월 6일에 도사봉훈랑전농판관(都事奉訓郞典農判官)으로 대구에 왔다가 1428년(세종10) 12월에 병조정랑으로 승진해 갔던 분이다. 그는 “땅이 넓다 보니 사람도 많이 살구만. 길손의 눈에 확 띄게 높은 곳이고 보니. 멀리 있는 백학(白鶴)도 능히 분명하게 보이겠는데. 구름도 거문고 소리에 맞춰 오락가락, 달마저 이에 같이해 밝기만 하다네.”

1530년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선 일본 승려 경양(日僧慶陽)이 지었다는 “단청은 그림을 그린 듯하고. 들보는 날아갈 듯한데. 물 섶에선 여윈 학 그림자가 보이도다. 붉은 난간 굽은 데에선 탄금의 여운이 들리는 듯하네. 청풍명월은 천 년 전이나 그 모양 그대로인데. 흐르는 물 높은 산은 옛 마음을 그대로세.”라는 시가 게재되어 있었다. 대구부읍지(大邱附邑誌, 1899년 5월)에서는 일본 승려 용장(日本僧龍章)이 지었다는 시가 일본 승려 경양이 지은 시와 같다. 여기서 용장(龍章)이란 불경의 별칭으로 범어(산스크리트어)로 쓴 불경이 마치 용 그림처럼 꿈틀거리는 형상을 한다고 그렇게 불렸다(經卷之異名也.其梵文之形,如龍蛇之蟠旋,故云)고 풀이하고 있다.

한편 강진덕의 ‘일승용장 금유(日僧龍章 琴柔)’라는 글이 향토사가들 사이 나돌고 있다. 뭔가 분명히 끊어 읽기 혹은 뛰어쓰기에 오류가 발생했다. 만일 강진덕의 일승용장 금유라는 시가 있다면 대구부읍지에서 나오는 일승용장(日僧龍章)의 시는 없어야 한다. 강진덕은 금유의 후임자로 왔던 위정자이기에 일승용장금유라는 해석은 ‘태양처럼 맘 편안하시게 하시며, 용 그림을 펼치시는 금유(琴柔)’라는 제목이 된다. 여기서 ‘중 승(僧)’자는 명사에서 ‘마음 편할 승(僧, 心平安的)’자(字) 즉 형용사로 해석을 해야 한다. 용장(龍章)과 관련해 언급하면, 금호강 섶에 아직도 열 마리의 잠용(潛龍)들이 우글거리고 있다. 그 가운데 서쪽에 한 마리는 와룡산(臥龍山)이 되어 잠들어 있다. 나머지 9마리는 동쪽 아양교 다리 건너편에서 납작이 엎드리고 있는 구룡산(九龍山)이다.

그 이야기를 이으면, 구룡산 기슭에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자랑하는 아양루(峨洋樓)가 있었으니, 이곳에서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은 ‘금호범주(琴湖泛舟)’를 읊었다. 이를 기념하는 시비가 오늘날 동촌유원지에 세워져 있다.

당시 서거정이 아양루에서 팔공산을 바라다봤던 감회는 아마도 왕희지(王羲之, 303~361)가 ‘난정(蘭亭)’에서 유상곡수(流觴曲水)를 한 뒤에 읊었던 “오늘날이로구나. 하늘은 깨끗하고 대기(大氣)마저도 쾌청하며, 봄바람은 따사하게도 부드럽구나. 세상이 이다지도 넓음을 우러러 살펴보니 만물의 풍성함을 굽어살피겠네. 눈을 돌려 회포가 달아나는 까닭은 보고 들은 즐거움이 충분하기 때문이라니 진실로 즐겁기만 하네요”와 같았다.

“푸르고, 야트막한 금호에 난초잎 같은 돛단배를 띄우니. 이다지도 고즈넉함에 백구야 놀아보자 가까이 다가서니. 달이 밝아오니 술 취함도 달아나니 뱃길 돌리라네. 이곳에 풍류라고 오호선유(五湖船遊)만 못하겠는가(琴湖淸淺泛蘭舟, 取此閑行近白鷗, 盡醉月明回棹去, 風流不必五湖遊)?”라고 읊었다.

마치 당나라의 설형(薛瀅)이 읊었던 “가을날 호수 위에서, 해 떨어졌는데 오호선유를 하자니. 물안개 자옥하고, 곳곳이 시름에 짙었구나. 흥하고 망하는 게 먼 옛날 일이구나. 누구와 더불어 동(東)으로 흐르는지 물어나 보겠네(秋日湖上, 落日五湖遊, 煙波處處愁, 浮沈千古事, 誰與問東流).” 薛瀅, 落日五湖遊 : “秋日湖上, 落日五湖遊, 煙波處處愁, 浮沈千古事, 誰與問東流.” 구절이 회상된다. 여기서 오호(五湖)란 중국 강소성(江蘇省) 오현(吳縣)에 있는 태호(太湖)와 그 주변의 4개의 호수를 말했다.

◇대자연이 만든 거문고 금호(琴湖)

금호강은 오늘날 과학인 지질학과 화산학으로 말하면 중생대 백악기에 화산폭발로 형성되었던 150~250㎞의 거대한 활모양의 경상 화산호(慶尙火山弧, Kyeongsang Arc)에 자연히 물이 고여 경상호수(慶尙湖水)가 형성된 것이 기원이다. 때마침 생사기로에 처해있던 지구촌 공룡들이 한반도 경상호수로 모여들어 ‘마지막 백악기 공룡 낙원(The Last Cretaceous Dinosaur Paradise)’이 되었다. 그 뒤에도 잦은 지각변동, 풍화작용 등으로 수성퇴적층(암)이 형성되었고, 경상호수는 점점 작아져 오늘날 금호(琴湖) 혹은 금호강으로 남게 되었다. 금호 섶에서 살았던 선인들의 거문고 사랑은 물론이고, 금호 섶 갈댓잎은 풀피리가 되었다. 이에 따라 흘러가는 강물조차도 탄금성(彈琴聲)이 되었다. 지나가는 바람 소리 혹은 새들조차도 탄금성에 맞춰 노래했다. 한마디로 모두가 바람 소리에 흘러가는 무위자연풍류(無爲自然風流)였다.

이와 같은 금호를 감싸면서 조화로운 무위자연(無爲自然) 속인 이곳에 살았던 구연우(具然雨, 1843~1914) 선비는 “금호강은 하늘과 땅이 자연스럽게 만든 거문고(天地自然之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의 문집 ‘금우집(琴愚集)’서문에서 “내가 알기론 동방에서 거문고가 가야국에까지 전파되었으며, 최초에 전수자가 많았으나 오늘날은 몇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20년 동안 거문고로 예악을 닦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서 거문고가 쇠퇴해지는데 이런 연유를 거문고에서만 찾고 있으니. 세상에 어떤 악기라도 그렇게 완벽할 수 있겠는가? 비바람, 우레, 벼락, 강과 배 그리고 산천초목에서 새와 동물에까지 모두가 자연 고유의 소리를 갖고 있는데. 하필 인간이 만든 악기 거문고에서만 모든 걸 얻으려 하니. 사실은 대자연 모두가 거문고인데”
 

 
글·그림 = 이대영 <코리아미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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