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꽃밭’이라는 욕망
[달구벌아침] ‘꽃밭’이라는 욕망
  • 승인 2023.05.28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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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직장 관리자가 방문하는 고객들이 조금이라도 밝은 눈으로 입구를 들어오시도록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건물 앞 흙만 있는 공간에 화단을 조성하였다. 국화랑 패랭이꽃, 과꽃이 주였다. 그동안 출입하면서 인식하지 못했던 공간이, 꽃이 있으니 화사하고 예쁜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꽃을 좋아하는 홍희는 화단으로 가꾼 것이 마음에 들었다. 처음에는 잘 자랄까 걱정되던 것이 1주일을 넘으니 생기를 띄고 또 1주일을 넘으니 쑥쑥 자라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거름이 별로 없어보였는데도 죽지 않고 성장하고 있다. 물은 누가 주는지 궁금했지만 주기적으로 흙이 젖어 있었다.

건물 두 군에 화단을 만들었는데 한 곳은 높은 곳에 위치했고, 한 곳은 인도 바로 옆에 위치했다.

지나가는 사람이 높은 곳에 위치한 화단에서 꽃 한 개를 뽑아갔다. 인도 바로 옆 화단에서는 두 개를 남기고 네 개를 뽑아갔다. 매일 한 개씩 없어졌고, 푹 파인 흔적만 남아있었다. 꽃이 예뻐서 가져간 그 마음은 아름다운 마음일까, 아닐까 질문을 하는 분도 계셨다. 함께 보기 위해 만들어 둔 화단에서 자기만 보기 위해 남의 것을 훔친 것은, 아름다운 마음은 아니라 범죄라고 결론내렸다.

꽃은 사람을 기분좋게 만든다. 축하하는 일이 있을 때 꽃다발이 없으면 허전하다. 다른 값진 선물이 있어도 꽃다발이 있어야 기쁨이 배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꽃을 선물한다. 꽃은 사람의 기분을 기쁨과 행복으로 만들어 주는 뭔가가 있다.

그 꽃을 받을 일이 자주 있는 것은 아니기에 스스로 꽃밭을 만들고 싶은 홍희의 마음은 무엇일까? 매일 꽃을 받는 기쁨을, 행복을 스스로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것일까? 굳이 그 이유를 생각해보지는 않았고 단지 꽃밭을 만들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건 아주 어린 열두살 때부터였다. 마당 한 켠에 꽃밭을 만들고 뿌리가 내릴 쯤이면 어김없이 농사수확물과 장작들로 뒤덮힌 홍희의 꽃밭. 심어 둔 꽃들은 자라지 못하고 말라죽었다. 꽃밭을 가꾸어 집안 분위기를 들뜨게 만들고 싶은 홍희의 마음을 알리없는 엄마는 저걸 왜 만들었냐며 나무랐다. 원망스러웠지만 말을 하지 못했다. 늘 농사일에 바쁘고, 힘들어 보였던 엄마였기 때문이다.

사무실에서 화분을 키우기 시작하고 개수가 늘고 잘 자라서 칭찬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러나 시샘하는 사람도 있었던 것인지 사무실에서 화분을 왜 키우냐고 시비를 걸었다. 어이없는 말이고, 결국 “사무실에서 화분 키워도 되재” 라는 말에 “응”이라는 확답을 받고 마무리를 지었지만 그 이후로 대화를 차단했다.

집에서는 남편이 가로막았다. 집안청소를 더 하거나, 정리를 더 하거나, 반찬을 더 만들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더 들어주기를 바라며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툭 하면 버려라, 줄여라 저주같은 말을 퍼부었다. 자신의 것에는 입도, 손도 대지 못하게 하면서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횟수와 강도가 줄어 지금은 장독대 위에만 올리지 말라고 하지만 장독위에 있는 화분이 더 예븐 것을 왜 모를까? 장독을 시골로 옮겨놓아야 할 일이다.

한 평도 안 되는 꽃밭을 가꾸고 싶은 홍희의 욕망을 왜 거부하고 차단하고 비난할까? 보석이나 값비싼 차, 가방을 갖고 싶은 마음은 거의 없다. 살아가는데 불편하지 않고, 너무 없어보이지 않으면 된다.

화분하나에 3천원, 4천원 하는 꽃을 사서 꽃밭을 가꾸고 싶은 마음은 버려지지 않는다. 왜 그걸 막으려고 하고, 비난하는가? 소확행에 해당할 수 있는 작은 일이다. 그러나 홍희에게는 아주 강하고 큰, 일생에 이루고 싶은 과업이다. 죽기전에 하고 싶은 일 중 하나는 꽃밭을 가꾸고 싶은 열망이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막지는 말아줬으면 좋겠다. 이제는 그 누가 막아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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