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과 멋으로 읽는 세상] 음식으로 맺은 동맹 ‘藥食同源’ 되어 평화 가져오길…
[맛과 멋으로 읽는 세상] 음식으로 맺은 동맹 ‘藥食同源’ 되어 평화 가져오길…
  • 윤덕우
  • 승인 2023.06.11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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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 담긴 역사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한 음식 아닌
사회·문화적 측면서 의미 가져
이념·정치적 레토릭 표현하기도
핫도그·김치 통조림·오리고기 등
몇몇 음식은 세계사에 큰 영향
尹, 일본과 ‘오무라이스 외교’
美와 ‘게살 케이크 만찬’ 가져
지정학적 리스크 큰 대한민국
주변 강국과 우호적 관계 필수
윤석열대통령-기사다일본총리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4월 16일 친교 만찬을 마치고 도쿄 한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건배를 하고 있다.
 
저우언라이와 키신저 만찬
1971년 7월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가 극비리에 중국을 방문한 헨리 키신저 특사에게 베이징 오리구이를 밀전병에 싸주고 있다.

인간의 삶 속에서 먹는 것은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것 이상의 목적을 갖는다. 이왕이면 맛있고 몸에 좋은 음식을 먹으려 하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맛집을 찾는다. 또, 먹는 과정에서 음식과 건강의 어떤 법칙을 알게 되거나 우연히 특정 질병에 효능이 있는 음식들을 발견하곤 한다.

그래서 동양 의서에는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는 말이 있다. 즉, 약과 음식은 그 근원이 같아 좋은 음식은 약과 같은 효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약식동원’은 동양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BC 460년경 그리스 코스 섬에서 태어난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은 약으로도 못 고친다”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음식이 곧 보약’이라는 관념은 오랜 세월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역사 속 영웅들의 삶 속에서도 ‘약식동원’에 입각한 음식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중국 최초 통일왕국인 진나라를 건설하고 불로장생을 꿈꾸었던 진시황은 전복죽을 즐겼고 로마의 폭군이었던 네로 황제는 버섯을 즐겨 먹었다. 또, 프랑스의 나폴레옹과 1871년 독일의 통일을 완성했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굴을 매우 좋아했다. 이처럼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들은 즐겨 먹었던 음식마저 그들의 명성만큼이나 강한 에너지를 느끼게 만든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조선의 왕들 중 29명의 자식을 두어 다산왕으로 불린 태종은 그 당시 정력 식품이었던 생강과 계피를 곁들인 음식을 즐겼고 세종은 고기가 없으면 밥을 먹지 못할 정도로 다양한 고기를 즐겨 먹었고, 폭군이었던 연산군은 장어 백숙을 자주 먹었다. 또, 조선의 왕들 중에 83세까지 장수한 영조는 붕어찜을 매우 좋아했는데 승정원일기에는 영조와 붕어찜에 관련된 이야기가 무려 19회나 등장한다고 하니 붕어찜은 영조가 52년이나 재위하는데 있어 일등 공신인 셈이다.

이렇게 에너지가 넘치는 권력자일수록 음식으로 정기를 보충하고 그 힘으로 정치력을 극대화시킨 것은 동서양이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음식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인간과 함께하는 동반자나 다름없다. ‘밥은 먹었냐’로 시작되는 인사부터 ‘밥 먹고 하자’라는 말을 듣는 것은 다반사이다. 그리고 우리는 끊임없이 음식을 우리 삶에 중심에 두며 맛난 음식을 탐하고, 몸에 좋은 음식은 찾아서 먹고, 혀가 즐겁든, 입이 즐겁든, 마음이 즐겁든 간에 음식으로 포만감과 작은 행복을 찾으려고 한다.

음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들도 있다. 복날에는 삼계탕을, 불금에는 치킨을, 비오는 날에는 짬뽕을 먹어야만 하고, 4월 14에는 블랙데이라는 이름으로 짜장면을 먹어야만 하는 사람들도 있다. 좀 더 정책적인 이유로 특정일에 특정 음식을 먹는 경우도 있다. 3월 3일은 ‘삼겹살 데이’로 축협이 양돈 농가의 소득을 늘리기 위하여 삼겹살을 먹는 날로 지정했고, 11월 1일은 ‘한우데이’로 전국 한우협회에서 한우 소비 촉진을 위해 ‘한우 먹는 날’로 지정한 날이다. 먼 옛날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필요했던 음식이 이제는 사회 문화적인 측면에서 특별한 의미로 해석되고 정치나 경제 분야에서는 특정한 이념이나 정치적 레토닉을 표현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특히 몇몇 음식들은 세계사에 영향을 끼친 적도 있었다.

먼저, ‘핫도그’이다. 1939년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은 영국에게는 큰 위협이 되었다. 미국의 지원을 얻기 위해 영국 국왕 조지 6세는 영국 역사상 최초로 미국을 방문한 국왕이 된다. 그 당시 미국에는 반영(反英)정서가 팽배했고 영국과의 관계도 매끄럽지 못했다. 그러나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은 전쟁이 발발한다면 사실상 모국인 영국을 지원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민심을 돌릴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다. 미국의 대표적인 서민 음식인 핫도그를 영국 국왕 조지 6세가 먹게 하는 것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영국 국왕이 손으로 직접 핫도그를 먹음으로써 미국인들에게 영국 국왕도 보통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상을 각인시켜 미국인들에게 영국을 과거 독립전쟁의 적국이 아니라 역사적인 모국으로서 영국의 이미지를 바꾸어 놓았다. 결국 루스벨트는 의회를 설득하고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어 영국은 미국과 함께 승전국이 된다.

두 번째는 ‘김치’이다. 제36대 미국 대통령이 된 린든 B. 존슨은 대통령이 된 이후, 케네디 시절부터 개입해오던 베트남 전쟁의 확전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 참전에 따른 반전 여론이나 과도한 재정 지출 등은 대통령 임기 내내 그의 발목을 잡았다. 특히 파병 요청을 거부한 캐나다 피어슨 총리를 만났을 때는 화를 내며 멱살까지 잡았을 정도로 존슨에게 베트남 전쟁은 스트레스 그 자체였다. 1966년 존슨 대통령은 한국의 베트남 참전을 설득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방문하게 된다. 이 때 박정희 대통령의 파병 조건 중 하나가 미국이 김치 통조림 공장을 한국에 건설되도록 지원해 달라는 거였다. 한국군은 전쟁 중에도 반드시 김치를 먹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결과적으로 월남 파병은 변변한 가공식품 공장이 없던 우리나라 식품산업이 발달하는데 큰 계기가 되었다.

세 번째는 ‘오리고기’이다. 1971년 미국 닉슨 대통령 특사인 헨리 키신저는 닉슨 대통령의 방중 형식을 놓고 중국 베이징을 비밀리에 방문한다. 하지만 협상 대상자인 중국 저우언라이 총리와는 대화는 이틀 연속 팽팽한 긴장 속에 진행되었고 협상은 깨질 위기까지 내몰렸다. 그때 점심으로 나온 ‘베이징 오리구이’가 나왔는데 그 자리에서 저우언라이 총리는 키신저에게 밀전병에 오리구이를 싸주면서 분위기는 급반전하게 된다. 결국 ‘베이징 오리구이’는 닉슨과 마오쩌둥 간의 역사적 정상회담으로 이어지고 결국 수교까지 이어지게 만든 셈이다. 6.25 전쟁 때 미국과 중국은 직접 싸운 적대국이었다. 그런데 전후 그들 사이에 소련이라는 적이 하나 생겼다. 소련은 미국과는 동서냉전의 적수였고, 중국은 소련의 수정주의를 비방하였고 영토문제로 갈등까지 겪고 있었다. 적의 적은 친구라고 했던가! 미국과 중국의 밀월은 그 후 소비에트연방의 붕괴와 중국이라는 거대시장의 탄생,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 형성에 밀알이 되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나라의 처지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4대 강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리스크’라는 말이다. 이 말은 조선을 망하게 한 고종 때도 통하는 말이었고, 세계 10대 강국으로 성장한 지금의 대한민국에도 통용될 수 있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세계 최강 국가들 사이에 놓여 있는 우리 현실에서 군사력과 경제력, 그리고 외교력은 국가 존립의 기반이 된다. 우산장수와 부채장수를 둔 어머니와 같은 심정으로 우리는 남북분단의 대치 상황을 견뎌야만 하고 국가 안보에서는 미국과의 동맹은 운명적이며, 무역의존도가 높은 현실에서 중국과의 협력은 필수적이고, 소재·부품 등 핵심기술에 일본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일본과의 우호적 관계는 필연적이다.

실력 없는 자존심이 국가를 망하게 한다는 교훈을 우리는 조선 말기의 상황을 통해서 학습한 바 있다. 최근 일명 ‘오므라이스 외교’로 일본과의 관계가 개선되고 미국을 상징하는 음식인 ‘게살 케이크’ 만찬으로 한미동맹이 강화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또, 중국과의 관계도 최소한 경제적인 면에서는 같이 갈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인정해야 된다. 다만 중국에 대해 사대주의적인 발상으로 접근하는 것은 국민적 정서와 맞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중국과 일본의 역사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다만 역사적으로 아쉬운 것은 우리나라는 피해자였고 중국과 일본은 가해자였다. 그런데 문제는 극단적 정치 팬덤에 매몰된 우리나라 일부 사람들은 근시안적 민족주의에 취해 중국을 얕보고 일본을 무조건 미워하는 편협한 시각을 가졌다는 점이다. 이런 편협한 시각을 무능한 정치인들이 국내 정치와 연계해 이용하고 있는 것이 어쩌면 한반도 평화에 가장 큰 위협이 될 수도 있다.

정치란 결국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물론 그 기반은 강력한 안보와 탄탄한 경제력이다. 음식으로 맺어진 굳건한 동맹이 ‘약식동원(藥食同源)’이 되어 한반도를 둘러싼 갈등을 치유하고 대한민국의 진정한 평화를 가져오기를 소망한다.
 

 

이상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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