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이후以後
[좋은 시를 찾아서] 이후以後
  • 승인 2023.06.14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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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강우

숲을 머금었던 파리한 계절의 입술이 열린다. 입속에서 더욱 단단해진 지난 목소리는 여전히 나의 것. 그리고 가랑비가 염탐하는 것. 목젖을 떨게 하는 것. 이름을 틔우는 것. 시나브로 당신이 피는 계절이 오면 꽃잎 한 장에도 우묵 파이던 내 속 어딘가에 아픔이 빠질 때도 있지만 상처를 체에 거른 만큼의 시린 봄빛이 고인다. 그림자의 손에 호루라기가 쥐여 있던 순간들. 박쥐처럼 캄캄해서 감각만 밝았던 그리하여 다시는 부를 수 없는 그림자의 낯을 잃어버린 나날들. 마침내는 고요의 소요를 일으키던 행간이 없는 눈짓마저도 출처 불명의 겉장으로 남아 있는.

◇심강우= 2013년 제15회 수주문학상 수상으로 등단. 현재 대백프라자 문화센터, 대구중앙도서관 문학창작 강사. 시집 『색』.동시집 『쉿!』 『마녀를 공부하는 시간』,장편 동화『시간의 숲, 동화집 『꿈꾸는 의자』, 소설집 『전망대 혹은 세상의 끝』, 『꽁치가 숨쉬는 방』이 있음.

<해설> 하나의 일 혹은 실체가 있는 사건이 있던, 그 이후의 기분을 진술하고 있는 시 「이후」는 마치 대숲에서 선별된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그 피리가 훌륭한 악기가 되는 과정을 연상하게 한다. 진정한 음률을 만들기까지 하나의 악기에는 어떤 영혼이 실려야 할 것이고, 적당한 몇 개의 구멍을 통해 어둠과 빛의 통로에 저, 중, 고의 음률이 조화를 이룰 때, 시인은 비로소 희로애락을 다스리는 경지를 갖게 되지 않을까? 박쥐처럼 캄캄해서 감각만 밝았던, 그리하여 다시는 부를 수 없는 그림자의 낯을 잃어버린 나날들이 다시 희망의 숲에서 시의 꽃으로 피어나기를.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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