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살아야 우리가 산다] 생명의 근원이자 응집체…씨앗은 기적이다
[자연이 살아야 우리가 산다] 생명의 근원이자 응집체…씨앗은 기적이다
  • 채영택
  • 승인 2023.06.15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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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씨앗의 여정과 식물의 모성애
생명에서 생명으로 이어지는
끊임없는 씨앗의 여정은
불안한 환경 스스로 극복하고
세상 향해서 굳건히 일어나
끝내 거목으로 자랄 것이다
씨앗
새로운 생명을 꿈꾸는 부드러운 씨앗을 보호하기 위해 열매는 딱딱한 껍질로 둘러쌓여 있다.
겨울감태나무
감태나무잎은 겨울에도 잘 떨어지지 않는다. 봄에 새잎이 날 때까지 붙어있다가 새싹을 보호한다.

씨앗, 그것은 기적이다. 물이 갈라지고 하늘이 열리고 스펙타클한 모험의 세계가 눈앞에 믿을수 없이 펼쳐져야만 기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는 매일 매일 순간 순간 기적이 일어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다만 의식하지 못하고 느끼지 않고 있을 따름이다.

46억 년 전부터 거대한 바위와 가스에서 초록의 별로 탄생한 지구가 한 순간도 오차 없이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고 그곳에 사는 모든 생명들이 태양 에너지로 태어났다가 자라고 때가 되면 소멸하는 것, 이 모든 현상이 기적이다.

누군가 애써 노력하지도 않았고 누군가 애써 바라지도 않았지만 생명은 언제나 자신의 모습을 때에 맞춰 스스로 생성하고 변화시킨다. 성주괴공(成住壞空) 즉 생성되었다가 잠시 머무른 후 무너져서 소멸하는 것을 반복한다. 한시도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불가에서 말하는 무상(無常)함이다.

기적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것들이 수없이 많겠지만 씨앗은 그 중의 하나다. 씨앗을 열매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씨앗과 열매는 엄연히 다르다. 열매는 씨앗과 씨앗을 둘러싸고 있는 내부 구성 물질과 외부 껍질을 모두 일컬어 부르는 이름이다. 그러나 씨앗은 그 부드럽고 연한 속살 안에 들어 있는 생명을 가지고 있는 종자를 말한다. 즉 씨앗은 생명의 근원이자 응집체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은 나락 한 알 속에도 우주가 들어 있다고 했다. 이러한 씨앗이 태어나기까지 모체인 어미 식물은 얼마나 정성스럽게 자식을 만들고 보호하는가. 사람을 비롯한 동물만이 자신의 새끼를 보호하고 위험으로부터 자식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것은 아니다. 식물에 있어서도 눈물겹도록 건강한 자식을 만들기 위해 희생하는 어미 식물의 사랑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을 식물의 모성애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우리는 생명 존중의 마음이 더 없이 생겨날 것이며 지구를 뒤덮고 있는 이들을 훨씬 더 경이롭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모성애(maternal affection, 母性愛)의 사전적 의미는 생활력이 불충분하고 발달이 미약한 유아에 대해서 어머니가 가진 애정을 말한다. 씨앗의 관점이 아니라 모체인 어미 식물의 관점에서 바라본 씨앗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남미 칠레의 산티아고에 가면 헌신적인 선인장 이야기가 있다.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쭈글쭈글해진 자신의 잎을 스스로 떨어트려 물이 없어 싹을 틔우지 못하는 자식에게 마지막 남은 육즙을 짜내서 싹을 틔우게 한다는 어미의 눈물겨운 모성애는 그냥 우리가 문학이나 예술 작품 속에서만 등장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참나무의 경우도 워낙 경쟁이 심해서 한 두 개의 씨앗으로는 후세를 남길 수 없다. 그래서 수백 수천 개의 씨앗을 만들어 자신의 후대를 잇고자 한다. 밤나무도 자식을 곤충이나 새에 먹히지 않도록 열매 껍질에 단단한 가시를 두른다. 물론 이 과정에서 나무는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한다.

조나단 실버타운은 ‘씨앗의 자연사’에서 “한 개의 도토리 안에 농축되어 있는 뚫는 힘을 생각하라. 그것을 땅에 파묻을 수는 있지만 마침내 떡갈나무로 솟아 오른다. 양(羊)을 파묻어 보라, 단지 썩어갈 뿐이다.” 동물은 암수의 교미 행위에 의해서만 수정된 씨앗 즉 자손을 이어갈 수 있다. 물론 식물도 다양한 형태의 수분과 수정이 이루어지는데 그것이 자가 수정이든 타가 수정이든 수정 결과 씨앗이 만들어지고 이때 만들어진 씨앗의 무한한 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그래서 씨앗을 기적의 산물이라 일컫는다.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삶과 죽음의 여정으로 연결된 종착지로 한순간도 머무름 없이 나아간다. 그리고 대체로 백년을 넘기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식물의 종자는 완전한 생명을 갖고 태어났음에도 시간이라는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언제 어디서든 때에 맞춰 자신의 삶을 시작할 수 있으니 혹자는 ‘씨앗은 시간과 공간의 여행자다’라고 말한다. 일 년을 통틀어 봄에 모체가 씨앗을 터트리는 경우, 여름에 씨앗을 터트리는 경우, 그리고 가을이 되어서야 씨앗을 터트리는 경우가 있는데 와시타니 이즈미는 이것을 ‘시드레인’(seed rain)이라고 부른다. 일년 내내 씨앗의 비가 내린다는 표현이 아름답고도 멋지다.

감태나무의 모성애는 어떤가. 감태나무는 단풍이 드는 활엽수임에도 가을 겨울을 지나 이듬해 봄까지 갈색 잎을 매달고 있다. 감태나무는 원래 상록성 나무인 녹나무가 조상이다. 그래서 잎은 잘 떨어지지 않고 이듬해 봄에 새잎이 날 때까지 붙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과학적으로는 감태나무가 원래 상록수라서 떨켜(이층)가 잘 안생겨서 잎이 그대로 붙어 있는 것이지만 나무의 모성애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봄에 새로운 싹이 나면 자칫 갑작스러운 추위나 늦서리에 얼어 죽을 수도 있어서 묵은 잎으로 끝까지 새싹이 나오는 그곳을 포근하게 감싸 얼지 않게 하려는 어미 나무의 진한 모성애의 표현으로 보면 될 것이다.

또한 금요자라 불리는 괭이눈은 꽃이 너무 작아 잘 보이지 않아서 곤충에게는 그다지 매력이 없어 보인다. 이때 어미는 모성애를 발휘하여 잎의 광합성을 중단한다. 그러면 잎은 노랗게 색이 변하는데 멀리서 보면 마치 노란 꽃이 핀 것 같다. 이 무성화(無性花)가 곤충을 유인하는데 그때서야 곤충들이 날아오고 수분과 수정을 하게 된다. 수정이 끝나면 잎은 다시 파란색으로 돌아가 수정된 자식에게 충분한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또 다시 부지런히 광합성을 하기 시작한다.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꽃을 피우는 오랑캐꽃인 제비꽃은 어미가 자식의 번성을 위해 개미를 이용한다. 씨앗에 엘라이오좀(elaiosome)이라는 개미가 좋아하는 물질을 묻혀 놓는다고 한다. 개미가 이 물질을 다 먹으면 씨앗을 버리게 되는데 버려진 그곳에서 씨앗은 또 다시 새로운 생명을 시작하는 것이다. 제비꽃의 현명한 전략이다. 이렇듯 자식을 만들고 지키기 위한 어미의 모성애의 발현 방법은 자연계에서는 무수히 많을 것이다.

씨앗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모습은 인간의 태아가 출산하는 것과 유사하다. 인간의 태아는 40주간 어미의 자궁속에서 완전한 사람의 형태를 갖추고 진통이라는 아픔으로 출산을 하듯 식물 모체의 씨앗도 다양한 방법으로 출산을 한다. 식물에서 인간의 자궁과 같은 역할을 하는 기관이 바로 자방(子房)이다. 씨방이라고도 하는 이곳에서 안전하게 지내다가 씨앗이 세상에 나오게 되는데 이러한 씨앗의 출산 과정은 여러 개의 자방에서 자란 씨앗이 스스로 열개(裂開)해서 나오거나, 아까시나무처럼 두 개의 봉선(Suture)이 갈라져서 씨앗이 멀리 튕겨지면서 나오는 경우, 열매의 껍질이 단단한 참나무 열매의 출산, 이 경우는 열매가 무거워 모체 자신의 바로 아래에 떨어져 품 넓은 모체의 보호를 받거나 혹은 이 열매를 좋아하는 동물이 먹고 먼 곳에서 배설을 유도하도록 진화해서 안전하게 발아를 하는 경우, 단풍나무처럼 바람을 이용하여 멀리 날아갈수 있도록 씨앗에 날개를 달아 놓은 경우, 종자의 껍질을 달콤하고 맛있게 만들어 인간이나 동물이 먹고 다른 곳에서 배설을 하거나 버릴 경우 등 이 모든 다양한 출산의 방법이 식물의 지혜나 모성애가 아니면 가능할까. 이는 인간을 포함한 우리 동물의 세계에서만 볼 수 있는 부모가 자식을 죽인다거나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기도 하는 전도된 현실을 놓고 볼 때 식물은 철저히 자신의 종족을 보호하고 보존하며 서로 공생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땅에 고정된 식물을 통해 우리가 자연에서 배우게 되는 가장 근본적인 것은 바로 이런 선성(善性)이다. 하지만 씨앗이라고 모두 다 싹을 틔우는 것은 아니다. 싹을 틔우는 여러가지 환경이 맞아 떨어졌을 때 종자는 딱딱하고 어두운 대지를 뚫고 여린 싹을 내민다. 이것은 어찌보면 종자의 대단한 용기가 아닐까. 작디 작은 종자가 어떻게 용기를 내서 차디찬 현실에 자신을 오롯이 내던질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모체로부터 물려받은 강인한 생명력 때문인데 땅속에서 그냥 휴면 상태로 있을 수도 있지만 완전한 생명체인 종자는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싹을 틔워 꽃을 피우고 또 다시 자신의 종족을 만들어 내기 위한 여정을 끊임없이 계속한다.

이렇게 인내와 용기의 샘물을 마시고 생명에서 생명으로 이어지는 끊임없는 씨앗의 여정은 불안한 환경을 스스로 극복하고 차디찬 세상을 향해 굳건히 일어나 끝내 거목으로 자랄 것이다. 우리 인간도 어미의 자궁으로부터 태어나는 순간 자신의 운명은 결정되어진다. 그러나 운명을 숙명으로만 생각하면 차디찬 현실의 벽을 넘을 수 없다. 부초처럼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조그마한 파도에도 휩쓸려 버리는 연약한 인간이 된다.

씨앗이 거친 대지를 뚫고 조그만 싹을 내밀 듯 스스로 용기있는 작은 한발이라도 거대한 세상을 향해 내 딛는 것이 자신의 숙명을 사명으로 바꾸는 진정한 용기가 아닐까.

임종택<생태환경작가·다숲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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