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동학의 세상읽기] 인문명리로 본 퇴계 이황의 천기와 가족사
[류동학의 세상읽기] 인문명리로 본 퇴계 이황의 천기와 가족사
  • 승인 2023.06.26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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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학 혜명학술원 원장
천원권 지페의 주인공이자, 주자이후 최고의 주자학자이자 영남주리설의 회재 이언적을 이어 주리설을 정립한 영남학파의 거두 퇴계선생은 1501년 음 11월 25일 인시경(추정)에 경북 안동시 예안면 온계리(溫溪里) 노송정의 퇴계태실에서 진사 이식과 부인 문소 김씨(2남 1녀) 춘천 박씨(5남)의 7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사주 명조는 다음과 같다,


이 명조는 격국(格局)용어로 잡기식신격(雜氣食神格)이다. 한편 일간을 기준으로 사주의 강약을 보는 기세론(氣勢論)입장으로는 비록 월지에 축토의 비견을 두었으나 천간에 누설하는 신금 식신이 쌍투하고 지지마저 유축(酉丑)의 반합이 있어 호기심이 강하고 탐구심이 매우 강한 식신국을 이루었다. 그러므로 사주가 도리어 신약사주로 변했다. 한편 명대(1368~1644)의 명리학자로 『명리정종(命理正宗)』을 저술한 신봉 장남의 병약설(病藥)에 의하면 사주에 강한 금이 병(病)이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병을 치료하는 금을 녹이는 병화(丙火)가 약신(藥神)이 된다. 병화롤 도우는 목이 희신(喜神)이 된다.
이 사주는 혹한기인 소한(小寒) 7일 후에 태어나서 축토의 여기의 지장간 계수(癸水) 편재가 사령(司令)한 사주이다. 그러므로 대운의 조후가 절실한 목화운으로 전개되어야 얼어있는 논밭이나 과수원 및 정원인 ②기토(己土)일간의 추위를 녹여 옥토를 만들 수가 있다. 이 사주는 조후용신도 화와 목이 필요하고 세월용신도 화목(火木)이 필요한 사주이다,
그의 조상궁이 연주의 신유(辛酉)의 식신이 일간의 장생(長生)이다. 그는 본관이 진성(청송군 진보)이씨로 7세손이다. 시조는 고려시대 진보현 아전(衙前) 이석(李碩)이다. 이후 안동의 주촌으로 이주한 이자수와 3세 이운후-불천위 4세 이정- 불천위 이정의 3남이자 5세인 노송정 이계양(퇴계의 조부)-6세 이식-7세 막내 이황이다. 퇴계의 부친은 의성김씨에게서 2남1녀를 낳은 후 부인은 29세에 별세하고 춘천박씨에게서 이의,이해,이징,이황을 낳는다. 춘천박씨는 결혼한 전처소생의 장남인 이잠을 제외하고 6남1녀의 자녀를 혼자 키웠다.
퇴계의 초년대운은 겨울기상인 경자대운과 기해대운으로 매우 불리하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마흔 살의 나이로 사망하여, 이황은 홀어머니 춘천박씨 밑에서 자라야 했다. 퇴계는 안동부사를 지낸 숙부 송재 이우의 조카이자 문하생이 되어 『논어』를 배웠다. 33세에 혼자가 된 퇴계의 어머니는 1537년 정유년의 정신적인 아픔과 육체적인 아픔을 동반하는 운인 편인운(偏印運)에 67세로 별세한다.
넷째형 온계(溫溪) 이해(李瀣,1496 ~ 1550)는 대사헌과 관찰사였으나 유배가는 도중 병사하였다. 퇴계의 대운은 23세이후부터 10년간 무술(戊戌)의 겁재(劫財)대운이었다. 겁재(劫財)는 재성(財星)에 해당하는 아내와 고정재물과의 이별과 손재수를 나타낸다, 1528년(중종 23) 무자년의 겁재운에 1521년 신사년 21세때 결혼한 퇴계가 28세 때, 부인허씨는 5살 장남 이준(1523년 ~ 1583년)과 1살 2남 이채(1527년 ~ 1550년)를 남기고 별세했다. 이후 퇴계는 1530년 경인년(庚寅年) 30세에 권질의 따님 안동권씨와 재혼했다. 안동권씨는 정신적인 장애가 있었다. 재혼 전에 첩에게서 서자 이적이 태어났다. 대학자 퇴계도 여러 번 낙방 끝에 1533년 계사년(癸巳年) 대과에 급제한다,
1546년 병오년(丙午年)에 권씨부인은 별세했다. 1548년 병신(丙申)대운 무신년(戊申年)의지지 상관운(傷官運)에 인신충(寅申沖)으로 인한 상관견관운에 정관인 아들이 상관에 충을 당하여 차남 이채는 결혼하자마자 22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 그해 퇴계는 단양군수로 부임하면서 18세의 기생 두향과의 러브스토리가 야사에 전한다.
퇴계의 장손 이안도(1541~1584)가 후사없이 별세했다. 기미년 갑술월 기묘일생인 동암 이영도(1559~1637)는 권벌의 손녀사이에 이기, 이의(李嶷)를 두고 서자 이계 등 세 아들을 두었다. 둘째 아들 이의가 상계 종가인 형 이안도의 후사를 잇고, 이영도의 후손은 하계파를 이룸으로써 이황의 가계는 이영도의 후손들에 의해 계승되었다.
인구 16만 명 안동은 무려 941명에 달하는 독립유공자를 배출했다. 퇴계가문은 이만도, 이만규, 이긍연, 이중린, 이중언, 이인화, 이필곤, 이육사 등 독립유공자 65분(독립장 2분, 애국장 14분, 애족장 33분, 포장 7분, 표창 9분)을 배출한 가문으로 집성촌인 예안 하계마을은 무려 25명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독립운동의 성지이다. 그외 의성 김씨 김동삼 등 50명, 전주류씨 유시연,류림 등 33명이 독립유공자라고 한다. 마을로는 의성 김씨의 내앞마을, 전주류씨의 무실마을, 석주 이상룡의 임청각, 안동 권씨의 가일마을, 풍산 김씨의 오미마을이 대표적이다.모두 퇴계학맥을 이은 가문이다. 이황은 70세 1570년 12월 8일 유시(庚午년 己丑月 辛丑日 丁酉時)에 별세하였는데, 이때는 갑오(63세부터 10년)대운이다. 갑은 정관인데 정관이 상관 경금에 의해 파괴되면 좋지 못하다. 갑오대운은 매우 길하나 세운이 온통 금기가 강한 병신(病神)운이자 구신(仇神)운으로 희신인 정관을 극하여 불리하여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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