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아니면 다 서럽다
초대받지 못했으니 환영식은 없단다
까치발로 눈길 엿보며 몰래 들어선 길
서로의 낯섦에 몰아내지만, 어느 틈에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검은 파도 건너온 보트피플
쫓겨남이 나의 탓 아닌데, 구름처럼 비 내려 줄 손
아무도 어디서도 내밀지 않는다
모든 것을 받아들여 썩히고 삭혀 거름을 내주는 땅
그 땅을 품고 있는 지구상에서 만난 인연
오늘 지는 해는 내일이면 또 밝아지려니,
그래. 함께 살자꾸나!
봄 햇살 깃드는 곳, 기둥 하나 세우기로 했다
◇김명희= 김천 출생. 2006년 ‘문예비평’ 신인상 수상. 시집 ‘오래된 거울’.
<해설> 고향을 떠나와 사는 사람들에게 누가 난민일까를 생각하게 하는 시다. 나라를 잃고 삶터를 잃고 떠도는 자만이 난민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도 넌지시 해본다. 시인의 눈에 비친 난민들의 실제 현실은 적나라하다. 특히나 전쟁을 피해 피난 다녀 본 세대에게는 뉴스 영상 속 난민들의 모습이 남의 일로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시인은 눈에 비치지 않은 더 많은 사람의 DNA 속에도 난민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이 시는 암시한다. 어쩌면 한 생을 살다 가는 사람들 또한 잠시 지구의 시간을 빌려 쓰는 것은 아닐까. “쫓겨남이 나의 탓 아닌데, 구름처럼 비 내려 줄 손 / 아무도 어디서도 내밀지 않는다”라는 시구는 “그래. 함께 살자꾸나!”로 반전되면서 내가 남(난민)이 아닌 바로 자신에게 기둥 하나 내어주는 넉넉함을 보여주고 있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