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옥희 작가 개인전 “삶은 거칠고 험준한 겨울 산”...대백갤러리 13일까지
황옥희 작가 개인전 “삶은 거칠고 험준한 겨울 산”...대백갤러리 13일까지
  • 황인옥
  • 승인 2023.07.04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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켜켜이 쌓인 기억을 회화로 구현
힘든 삶, 그림 통해 비우고 정화
관객 소통 위해 추상서 구상으로
황옥희작-inMyTime
황옥희 작 ‘in My Time’

인간이 이성의 동물이라고 하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에는 이성과 비이성이 공존한다. 때때로 불합리하고, 많은 경우 비이성적으로 흘러간다. 개인의 이성적인 행위와 단호한 의지만으로 작동하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을 둘러싼 관계들과 환경, 심지어 겹치는 뜻하지 않은 우연들에 의해 삶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일이 허다하다. 그래서 일찍이 인간은 삶이 고통의 연속이라고 정의 내렸는지 모른다. 하지만 삶의 무게가 인간의 성장을 이끈다는 점에서 많은 예술가들이 입을 모아 삶을 찬양한 것은 아닐까?

황옥희 작가가 20여년을 ‘in My Time’라는 주제에 집중한 것은 삶이 주는 준엄한 자기성찰과 관련이 깊다. 그는 일찍이 삶이 가진 무게를 간파하고, 미술의 주제로 삼아왔다. 기억 속에 켜켜이 쌓여있는 삶의 편린들을 환원해 회화로 구현한다. 좋은 일과 힘들었던 일들이 혼재된 기억들을 떠올리고는 준엄한 삶의 대서사로 치환해낸다. 자신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대백프라자갤러리 A관에 펼쳐놓은 ‘My Time’ 연작들은 그가 회화로 표현한 인간 삶의 대서사다.

그는 자신의 기억 속에 저장된 삶의 역사를 곧 ‘삶’으로 규정한다. 희노애락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환경에서 견뎌내고 나아가는 삶에서 그는 진중함과 숭고함을 발견한다. 전시작 ‘My Time’ 연작은 중첩된 작가의 기억에 대한 환원이지만 그 이면에는 숭고한 삶에 대한 예찬이 자리한다. “저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됐지만 모든 인간이 삶의 파고를 헤치며 살아가고 있기에 저의 이야기는 곧 보편 인간의 이야기이기도 해요. 제가 바라보는 모든 인간의 삶은 힘에 겹지만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하고 있어요.”

흔히 인생을 거대한 산이나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에 비유한다. 거칠고 광대한 산과 바다를 인생에 비유한 것은 인간의 삶과 닮아 있어서일 것이다. ‘My Time’ 연작에 산의 형상이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다. 흰색 바탕에 거친 선들이 산의 형상을 형성하고 있다. “거칠고 험준한 겨울 산의 형상에 인간의 삶을 은유했다”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저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기억들을 끄집어 올려 산의 형상으로 표현했어요. 기억 속 삶의 모습이 산의 모습과 닮았다고 보고 산을 소재로 했습니다.” 이 점에서 그의 회화는 기억의 거울이자 삶의 역사다.

기억은 삶의 시간들이 중첩된 공간이다. 시간의 흔적들이 켜켜이 쌓여있는 시간의 집이기도 하다. 작가는 아크릴물감으로 덧칠하고, 지우고, 쌓기를 반복하는 것으로 화면에 시간을 중첩해간다. 특히 흰색과 검은색이 화면을 주도하는데, 붓 대신 나이프로 산의 기세를 다듬어 간다. 몇 가닥의 검정 선으로 구축하는 산의 형상에서 강인한 기운이 넘실댄다. “무겁지만 숭고한 삶의 본질을 검정색으로 표현했어요.”

무거운 발걸음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다보면 환희의 순간들이 오기 마련이다. 고통 속에서 작은 깨달음을 얻고, 깨달음이 깊어갈수록 신이 부여한 삶의 이유를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런 상태를 ‘비움’이라고 표현했다. “열심히 삶의 의미들을 그림을 통해 표현해 가면서 조금씩 비워지고 정화되는 것 같았어요.” 화면 속 흰색은 정화의 의미로 사용됐다. 흑과 백으로 구현한 풍경 위로 붉고 푸른색들이 슬쩍슬쩍 묻어나기도 한다. 흑과 백 이전에 붉거나 푸르거나 노랗거나 하는 다양한 색채들이 중첩된 결과다. 주로 소환된 기억 속의 기운들이나 당시에 그가 느꼈던 감정들이 다양한 색으로 표현된다. “제 기억 속에는 다양한 일상들이 녹아있을 것이고, 당시에 제가 느꼈던 감정들도 다양했을 것입니다. 제 그림이 삶에 대한 표현이고, 구체적인 삶의 편린들이 다양한 색으로 표출되고 있습니다.”

지난 20여년간 ‘in My Time’라는 주제는 일관성을 유지했지만 시각적인 형상은 변화를 거듭했다. 작업 초기 10여년간은 형상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없는 추상에 천착했다. 하지만 10여년 전부터 구체적인 형상인 산을 표현하고 있다. 추상에서 구상으로의 변화인데 여기에는 소통에 대한 의지가 스며있다. “추상으로 관람객들과 소통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 형상을 모색했어요. ‘인생’이라는 제 주제에 맞는 형상이 무엇일까 생각했을 때 ‘산’이었던 것 같아요.”

점점 비워내고 있는 작가의 내면 상태는 그림에 오롯이 반영되고 있다. 산의 형상이 점점 추상적인 선의 결합으로 넘어가고 있다. 작가는 더 확장된 해체로 나아갈 것을 예견했다. “향후에는 산의 형태를 선으로만 구현하려 해요. 완전한 해체라고 할까요. 구체적인 삶의 모습에서 본질로서의 삶으로 나가가려는 것이죠.”

산이라는 소재도 그렇지만 역동적인 선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기운과 흑백의 대비로 드러나는 진중한 분위기에서 강한 에너지를 감지하게 된다. 가느린 작가의 모습과 대조적이다. 설상가상 그는 스스로를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성향이 그가 그림에 매달리게 하는 요인인지도 모른다.

“제 안에는 내성적인 성격과 역동적인 성격이 공존합니다. 사회의 일원으로 존재할 때는 내성적인 성격이 활성화되다, 캔버스 앞에 앉으면 역동적인 성격이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림은 저의 또 다른 본성을 표출하는 소중한 매체입니다.” 전시는 13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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