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색깔이든, 완장이 채워지면
누구라 할 것 없이 늑대가 된다.
눈에 띄지 않는 완장을 찬 그들은
법의 테두리 밖에서,
도처에서, 킁킁거리며 어슬렁거린다.
시베리아 늑대만큼 재빠르게,
법 위에 올라타서, 법을 주무른다.
늑대에게 한번 찍혀서 물리기만 하면
그 누구도 벗어날 재간이 없다.
이미 죽은 시체까지 물어뜯는 늑대들,
완장이 벗겨지면 이빨 빠진 똥개가 된다
◇ 최서림= 경북 청도 출생. 1993년 《현대시》 등단. 시집 『이서국으로 들어가다』 외 8권
<해설> 완장은 팔뚝에 차는 것이다. 마치 나약한 건달이 없는 힘을 과시하기 위해 여름 소매 남방 밖으로 내민 용 꼬리 문신 같은 것이다. 완장 중에는 이념의 완장이 무섭고, 대를 이어 억눌려 살아서 완장을 채워주는 순간 판단력을 잃는 완장이 또한 무섭다. 이미 시체까지 물어뜯는 늑대들, 그들을 이빨 빠진 똥개로 만들기 위해서는 완장을 벗겨야 한다. 그런 힘은 자유민주주의에서는 선거로 결정된다. 요즘 시와 그림을 함께 하는 최서림 시인은 이 시 「완장」을 통해서 이 시대의 몰지각한 정치가들에게 경종의 메시지를 통렬하게 던지고 있다. 새로운 세계를 개척해야 할 치열한 시인 정신은 뒷전에 둔, 문단 정치에 병들어 완장을 차려는 시인들에게도 일침을 가하는 메시지일 것이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