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강 르네상스 시원을 찾아서] 연구산 돌거북, 머리는 신천·꼬리는 팔공산으로 향해
[금호강 르네상스 시원을 찾아서] 연구산 돌거북, 머리는 신천·꼬리는 팔공산으로 향해
  • 김종현
  • 승인 2023.07.0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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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화기진압과 산맥지기(山脈地氣)를 잇는 돌거북산(連龜山)
대구지군사 금유, 현재의 지명 확정
세종 ‘신찬팔도지리지’ 등 편찬 지시
금호강·신천 명칭 국가기록물에 올려
인구·특산물·성씨까지 수합 정리 저술
추가로 만들었던 보관본 오늘까지 보존
경상도지리지에 ‘연구산 돌거북’ 속설
산등성이에 묻어 산맥 잇도록 해 놓아
2003년 대구지하철참사로 많은 사상자
국내외서 ‘고담대구’ 오명·유언비어도
금호강연구산돌거북
금호강 연구산 돌거북. 그림 이대영

◇대구의 지명, 산명, 하천명을 확정한 대구지군사 금유(琴柔)

오늘날에 우리가 사용하는 대구의 지명, 산명, 하천명 등을 확정하고, 이를 국가기록에 왜곡없이 직접반영한 위정자는 대구지군사 금유(琴柔)다.

대구부읍지에서도 명현(明賢)으로 손꼽고 있고, 당대 문장가이며, 성균관 박사에서 대구지군사(大丘知郡事)로 탁용된 금유 선생이다. 즉 금호강, 신천, 연구산(連龜山) 등의 명칭을 가감 없이 세종실록지리, 동국여지승람,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 올려서 국가기록물에 통일적으로 확정했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1424(세종6)년 11월15일에 세종은 민생현안과 현지 실정을 반영한 통계기반에서 통치할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를 마련하도록 지시했다. 그것이 바로 연혁, 인구, 경작지, 특산물 등을 묶은 ‘신찬팔도지리지(新撰八道地理志)’와 농작물 재배에 필요한 각종 지식과 제때 해야 할 일의 작업목록인 농가월령을 편찬해 보급하도록 지시했다. 이를 위해 먼저 대제학 변계량을 불러 의론했다. 춘추관에서는 인력이 모자란다니 예조가 앞장서 각도 관찰사에게 하명해 각도지리지를 먼저 편찬하여 춘추관에 올리도록 해서 그를 기반으로 재편집하도록 했다.

한편, 조정으로부터 교지를 받은 경상도관찰사 하연은 금유와 인근 인동현감 김빈에게 일임시켜 주관토록 했다. 즉 ‘경상도지리지를 6개월만에 편찬하도록 재지시했다. 이때 금유는 대구의 지명, 산명, 하천명, 인명, 연혁, 인구, 경작면적, 특산물, 성씨 등까지 수합 정리하고 지리지를 저술했다. 얼마나 신속정확했는지 가장 먼저 춘추관에 제출했다.

작업에 관여했던 경력(經歷) 남시지(南施智), 경주부윤(慶州府尹) 오공식(吳公湜), 판관(判官) 정시개보(鄭施介保) 등이 1부를 추가로 만들어 보관하자고 했다. 다행히도 임진왜란에 왕실 소장본은 소실되었으나 추가로 만들었던 보관본이 오늘까지 보존되고 있다. 1425년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를 기준으로 그해(1425년) ‘신찬팔도지리지(新撰八道地理志), 1454년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및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등의 국가기록사업에 기반을 다졌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대구의 지명, 산명, 하천명 등을 국가적으로 통일된 명칭을 확정한 국가기록은 대구의 명현지군사 금유(琴柔)가 편찬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가 저본(底本, base date)이 되었다.

금유에 대해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하면, 총 56회(국역본 28회, 한문본 28회)가 나오며, 정종 1회, 태종 7회 및 세종 20회나 기록되어 있다. 최초기록은 1400(정종2)년 9월 19일자 “삼군부의 도사 현맹인과 무공들이 국학 생원들을 구타하였으나, 헌사에서도 탄핵하지 않다.”로 시작해서 마지막은 1443(세종25)년 4월 27일자 “전 겸사성(兼司成) 금유(琴柔)는 성품이 강명(剛明)하고 학술이 정순(精純)하며, 덕행(德行)이 겸전(兼全)하여 명망이 더욱 무거우니, 진실로 많은 선비의 모범이 되는 사람이었습니다(前兼司成琴柔性稟剛明, 學術精硏, 德行俱全, 聞望益重, 誠多士之所取則者也)...바삐 윤음(綸音)을 내리시어 성균관의 직임을 환임(還任)시키소서”라는 상소문이 기록되어 있다.

◇머리는 남으로, 꼬리는 북을 향한 돌거북 연구(連龜)

신천(新川)이란 하천명칭, 연구산(連龜山)이란 기록도 경상도지리지를 기반으로 살펴봐야 한다. 1425년 경상감사 하연(河演)의 지시로 편찬된 경상도지리지 대구군편(大丘郡篇)을 살펴보면, “연구산, 속설로 전해오는 돌거북은 머리는 남쪽(신천)으로 꼬리는 북쪽(팔공산)으로 산등성이에 묻어 산맥을 잇도록 놓았다고 해서 이름을 연구산(連龜山)이라고 했다(南頭北尾, 藏於山脊, 以連山脈, 故名之)”고 기술하고 있다. 오늘날 일부 풍수지리가는 비슬산(毗瑟山)의 산맥지기(山脈地氣)를 잇고자 했다고 해석하고 있다.

1530년에 저술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대구도후부(大丘都護府)에 “(대구도호)부 남쪽 3리 진산이 있는데, 이곳에 세속에 전해오는 말이 ‘이곳에 읍이 처음 설립될 당시에 돌거북을 만들어 산등성이에다가 머리는 남으로, 꼬리는 북을 향해 묻어 지맥을 통하게 했다고 해서 연구(連龜)라고 했다.’”고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서거정(徐居正, 1420 ~ 1488)의 달성10영(達城十詠)이라는 시문까지 게재하고 있어, 연구산 돌거북을 읊었던 제3영 구수춘운(龜岫春雲)에선 “거북 산봉우리라고 하더니 자라 모양을 닮았구먼. 구름은 무심하게도 또한 관심이 있는 모양일세. 대지에 살아있는 영물들이 시방 바라고 있는 게. 가능하시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마시고 단비나 내리게 하소서(龜岑隱隱似鼇岑, 雲出無心亦有心, 大地生靈方有望, 可能無意作甘霖).”라는 기우민심(祈雨民心)을 적었다. 덧붙여 1767(영조43)년 혹은 1768(영조44)년에 간행된 ‘대구읍지(大丘邑誌)’에선 신증동국승람여지의 구절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뒤이어 1861년 고산자(孤山子) 김정호(金正浩, 1804~1866 추)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서도 ‘연구산(連龜山)’을 표기하고 있다.

한편, 2003년은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가 있었던 영광의 한해였으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처럼 2003년 2월 18일에 192명 사망자를 낸 ‘대구지하철참사’가 발생했다. 그 참사는 세계 제2위라는 기록으로 국내외 ‘고담대구’라는 오명을 받게 되었다. 일부언론에서는 “연구산 돌거북을 제자리에 놓지 않은 재앙”이라는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그해 9월 4일 ‘달구벌얼찾는모임(회장 이정웅)’에서 ‘민심 달래기(按撫民心)’차원에서 화기진압(火氣鎭壓)과 지맥순통(地脈順通)을 위한 ‘연구산 돌거북 바로 놓기(連龜山石龜正座)’사업을 추진했다.

대구제일여자중학교 교정(중구 봉산동 230-1번지)에 있는 돌거북에 대한 서지학적 고찰과 현장실사를 해보니, i) 1481(성종12년)년 최호원(崔灝元) 부사 당시 연구산 돌거북 관련 민심동요(民心動搖)가 있었고, ii) 현장실사를 나가니 첫눈에 학교교정 서측 구석에 놓여있었음을 봐서 여러 차례 옮겼음이 확연했다. iii) 돌거북은 경사암(輕砂巖)에 15% 정도의 이암성분으로 붉은색, 길이 1.77m, 폭 1.27m와 높이 0.6m, 무게 2.349 톤(1.77m×1.27m×0.6m×비중2.6×67%)으로 실측되었다. iv) 당시 돌거북의 머리는 동남동(ESE)이고 꼬리는 서북서(WSW)방향으로 놓여 있었다. v) 돌거북의 형상으로 등껍질(龜甲)에는 9개의 단선귀갑문(單線龜甲文)이 음각되었으며, 목(龜頭)부분에 2개의 음각선이 있었다. 꼬리부분에는 북두칠성의 상징인 듯한 성혈(cup-mark, 星穴)이 9개가 관찰되었다. 사업의 핵심은 머리는 남(頭南)으로 꼬리는 북(尾北)으로 제자리에 놓아, 신천 물로 기어들게하여 앞산의 화기를 누름(向元入新川水, 以置頭南尾北, 而壓前山火氣)이란 상징성 작업이었다.
 

 
글= 권택성<코리아미래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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