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시클라멘
[좋은 시를 찾아서] 시클라멘
  • 승인 2023.07.05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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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규 시인

베란다에서 시클라멘을 키우는 것은

겨울 햇살로 꽃의 무늬를 수놓는 일이라 했다

시클라멘은 햇살의 온기로 꽃 하나가 피고 지면 또 다른 꽃대가 올라온다 했다 꽃이 피지 않으면 여름이라 했다

나는 물로 키우고

당신은 입김으로 키우고

물을 많이 주면 뿌리가 썩어요! 라는 핀잔에 가끔은 물을 빼 버리기도 했다

들어올 땐 싱그럽고 빠질 땐 뜨끈한 바람이 문틈을 들랑거렸다 그 바람이 꽃을 피운다 했다 그녀처럼

화분에 젖꼭지만 한 붉은 꽃망울이 맺혔다

한겨울에 이토록 화사한 꽃을 피웠으니,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을 다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향기를 맡으며

고개를 빳빳이 세운 저 시클라멘도

꽃이 필 때는 아플 거라 했다

◇강일규= 2017년 ‘문예바다’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2022년 ‘전남매일’ 신춘문예 당선. 시집 ‘그땐 내가 먼저 말할게’.

<해설> 시는 건강한 체험의 기록일 수가 있다. 시클라멘을 그냥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베란다 화분에서 물 주어 키워가면서 한 편의 시를 얻을 때 그 시는 더욱 절실할 뿐 아니라, 시클라멘의 말을 제대로 받아적게 된다는 것을 명징하게 알려준다. 일련의 그런 체험이 고스란히 시가 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시인의 직관이다. 시클라멘을 두고 시클라멘 너머의 진실을 찾아내면서 생을 반추하거나 낯선 상상력을 접목, 메타포를 보탤 때 시의 감동은 배가된다. “나는 물로 키우고/ 당신은 입김으로 키우고”가 그런 장치이며 “들어올 땐 싱그럽고 빠질 땐 뜨끈한 바람”이 있었기에 꽃은 핀 것이며, 그렇더라도 그 꽃이 필 때는 아플 거라는 말, 아내 혹은 그녀 또는 신의 말을 빌려 한 편의 시를 전개하는 기교의 또 다른 완성을 시 「시클라멘」을 통해 시인은 보여주고 있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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