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온의민화이야기] 유유자적 연화도...진흙서 나왔으나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
[박승온의민화이야기] 유유자적 연화도...진흙서 나왔으나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
  • 윤덕우
  • 승인 2023.07.12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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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선비같아
주돈이 ‘애련설’서 특히 예찬
북송 이후 ‘군자 꽃’ 자리매김
세속적 욕망 깃든 민화 속 연꽃
연꽃 자체로는 다산 기원 의미
물고기 같이 그리면 부부 행복
연밥 쪼는 물총새는 과거 합격
장마철에 극한의 호우 경보도 내리고, 이리저리 비 피해 소식에 분주하지만 그래도 일상은 돌아가는 법인가 보다. 이미 종강은 했고, 학생들은 학교를 안 나와도 가르치는 사람들은 학교를 꿋꿋하게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학교 앞 연못에 연꽃이 피어나기 시작하니 이제 정말 여름인가 싶고, 한 여름 찌는 듯한 더위와 질벅한 진흙 속에서 숨도 쉴 수 없는 빽빽한 연잎들 사이로 하늘을 향해 가볍게 하늘거리는 연꽃을 볼 수 있을 듯 하니 오늘은 그 기대감으로 연화도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다른 꽃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연꽃은 불교를 상징하는 꽃으로서 부처상이나 스님이 연꽃 대좌에 앉아 계시는 모습을 많이들 보셨을 것이다.

인도의 브라만교의 신비적 상징주의 가운데 혼돈의 물 밑에서 잠자는 정령 나라야나(Narayana)가 배꼽에서 연꽃으로 솟아났다는 내용의 신화가 있다. 연꽃을 생성과 우주창조의 의미를 지닌 꽃으로 믿는 세계 연화 사상 (世界蓮花思想) 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세계연화사상은 부처의 지혜를

믿는 불교인이 서방 정통에 왕생할 때 연화화생(蓮花化生) 즉, 연꽃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로 연결되었다. 모든 불보살의 정토를 연꽃 속에 들어 있는 장엄한 세계라는 뜻의 연화장세계(蓮花藏世界)라고 하는 것도 세계 연화 사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자신의 청정함, 고결함을 지니고 있어 불교의 이상과 부

합된다. 부처님은 더러운 곳에 있어도 항상 맑은 본성과 청정하고 지혜로운 사

람으로 곧잘 연꽃에 비유했다. 보리수 아래에서 깨우쳐 부처가 된 석가모니는

인간들이 호수의 연꽃으로 보였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불교에서 연꽃은 부처님의 탄생을 알리는 꽃이며 그런 이유로 그림, 경전 등에 다양하게 그려져 있다.

유교에서는 사군자가 일반적이어서 불교에 비하면 연꽃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하지만 중국 북송시대 주돈이의 <애련설(愛蓮說)>에서 군자의 꽃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이 살펴볼 수 있다.

水陸草木之花에 可愛者가 甚蕃하나 晉陶淵明은 獨愛菊하고 自李唐來로 世人이 甚愛牧丹

이라. 予獨愛蓮之出於어泥而不染하고 濯淸漣而不夭하며 中通外直하고 不蔓不枝하며 香遠益淸하고 亭亭淨植하여 可遠觀而不可褻翫焉하노라.

물과 육지에서 피는 초목의 꽃 가운데에는 사랑스러운 것들이 매우 많으나, 진(晉)나라의 도연명(陶淵明)은 유독 국화를 사랑하였고, 당나라 이래로는 세상 사람들이 모란을 매우 사랑하였다. 나는 유독 연꽃이 진흙에서 나왔으나 더럽혀지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겼으나 요염하지 않으며, 속은 비어 있고 밖은 곧으며, 덩굴지지 않고 가지 치지도 않으며, 향기는 멀어질수록 더욱 맑고 우뚝한 모습으로 깨끗하게 서 있어,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지만 함부로 하거나 가지고 놀 수 없음을 사랑한다.

予謂菊은 花之隱逸者也요 牧丹은 花之富貴者也요 蓮은 花之君子者也라.

噫라. 菊之愛는 陶後에 鮮有聞이요, 蓮之愛는 同予者가 何人고. 牧丹之愛는 宜乎衆矣로다.

내가 생각하건대, 국화는 꽃 가운데 은자(隱者)이고 모란은 꽃 가운데 부귀한 자이며, 연꽃은 꽃 가운데 군자(君子)라고 하겠다. 아! 국화를 사랑하는 것은 도연명 이후에는 들은 바가 드물고, 연꽃을 사랑하는 것은 나와 함께 할 이가 어떤 사람일까? 모란을 사랑하는 이들은 마땅히 많을 것이다.

이후로 연꽃은 사군자(四君子)인 매화, 국화, 난초, 대나무와 더불어 군자화 칭해졌으며, 사대부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비록 사군자에 들지 못하지만 홀로 군자로 지칭되었고, 조선 초 문인화가인 강희안(姜希顔, 1417~1464)의 화암수록 (花菴隨錄)의 ㅤ화목고구등픔제(花木九等品第)에선 매화, 국화, 대나무와 함께 연꽃을 일등급에 두었다. 이와 같이 연꽃은 군자의 꽃으로 자리 잡아 왔으며 그 청정한 속성으로 인해 세속에 물들지 않는 청아하고 고결한 선비나 군자를 표상해 왔다.
 

연화도-유숙
<그림1> 유숙(劉淑) 작 연화도 지본담채 122×32.2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숙의 연화도를 보면 그러한 상징성이 잘 표현되어 있는 것 같다.

그 이유가 진흙 속에서 피어나지만 흙탕물에 물들지 않고 곧은 줄기는 선비의

곧은 마음(지조, 충절)을 상징하고, 속이 뚫려 있는 줄기는 투명함과 군더더기 없는 줄기와 꽃이야 말로 우뚝 서있는 군자와 닮았다 하여 군자를 상징하고 있다.

민화에서의 연화도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연꽃 그림’은 행복, 다산, 풍요, 평화 등 수많은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담고

있기 때문에 소재로 즐겨 사용되었다. 민화에서는 화조화가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연꽃은 단독으로 또는 다른 물상과 결합하여 다양한 길상적 의미와 표현을

지니게 되었다. 불교나 유교의 고차원적 상징적 의미보다는 생태적인 특성에

의한 연상법이나 한자문화권에서 통하는 해음우의법(諧音寓意法)의 방식으로 세속적인 욕망과 연관 지어져 그 상징이나 표현이 다양해졌다.

자연물을 이미지 그 자체로 보지 않고 그것의 형태와 생태에 가정의 화목,

부귀와 장수, 장생불사와 같은 길상의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연화조어도-하버드대미술관
<그림2> 작가미상 연화조어도 지본 채색 94.8×333.4cm 하버드대학 미술관 소장.

특히 연꽃은 꽃과 열매가 동시에 생장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어서 자손을 많

이 얻고 싶은 염원을 담아 널리 사용되었다. 연꽃은 물속에서 뿌리가 박혀서

가지가 번성한다는 뜻을 나타내어 본고지영(本固枝榮)의 뜻으로도 쓰였다.

연꽃과 물고기가 그려진 그림은 부부간의 행복을 상징하고 화목을 염원한다.

연꽃과 게나 새우도 보이는데 게와 새우처럼 딱딱한 껍질을 가진 동물,

갑각류와 함께 그려진 것은 어떤 서열에서 으뜸을 상징한다. 수험생이 있는

집에 연꽃과 갑각류가 그려진 그림을 걸어두면 아마도 좋은 일들이 생길 듯

하다.

연밥과 쪼는 물총새도 보이는데 연밥의 씨를 쪼아 먹는 새와 그 옆에

갈대꽃을 첨가하여 그린 모습은 연달아 과거시험에 합격하기를 기원하는

희득연과(喜得連科)의 뜻이기도 하고, 생명의 근원인 씨앗을 획득하여 자손을

잉태하고 자손을 많이 퍼뜨리기를 기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손이 번성하기를 바라는 다른 연화도를 소개해 본다.

화조도-국림고궁박물관
<그림3> 화조도 4폭 병풍 작가미상 19세기 후반 지본채색 97.8×185.2cm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연꽃이 피어 있고 새와 오리들이 노니는 연못의 광경을 표현한 그림이다. 4폭의 화면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커다란 화면을 이루도록구성하였다. 만개한 연꽃과 꽃봉오리, 연밥과 연잎 등이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어 화면에서 생동감이 느껴진다. 새와 오리의 깃털을 하나하나 세밀한 붓질로 표현 하였으며, 연꽃과 연잎이 달려 있는 줄기의 미세한 털도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안료의 농담을 달리하여 연잎의 형태를 입체감 있게 표현한 솜씨도 돋보인다. 전체적으로 ‘V’형의 안정감 있는 구도와 아름다운 색깔, 섬세한 표현 기법이 조화를 이룬다. 전체적인 그림의 분위기는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자하는 소망이 엿보인다. 튼튼해 보이는 연밥을 통해 종자를 많이 맺어 자손을 많이 낳기를 기원하는 상징의 표현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 낮의 연못은 좀 적적할 때가 많다. 그러나 퍼붓는 비에 연잎에 부딪히는 빗소리는 반갑기도 하고, 이러저러한 생각과 소망은 담아보게 된다. 연화도를 감상하면서 본격적인 여름에 무더운 날씨에 가족 간에 안부인사로 가족의 화목과 안녕을 빌어본다.

박승온ㆍ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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