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 작가 개인전 이서갤러리 내달 13일까지
이지현 작가 개인전 이서갤러리 내달 13일까지
  • 황인옥
  • 승인 2023.07.13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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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옷 등 뜯기작업 끝에 ‘예술품’ 탄생
어릴 적 호기심 연장 ‘독특한 작업’
익숙함서 탈피 후 새 관점 제시
새로움은 현대미술 지향점 부합
표면 보푸라기는 ‘현대인의 초상’
작품은 회화와 조각의 중간지점
해체작업 궁극적 목표는 ‘자유’
이지현 작
이지현 작가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 이서 갤러리 전시장 전경. 이서 갤러리 제공

이지현 작가의 작업은 뜯기라는 독특한 형식을 취한다. 책의 내지를 분리한 후 날카로운 도구로 내지의 표면을 뜯고, 바니시를 칠해 불에 살짝 구워 견고하게 만든 후, 다시 원상태로 재조합한다. 사진 이미지나 신문의 표면도 뜯기라는 동일한 방식으로 작업된다. 옷도 작업의 재료로 활용되는데, 이 경우는 망치로 두드린다.

작업 소재의 표면을 뜯거나 두드리는 행위는 그에게 모두 ‘해체’에 해당된다. 뜯기를 통해 책 속의 활자를 해체하거나 옷의 표면을 뜯기라는 해체 작업을 통해 이질적인 상태로 전복한다. 작가는 이에 대해 “익숙한 일상을 해체함으로써 내용이나 형식이라는 양면에서 낯선 존재로 거듭난다. 해체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가에게 “작업이 독특하다”는 말보다 더 큰 칭찬은 없다. 독특함은 곧 새롭다는 의미이며, 이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현대미술의 지향점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이 추구하는 지상 최대의 목표가 새로움의 제시라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완전히 새로운 무엇을 제시하는 것에서부터 통념을 약간 비트는 작은 변화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새로움의 단초도 현대미술의 관점에선 두 팔 벌려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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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작가가 전시된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황인옥기자

이지현은 현대미술의 지향점을 장착하고 태어난 사람처럼 보인다. 어린 시절 소방차가 진짜 출동하는지 궁금해서 집에 불을 지르는 위험하지만 호기로운 장난을 치는가 하면, 길가에 토끼의 사체가 부패해 하얗게 해체되어 가는 모습을 그 어린 눈으로 매일 지켜보았던 것은 그의 내면에 남다른 호기심이 자리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때 그가 보여주었던 호기심의 내용이 바로 새로움에 대한 갈증이었다.

“제게 소방차의 출동이나 토끼 사체의 사멸 과정은 일상을 뒤흔드는 새로운 사건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뜯기는 어린 시절 새로움을 향한 호기심의 연장이다. 캔버스에 그리거나, 물성을 이용해 조각하거나 하는 일반적인 방식의 작업은 그의 마음을 오래 잡아두지 못했다. 대신 어린 시절 토끼 사체의 해체에서 알 수 없는 감동을 느꼈던 기억을 환기하며 해체를 작업에 끌어들이기로 작정했다. 하지만 문제는 방법론이었다. 고민 끝에 그가 선택한 것이 뜯기였다.

뜯기 작업을 20여년간 지속하고 있지만 ‘해체’는 이전에도 그의 작업에서 핵심 키워드로 기능했다. 당시 그는 신문을 조각 내 캔버스에 붙이는 방식으로 해체를 실연했다. 신문에서 내용을 더 광범위하게 확장하기 위해 책으로 넘어갔다. “이 시기부터 뜯기로 작업 방식을 전환했어요.” 이후 책은 더 큰 규모의 책장 작업으로 진화해갔다.

그의 작업에서 해체는 다변화의 길로 들어섰다. 책에서 옷으로, 그리고 사진 이미지로까지 확장됐다. 핵심 소재인 책 또한 도덕책에서 시작해 지금은 역사, 성경, 잡지, 미술책 등 다양하게 활용한다. 이들 각기 다른 소재들은 우리 삶을 압축적으로 대변하는 대상이라는 개념적인 동질성으로 연결되어 있다. 신문이나 책은 한 사회의 단면이나 시대의 흐름을 기록한 매체이고, 옷은 인간 삶의 양상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는 오브제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그에게 이것은 ‘일상’의 다른 이름이며, 결국 그의 뜯기 작업은 일상 비틀기로 귀결된다. 이를 통해 그가 목표하는 것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에게 새로운 관점은 표면 뜯기를 통해 획득한 보푸라기에서 찾을 수 있다. 매끈하던 책 내지나 옷의 표면은 뜯기를 통해 보푸라기라는 입체감을 획득하게 된다. 이 경우 책 속 내용은 읽을 수 없게 되고, 옷 또한 표면의 본래 상태가 왜곡되어 나타난다. 그가 표면의 보푸라기에서 발견하려는 개념은 “현대인의 초상”이다. “작가 고유한 정체성을 상실하고 사회적인 변화나 현상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현대인의 삶을 뜯기를 통해 획득한 보푸라기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책을 읽을 수 없게 만들고, 사진을 볼 수 없게 조작하고, 옷을 입을 수 없게 변형해 그가 얻고자 하는 궁극의 목표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그는 “진정한 자유”라고 언급했다. 그것을 가장 효율적으로 달성하게 하는 것이 그에게는 뜯기를 통한 해체였다. “해체는 세상의 편안함과 익숙함으로부터 비켜나게 해서 그 대상이 낯설게 느껴지게끔 만들고, 그 이면에 감춰져 있던 어떤 것을 끄집어내게 해 줍니다. 익숙함으로부터의 탈피이자 새로운 관점을 향한 자유 상태가 되는 것이죠.”

뜯기가 개념적으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형식적인 측면에선 책이나 옷이 예술품으로의 격상을 희망한다. 뜯기라는 행위가 가해진 책이나 사진 속 이미지는 안개 속처럼 모호해 진다. 그 결과 그의 작품은 회화와 조각의 중간 지점에 놓여진다. 일상을 내용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관점으로 전복시키기도 하지만, 형식에서도 일상 속 소재들이 예술품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내용과 형식 어느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미술이 추구하는 ‘새로움의 제시’라는 목표에 다가가고자 했습니다. 해체는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통념을 비틀어 그 이면의 본질을 드러나게 해 줍니다.”

책과 책장, 사진, 신문 등의 대상을 뜯기로 해체한 다채로운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이지현 개인전은 이서 갤러리 이서(경북 청도군 이서면 대곡길 43)에서 8월 13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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