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인문학] 우리 모두는 흔들리는 파도 위의 작은배입니다
[치유의 인문학] 우리 모두는 흔들리는 파도 위의 작은배입니다
  • 승인 2023.07.13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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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삼 대구한의대 교수
중소기업 CEO와 심리치료를 15회기 진행했다.
상담이 끝나갈 무렵 내담자가 필자에게 묘한 질문을 하나 던졌다.

"교수님! 교수님께서는 인생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가볍게 던진 질문이 아니었다. 그분의 표정에서 묻어나는 진지함이 질문의 무게를 가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음… 저는 인생이 흔들리는 파도 위의 작은 배라고 생각합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해주던 내담자의 표정이 오랫동안 잔상으로 남았다. 왜 그분은 마지막 상담에서 고승이 던지는 화두 같은 질문을 던졌을까? 궁금했다. 그리고 나는 왜? 즉흥적으로 그런 답변을 했는지도 궁금했다. 순간의 질문에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워딩은 무의식적 신념의 표현이다. 반추해보니 평소 필자의 무의식 속에 있었던 배는 나의 아바타이자 오래된 투사였고 그림자였음을 알았다.

대한민국 근대화가중에서 가장 비중 있는 화가를 꼽으라면 단연 이중섭 화가가 으뜸이다. 그가 남긴 작품들 대부분은 소와 아이들과 관련되는 작품들이다. 그중에서 필자가 가장 의미 있게 생각하는 작품이 한 점 있는데 <현해탄>이란 작품이다. 얼마 전까지 그 작품의 소장자는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께서 2021년에 수 만점의 작품을 기증하면서 현재는 국가소유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으로 편입되었다. 그 그림 속에 배가 등장한다. 수많은 배의 스토리 중에서 이중섭의 <현해탄>에 그려진 배는 완벽한 이중섭 자신의 그림자다.

1950년 12월 북쪽에 남겨놓은 어머니와 생이별을 하고, 2년 뒤 아내인 마사코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낸 뒤 이중섭의 마음은 비어갔다. 그리움에 또 다른 그리움이 보태지고 여기에 자신의 안타까움이 얹어지면서 그린 작품이 바로 <현해탄>이다. 1956년 서울 적십자 병원에서 영양실조와 간경화로 41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기 전 딱 2년 전의 작품이다. 이중섭 화가의 그림에 등장하는 배는 거친 현해탄의 파도에 맞서지 못하는 약하고 무능한 자신의 한계가 오롯이 담겨져 있다. 자신을 삼킬 것처럼 굵고 거친 파도에 비해 자신의 배는 작고 연약하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파도를 꼭 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은 배 위에 가늘게 그려진 돛대에서 오롯이 읽힌다. 한 없이 가늘고 약한 돛대지만 그 모양이 십자가를 닮았기 때문이다. 절박함과 구원의 무의식적 표현이다. 그래서 더 아프다. <현해탄>을 볼 때마다 나오는 절절함은 같은 부성을 가진 이들이 공유하는 슬픔의 공감이다.

더 있다. 필자가 기억하는 배에 대한 강렬한 기억은 100년 전에도 있었다. 세기의 탐험가 어니스트 새클튼이 주인공이다. 노르웨이 출신의 아문센, 영국의 스콧의 뒤를 이어 남극을 탐험했던 탐험가 새클턴은 영국 BBC방송에서 발표한 지난 1000년 동안 가장 위대한 탐험가 10인 중에서 유일하게 탐험에 실패한 인물이었다. 실패한 탐험가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탐험가라니 의외였을 것이다. 아무튼 그는 아문센 그리고 스콧과 똑같은 여정의 남극점 정복대신 남극대륙을 횡단하겠다는 엄청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의 꿈은 3개월 만에 남극의 얼음에 의해 좌절되었다. 모두가 죽었다고 포기한 바로 그 순간 새클턴은 모두의 생존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승조원들을 구출하는 것으로 탐험의 목적을 바꾸었다. 이전의 목적보다 더 절실하고 강렬한 생존의 이유와 삶의 의미가 생겼다.

그의 신념은 단단했고 선장으로써의 책임감은 강렬했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사우스 조지아 섬으로 가기위해 1,000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무동력 돛대뿐인 배에 자신을 포함한 5명의 대원이 올라탔다. 당연히 그는 자리는 가장 앞쪽이었다. 시속 100킬로미터의 강한 허리케인의 바람에 맞섰고 아파트 7층 높이인 20미터의 높은 파도를 넘어 결국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섬의 뒷편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빙하의 설산을 맨손으로 넘어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갔다. 지금까지 빙하로 덮인 그 산을 맨손으로 넘어서 살아온 사람들이 한명도 없었는데 그 사실 만으로도 그들은 전설이 되었다. 그리고 무려 635일 만에 승무원 모두는 단 한명도 죽지 않고 생환했다. 그 중심에 새클튼이 있었다. 이후에 사람들은 그를 '위대한 실패한 탐험가'라고 불렀다. 그의 행동이 이토록 빛났던 이유는 그가 뛰어난 리더쉽의 소유자라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모두가 좌절하고 포기할 수밖에 없는 절망의 상황에서도 신념을 잃지 않았고 또 신념을 잃지 않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2년 전 인류가 만든 가장 위대한 배인 타이타닉호가 침몰했다. 결코 침몰하지 않는다고 붙여진 배의 이름이라 '불침선'으로까지 불렸다. 하지만 그곳에서
2,200여명의 승선자 중에서 1,500여명이 죽었다. 이중바닥, 16개의 방수 격실, 특정 수위가 되면 자동으로 닫히는 문 등 절대로 침몰하지 않는 배가 침몰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자만과 오만 때문이었다.

2014년의 세월호를 언급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교훈이 그곳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기억해야한다. 우리의 인생은 거친 바다위에 떠있는 배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념이 침몰하지 않는 한 결코 우리의 배는 좌초되지 않을 것이다.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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