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따라잡기] 김정식 ‘비틀즈를 그리다’ 전…수피아미술관 9월17일까지
[전시 따라잡기] 김정식 ‘비틀즈를 그리다’ 전…수피아미술관 9월17일까지
  • 황인옥
  • 승인 2023.07.18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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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클리 출신 재즈 연주자가 그린 ‘비틀즈 이미지’
멤버 음악·정신 화폭에 재해석
구체적 대상 추상적 요소 가미
작품 속 다채로운 음률들 꿈틀
전시작품 곳곳에 즉흥성 포착
화폭 속 섬세함에 회화 오해도
음악·미술에 디지털 적극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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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연주자이자 첫 개인전을 여는 미술작가인 김정식이 자신의 작품이 전시된 수피아미술관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황인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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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식 작 ‘Living In  New York’

지난 30여년간 재즈 연주자로 살아온 김정식의 이름 앞에 최근 또 다른 수식어가 붙었다. 미술 작가다. 지난 14일부터 수피아미술관에서 생애 첫 개인전을 열고 작가로써의 활동도 본격화하며 새롭게 획득한 수식어다. 전시에는 비틀즈의 다양한 이미지들을 자신만의 감수성으로 포착한 팝아트 작품 30여점을 걸었다. “이번 전시에 소개하는 작품들은 제가 접한 비틀즈의 이미지들을 해체한 후 저의 창작 행위가 더해진 작품들입니다.”

재즈 연주자라는 그의 직업에 대한 선입견 때문인지 전시된 작품들에서 음악적인 선율이 들려왔다. 재즈 연주자로서 음악적 혁신의 아이콘이었던 비틀즈에 무한한 존경을 표하고 그들의 음악과 사랑을 화폭에 재해석한 이유도 작용했지만, 선과 면으로 구축한 구성적인 터치들에서 다채로운 음률들이 꿈틀거린 배경도 이유가 됐다. 그 역시 “음악적인 요소들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작금의 시대는 연기자나 음악인이 그림을 그리고, 화가가 노래를 부르는 시대다. 장르 파괴의 시대에선 재능만 있다면 다양한 분야에서 동시에 끼를 발산할 수 있다. 본업과 부업이 시너지를 주고받으며 동반 성장하는 구조에서 예술가들은 예술의 확장을 경험한다.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그가 미술 작가로 변신한 사건은 특별할 것은 없다. 일찍이 프랑스의 인상주의 음악가 클로드 드뷔시는 모네의 그림에서 끊임없이 영감을 받아 명곡을 작곡했으며, 반대로 칸딘스키와 파울 클레는 바그너와 바흐의 음악에서 각각 깊은 영감을 받아 그림을 그린 역사가 있다.

김정식은 음악 이전에 그림에 먼저 재능을 보였다. 어린 시절 그는 그림을 곧잘 그렸고, 그림 그리는 행위에 행복감을 느꼈다. 하지만 음악을 만나고 매료되면서 자연스럽게 그림과 멀어졌다. 그림에 대한 열정이 새롭게 고개를 든 것은 코로나 19 팬데믹 시기였다. “2년 전 로버트 휘태커의 ‘셔터 속 빛나는 청춘의 기록’전을 보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망이 솟구쳤고, 실행에 옮겼어요.”

1960년대 이후의 음악에 혁신을 일으킨 영국의 4인조 팝, 록 밴드인 비틀즈가 재즈 연주자인 그에게 전해준 감동 지점은 “기존의 음악을 전복하고 새로운 음악을 추구하는 ‘전위성’”이었다. 그가 “비틀즈가 살았던 1960년대의 사회 분위기 자체가 엄청난 시대였다”며 비틀즈 이야기를 시작했다. 세계대전이 끝나고 산업화가 진전되면서 신흥부자들이 생겨나고 새로운 문화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고,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현을 요구받던 시대에 비틀즈가 혜성처럼 나타나 시대를 선도하는 음악과 정신으로 세계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비틀즈가 추구했던 전위적인 가치와 실험정신들을 화폭 속 비틀즈의 모습에 이입한다. 비틀즈라는 구체적인 대상을 표현하지만 추상적인 요소들이 가미되어 있다. 이러한 특징은 그의 작품들이 단순하게 시각적인 형상에 머물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특히 그는 비틀즈의 음악에 대한 고뇌,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 사이의 갈등,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사랑 등 비틀즈가 당시에 느꼈던 사랑과 아픔들을 인상주의를 연상케 하는 자유분방한 선(線)과 다양한 색(色)으로 표현한다.

“비틀즈의 각 멤버들 삶, 특히 존 레논과 조지 해리슨이 뮤지션을 넘어 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정신적 예술적 혁신을 이루어내는 모습에 경외감을 느꼈고, 그런 그들의 정신들을 그리려 노력했어요.”

비틀즈를 생각하며 그리기 시작한 그림은 존 레논의 음악과 삶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전시 작품 ‘Persona’, ‘The Dreamer’ 등은 존 레논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다. 존 레논의 외로웠던 어린 시절의 반항적인 모습과 유머 있고 기괴한 행동 등 다소 상반된 이미지를 짙게 깔린 우수와 함께 표현했다.

존 레논하면 오노 요코를 떠올린다. 오노 요코는 그에게 예술적인 영감을 준 뮤즈였다. 전시 작품 ‘Love Is Real’, ‘Double Fantasy’, ‘Yes Painting’ 등에서 존과 오노 요코의 사랑과 예술적 도전이 따뜻한 색채감으로 표현돼 있다.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와의 관계를 표현한 작품 ‘John And Me’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가 등지고 있는 형상을 입체파 느낌으로 표현하며 둘 사이의 감정, 어쩌면 우리 모두가 갖고 있을 법한 다중적이고 모순적인 내면세계를 드러냈다.

음악은 공기 속에 휘발되고, 미술은 공간 속에 박제된다. 모두 위대한 예술 장르지만 표현과 소비하는 방식은 대척점에 서 있다. 하지만 그에게 두 장르는 충돌하고 갈등하기보다 상호보완 하는 관계로 다가온다. 미술이 음악에 영감을 주고, 음악이 미술에 영향을 미치는 관계다. “재즈 음악을 작곡할 때 다양한 미술 작품을 영감의 근간으로 삼기도 합니다.”

그의 예술은 음악으로부터 출발해 미술로 확장해 가고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중심은 음악이 잡고 있어, 그의 미술을 논하려면 그의 음악 인생부터 풀고 가야 한다. 중학교부터 음악에 심취했고, 대학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하면서 음악가의 삶으로 자연스럽게 접어들었다. 대학 졸업 후에는 광고와 영화 분야에서 음악감독으로 활동하며 순탄한 시작을 알렸다.

그러나 세상에는 천재들이 너무 많고, 경쟁도 너무나 치열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당시 그의 생각은 “부족한 것이 있으면 채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말의 고민도 없이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버클리 음악대학에서 재즈를 전공했다. “광고나 영화 현장에서 일하며 저의 부족함을 절감했어요. 더 공부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죠.”

세계적인 명문인 버클리 음대에 진학하고, 초기에는 쾌재를 불렀다. 적어도 버클리 음대에서 음악적인 역량을 충분히 쌓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기대감은 곧 절망감으로 바뀌었다. “그곳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기능적인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결국은 저의 음악은 제 자신이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깨달음 이후 그는 자신의 음악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재즈는 서양 대중음악의 뿌리다. 세계의 모든 문화를 흡수하여 낭만적이고 해학적인 아프리카 이민자들의 기질 위에서 태동하며 서양 대중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재즈는 사회적인 주제들과 만나며 시대를 이끌었다. 미국과 유럽, 아프리카가 혼재되고, 인종이나 계급, 정체성 등의 사회적인 담론들이 재즈 음악과 만나며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 중에서 중심으로 우뚝 섰다.

김정식의 음악적인 색깔은 사회적인 문제보다 정서적인 면에 기대는 경향이 짙다. 마음에서 오고가는 다양한 감정들이 재즈 음악으로 표출되지만 특유의 투박함은 배제된다. 짙은 절제미와 세련미로 증폭된 음악들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가 작곡하거나 연주하는 재즈곡들에서 재즈와 클래식 음악의 중간 지점을 발견하는 것은 이런 이유다. 그의 음악적 색깔들은 그가 발매한 1집 ‘Reflection’과 2집 ‘한글, 즉흥연주’ 등의 정규앨범에 오롯이 투영되어 있다. 이런 기조는 그의 미술 작품에서도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자유분방함을 추구하는 그의 철학은 음악적인 장르 파괴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재즈 뿐만 아니라 팝에서 트로트까지 다양한 음악을 작곡하고, 음원 판매 사이트에 올린다. 정통 재즈 뮤지션들 입장에선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 행보일 수 있지만 그는 “다양한 음악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재즈 음악의 확장을 위한 노력들”이라며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었다.

그는 콘서트에서 즉흥연주를 즐기는데, 여기에는 재즈 특유의 자유분방함과 맞닿아 있다. 즉흥연주는 그야말로 악보 없이 즉석에서 실시간으로 곡을 창작해 가는 연주형태다. 그가 “연주력이 갖춰지지 않으면 불가능한 공연 형식”이라고 했다. 수없이 많은 재즈 스탠더드 곡들을 능수능란하게 연주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어야만 그것들을 활용한 즉석 연주가 가능해진다. 특히나 함께 연주하는 연주자와의 초절정의 교감은 성공적인 즉흥 연주를 이끄는 원동력이다. 동료 연주자와의 교감 없이는 연주회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기 십상이다.

“즉흥연주가 시작되면 연주자에게 관객은 염두에 둘 수가 없습니다. 오직 협연자에게 초집중하며 서로 협력해야 좋은 연주를 이끌어 낼 수 있으니까요. 결국 그것은 곧 관객을 위한 것이기도 하죠.”

전시작들에서도 즉흥성은 포착된다. 특히 비틀즈 멤버들의 모습에 추상성을 가미한 작품들이 두드러진다. 화폭 속 색감이나 터치의 정교함과 섬세함 때문에 회화 작품인지 오해할 여지도 없지 않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디지털로 표현한 팝아트다. 그는 음악 작업에서도 디지털적인 요소들을 적극 활용해왔다. 디지털이 아날로그 음악을 풍요롭게 하는 또 하나의 요소로 인식하고는 다양한 음악을 구현하도록 만든 디지털 프로그램 공부에 열심이었다. 디지털 미술 또한 그 연장선에 자리한다.

“디지털 속에서는 너무나 자유롭고 방대하죠. 뭐든 가능하게 해 주죠. 저는 음악과 미술에서 디지털이라는 신기술을 활용하는데 적극적이에요. 예술의 확장이라는 지점에서 그런 기술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김정식의 ‘비틀즈를 그리다’전은 9월 17일까지 수피아미술관에서.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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