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정책을 정쟁의 도구로 삼으면 그 피해는 국민의 몫이다
[수요칼럼] 정책을 정쟁의 도구로 삼으면 그 피해는 국민의 몫이다
  • 승인 2023.07.1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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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광 대구경북소비자연맹 정책실장·경제학 박사
어린 시절 낙동강변에 살았다. 5년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60·70년대 농촌에서의 다양한 경험이 지금까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낙동강변 모래밭에는 이태리포플러 나무 숲이 있었다. 그 숲 속에는 많은 풀들이 자라 동네 형과 누나들이 소먹이는 장소로 이용했다. 한 번씩 동네 형과 누나들을 따라가면 소를 풀어 놓고는 놀았다. 더우면 맑은 강물에 뛰어들어 멱을 감았다. 목이 마르면 강물을 마시고, 배가 고프면 콩과 밀 서리도 했다.

낭만적이고 목가적인 추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장마철에 많은 비가 내리면 임시 휴교를 했다. 역류한 강물은 마을 앞 도로까지 밀려와 논밭을 삼켰다. 어린 눈에 비친 이러한 광경은 마치 망망대해를 보는 것 같았다. 동네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아저씨는 몇 일간 고립된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플라스틱 막거리통과 통나무로 엮어 만든 뗏목을 타고 면소재지로 나가 막걸리와 생필품을 구입해 왔다.

가뭄이 들면 마을 앞 저수지는 바닥을 드러내었다. 물이 빠진 진흙뻘에는 등지느러미를 드러내고 유영하는 물고기를 고사리 손으로 잡는 솔솔한 재미도 있었다. 그러나 동네 청장년들은 모두 동원되어 낙동강 물을 논밭으로 퍼 올리기 위하여 밤새도록 횃불을 밝혀 발동기를 돌리고, 긴 줄을 서서 호수를 연결하던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어느 해인가 동네 사람들이 양손에 큰 바케스를 들고 강으로 몰려갔는데, 무슨 일인가 궁금하기도 하여 구경삼아 따라 갔던 적이 있다. 많은 비가 내린 탓으로 강폭이 넓어진 낙동강은 황토물을 토해내었다. 강물 위에는 큰 물고기들이 배를 드러낸 체 떠내려가는 모습이 마치 하얀 천으로 강을 뒤덮은 퍼포먼스 같았다. 동네 사람들은 강가로 나온 잉어와 가물치를 두 손으로 건져 올려 바케스에 담았는데 금방 가득찼다.

현재 그 주변에는 산업단지가 조성되고, 달성보와 강정보가 만들어지면서 낙동강변 모습이 크게 변했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낙동강변에 살면서 홍수와 가뭄 피해는 물론 환경오염으로 인한 폐해도 직접 목격했다. 그러나 홍수와 가뭄의 피해가 더 인상 깊은 것은 대다수 마을 주민이 농업에 종사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농경사회에서는 토지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농업용 물이다. 농업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서는 물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기후는 여름의 장마기간에 강수가 집중적이고, 지하수로 저장되는 것 보다는 지표수로 흘러 바다로 들어가기 때문에 수자원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기 어렵고, 홍수나 가뭄이 일어나기 쉽다. 삼한시대에 축조되었다는 제천 의림지,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를 보면 오래 전부터 물을 관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가가 체계적으로 치산치수 정책을 실시한 것은 1960년대부터이다. 이 시기부터 계획적으로 산림녹화 사업뿐만 아니라 수자원을 지속해서 확보하고 홍수를 예방하려고 하천유역을 개발하고 정비해왔다.

물 관리를 위한 댐 건설과 보 설치에 대해서는 환경단체의 비판과 반대가 있었지만 정치쟁점화 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사업이 아닐까. 이 대통령은 후보시절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해 서울부터 부산까지 내륙수운으로 잇는 한반도 대운하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우여곡절 끝에 4대강 사업이 추진되어 물 부족과 홍수조절 기능을 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4대강 반대론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문 정부는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국가물관리위원회를 구성하여 반대론자들이 제기한 녹조로 인한 수질오염 문제 등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4대강 자연성 회복을 위한 4대강 재자연화 정책을 추진했다. 2021년 1월에는 금강·영산강 보 해체 및 상시개방을 의결했다.

반면 2022년 5월에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4대강 사업을 보는 시각은 크게 달라졌다. 같은 해 7월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보 활용을 높이는 방안 강구하고, 기후위기에 대응해 보를 잘 관리하며, 농번기와 가뭄 등 물 이용이 필요할 때 수위를 유지하고, 녹조 발생 등 물 흐름이 필요할 때 탄력적으로 개방하겠다고 했다.

이처럼 4대강 사업이 정치 쟁점의 도구가 되면서 정부의 성격에 따라 추진하는 정책이 극단적으로 차이가 나는 것은 큰 문제다. 정치적 책임도 지지 않는 인사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조직하여 시민단체가 제기한 문제를 충분한 검증 절차를 거치지 않고 정책화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는 의문이다. 정치 문제가 될 수 없는 국가의 물관리 정책에 대한 정치권의 공방으로 나타난 정책 지연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최근 호우로 발생한 큰 피해와 많은 희생이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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