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따라잡기] 김영진 작가 개인전…대구미술관 9월 10일까지
[전시 따라잡기] 김영진 작가 개인전…대구미술관 9월 10일까지
  • 황인옥
  • 승인 2023.07.2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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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작가 작품 세계는 ‘실험 정신’
미술시장 아닌 ‘예술’에만 집중
MZ세대들도 공감 발길 줄이어
통념에 비판적 고찰·대안 모색
예술 세계 지탱한 뼈대는 ‘갈등’
재료 등 한계 없는 ‘설치’ 고집
전시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작업
자유로움 추구로 예술적 충만
실험적 태도가 ‘세계적 작가’로
LED불빛사잉의휴대폰남녀
김영진 작 ‘LED불빛사이의 휴대폰 남녀’(2018) 대구미술관 제공

김영진 작가가 1970년부터 50여년간 예술을 통해 추구했던 작가정신이 최첨단을 달리는 21세기의 MZ 세대에게 여전히 유효하다면, 그의 작가정신이 시대를 앞서갔다는 반증이다. 김영진 작가의 개인전 '출구가 어디예요?'가 열리고 있는 대구미술관 전시장에 청년인 MZ 세대의 발걸음이 유난히 잦고, 그들이 70대 후반인 노(老) 작가의 작품세계를 뼛속깊이 공감하는 이 묘한 현상을 설명하는데, 그가 흔들림 없이 견지해왔던 작가정신 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어 보인다. 

그가 "이번 전시에 MZ 세대들이 많이 방문하는 것을 보면 내 작품에서 젊은 세대에게 각인시키는 특별한 지점이 있는 것 같다"며 "내가 전하려는 메시지와 젊은 사람들의 관심사가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고 MZ 세대가 그의 전시에 보내는 관심에 대한 원인을 나름대로 분석했다.  

김영진 작가
김영진 작가

 

아날로그적인 삶을 살아온 고령인 그의 작품 세계와 최첨단 디지털 기술에 환호하는 MZ 세대가 시대를 초월해 소통하는 지점에 '전위적인 태도'가 자리한다. 그는 작가로 살아온 지난 50여년간 변화와 혁신에 대한 열망을 단 한 번도 놓치지 않았고, 그 전위성이 시공을 뛰어넘어 젊은 세대와 소통하게 하는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대구미술관 프로젝트 '2023 다티스트 작가(DArtist, Daegu Artist)'로 선정됐다. 다티스트는 2021년부터 시작한 대구미술관 프로젝트로 대구·경북에 거주하거나 출향(出鄕)한 작가 중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작업을 지속하는 작가를 선정해 개인전, 학술행사, 아카이브 등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 다티스트 선정 작가인 그는 대구미술관 전시 '2023 다티스트 : 출구가 어디예요?'에서 작업 세계 전반을 소개하고 있다.  

그의 예술적인 행보는 '실험정신'으로 압축된다. 그는 일찍부터 통념에 대한 비판적인 고찰과 대안 모색을 예술의 중심에 놓았었다. 그의 주제의식은 개인적인 성향과 시대적인 흐름으로 맞물리며 진행됐다. 1960년대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과 영화, 음악, 미술, 연극 등에 걸친 문화운동을 펼치며 특유의 전위적인 실험정신을 표출했고, 1970년대는 국내 미술계에 불어 닥친 집단적 실험 미술활동의 일원으로 편입되며 미술운동의 전위대열에 섰다. 당시 '서 있는 바람기둥', '수혈' 등 실험적인 설치작업을 '앙데팡당' 전시에 선보인 것도 같은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1970년대 중후반에 국내현대미술을 선도했던 '대구현대미술제'는 동료들과 함께 그의 전위성이 분출되는 분수령이었다. 그는 5회 모두 대구현대미술제에 참여했던 미술가 8인(김영진, 김용민, 김용익, 박현기, 이강소, 이건용, 최병소, 황현욱)중 1명으로 이름을 올렸고, 1978년 제4회 대구현대미술제 3부 '비디오 & 필름'전에 국내 최초로 실험적 비디오를 출품한 5인(김영진, 박현기, 이강소, 최병소, 이현재) 중 1명으로 활약했다. 

예술가의 역할 중에서 가장 크게 요구되는 덕목은 '미래 사회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는 것이 아니어서, 그 첫 시작은 기존의 통념과 갈등하는 것에서부터 표출한다. 김영진 역시 '갈등'을 기존의 사회를 지배하는 고고한 흐름에서 균열을 발견하고, 진보된 세계로의 진입을 위한 자양분을 삼았다. '갈등'은 그의 예술 세계를 지탱하는 뼈대였다.  
"예술의 근본은 갈등, 즉 카오스에요. 카오스는 인간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거대한 에너지죠. 저는 그 덩어리들을 해결해야 조화로운 세계를 열 수 있다고 보고,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에 집중했어요."  

현실의 재현이라는 고전미술의 기능이 사진으로 넘어가면서 현대미술의 고민은 가치적인 측면, 즉 정신적인 영역으로 넘어갔다. 사유의 결과를 다양한 미술 양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가 됐다. 김영진은 철저하게 이 관점을 자신의 미술에 접목했다. 삶의 현장에서 경험한 단상들을 사유의 영역으로 격상시켜 작가가 가진 철학적인 견해들로 재해석하고, 그 결실들을 시각예술이라는 장르로 구현했다.     

그가 사유한 주제들은 설치라는 장르로 구체화 됐다. 캔버스를 벗어나 설치미술로 자리를 잡은 것은 20대 초반 때였다. 그는 "이 시기에 이미 무한대로 다 풀어놓았다"며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미술활동을 위한 최적화한 장르로 설치에 주목했다. "설치는 재료나 구현방식에서 한계가 없어 제가 추구하는 미술과 잘 맞아 떨어진다고 판단해서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어요."

김영진 작 '1170ea variable installation'. 대구미술관 제공
김영진 작 '1170ea variable installation'. 대구미술관 제공

대구미술관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은 그야말로 방대하다. 작품의 재료나, 그 이면에 존재하는 주제적인 측면에서 너무 방대해 난해하다는 인상까지 받게 된다. 하지만 다양한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은 하나이기 때문에, 내용의 핵심만 파악하면 의외로 관통하는 흐름을 쉽게 읽어낼 수 있다. 그 핵심 개념을 거창하게 표현하면 '본질'이며, 구체적인 개념으로 언급하면 '자연의 이치'다. 
세상은 선으로만 존재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악으로만 점철되지도 않는다. 선과 악, 음과 양, 삶과 죽음, 갈등과 조화, 불교와 기독교 등의 서로 대칭적인 가치들이 균형점을 찾아가며 인류는 한 걸음씩 진화해왔다. 그의 작업에서 언급되는 대칭이나 중력, 종교, 삶과 죽음 등의 주제들은 만물의 기본 구조인 뼈대, 즉 본질과 맞물려 있다.  

맥락 없이 다채롭게 구현된 것처럼 보이는 그의 다양한 작품들에서 발견되는 가치는 '대칭'이다. 그것은 그가 발견한 존재의 본질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대칭을 추구하며 존재해 가려 한다는 대칭의 본질을 이해하면 제 작업은 쉽게 이해할 수 있어요. 다양한 작품들은 본질에 대한 변주에 해당되니까요." 이번 전시에서 이전에 발표했던 작품들이 만나 새롭게 하나의 작품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들이 전체적인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은 작품 저변에 깔린 개념인 '본질'로 수렴된 이유다.    

이번 대구미술관 전시에 '본질'에 대한 개념을 다양하게 변주한 작품들이 펼쳐져 있다. 부처가 뼈만 앙상하게 남은 남자를 안고 있는 제단 아래 목이 잘린 닭들이 조아리고 있는 작품 '피에타'는 사망한 예수를 안고 슬프게 우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조각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조각상'을 연상케 하고, 주변 사람의 얼굴 1,170개를 석고로 떠낸 마스크로 구축한 작품 '1980~1988'에선 타인과의 관계가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언급한다.

김영진 작 '신체석고뜨기'(1978). 대구미술관 제공
김영진 작 '신체석고뜨기'(1978). 대구미술관 제공

자신의 신체 부분이 맞닿아 생기는 오목한 공간에 석고를 부어 수평 상태에서 굳힌 후의 상태를 24장의 사진으로 남기고, 이후 몸에서 떼어낸 양각 모양의 석고 조각을 테이블에 담아놓은 사진과 오브제 작품인 '석고로 신체 홈 본뜨기'에선 1970년대에 그의 과제였던 아직 정의되지 않은 설치미술로의 확장에 대한 실험을 엿보게 한다. 

전시작인 '석고로 신체 홈 본뜨'는 오는 9월 뉴욕 구겐하임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 주최하는 '한국 실험미술 1960~1970'전에 초대됐고,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에도 그의 작품이 출품된다. 젊은 날로부터 시작된 그의 실험적 태도들은 그를 세계적인 실험미술 작가로 이끄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전시작품들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로 점철된다. 이번 전시에 죽은 고양이 모형을 허공에 매다는 설치 미술을 재현했지만, 1970년대에 그는 칠성시장에서 파는 고양이 사체를 직접 매달며 특유의 전위성을 구현했다.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는 실험적인 장치로 인한 결과이기도 하지고, 무뎌진 감성을 환기하기 위한 장치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대구미술관 전시 제목인 '출구가 어디예요?'는 그의 예술세계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그는 삶이나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확장이고, 그 끝을 죽음으로 인식한다. 그에게 출구는 끝이 아닌 과정이며, 이런 맥락에서 그의 삶이나 작업은 늘 현재진행형이다. "작가에게 전시는 소통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이벤트지만 제게 중요한 것은 그 너머에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작업입니다. 작업이야말로 끊임없이 진행되는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기에 작가인 제가 집중해야 하는 가치인 것이죠." 

그의 작업은 매끈함과 거리가 있다. 여기저기서 수집한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있는 재료들을 그가 사유한 결과로 시각적으로 풀어놓지만 재료 자체를 매끈하게 다듬지 않아 투박한 상태들이 그대로 노출된다. 여기에는 스스로를 기술자가 아닌 창작자이기를 희망하는 작가의 의지가 숨겨져 있다. 작업의 형식에서 하나의 흐름을 구축하지 않고 다양한 변주를 거듭하는 것 또한 기능 보다 창작에 방점이 찍힌 이유가 자리한다. 

누가 봐도 김영진을 연상케 하는 동일한 작업 방식을 제시할 경우 상업적인 미술시장에서 유리할 개연성은 높아진다는 것을 그 역시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는 일생에서 단 한 순간도 그런 태도를 갖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실험정신을 끊임없이 표출하는 작업 과정에 맞춰져 있었고, 실험성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을 향한 그의 순수성은 그의 예술을 지탱해온 핵심 가치였기에 올곧게 자신의 철학을 고수할 수 있었다. 

미술시장으로부터 비껴난 그의 삶은 물질적인 측면에서 말할 수 없는 고난으로 이어졌지만 창작이라는 예술 본연의 가치에 집중한 것이 그를 큰 작가로 확장시킨 원동력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평생 시대의 통념으로부터, 상업적인 미술시장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움을 추구했기에 저의 아방가르드 정신은 오롯이 유지될 수 있었을 겁니다." 그의 예술적인 충만은 바로 그 자유로움이 준 결실이었다. "비록 지난 50년간 작품 판매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창작자로 살아올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전시는 9월 10일까지 대구미술관 2, 3전시실, 선큰가든에서.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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