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훌라후프를 주워 돌린다
뱀 혓바닥
뾰족한 돌기, 천천히 내 허리를 핥는다
안쪽으로 부풀던 배, 배꼽을 중심으로 돈다
날비에 미끄러진다
하나, 둘, 셋, 열
보라, 연두, 자주, 주황
사라지는 방향이 일치하지 않을 때 일어나는 기호들
양팔을 가슴에 모은다
사라진 손가락 꿈틀거리며 지난겨울의 바다를 밟는다
물이 허공으로 튄다
내 속을 점점 빨리 침몰시킨다
정면에 매달린 달력의 숫자
살들끼리 멀미가 난다
가라앉을 수도 있겠다
◇김성신= 약력 전남 장흥 출생. 광주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문학박사. ‘불교신문’ 신춘문예 시 등단(2017년). 시집 ‘동그랗게 날아야 빠져나갈 수 있다’(2022년). 한국해양문학상 수상.
<해설> 뱃살이 문제다. 뱃살을 빼는 데는 훌라후프만 한 게 없다는 조언을 여러 번 듣고도 난 아직 훌라후프를 돌려본 적이 없는데, 시인은 훌라후프만 돌린 게 아니라, 바다의 일렁이는 멀미까지 밟아 돌린다. 아마도 훌라후프의 안쪽에 허리의 지방층 군살에 자극을 주는 어떤 장치가 있는 것 같은데 그걸 “뱀 혓바닥”으로 상상하다가 바야흐로 직관의 범위까지 넓혀가는 넉살스러움이 시에 재미를 더한다. 핥는다, 돈다, 미끄러진다, 밟는다, 튄다, 침몰시킨다 등의 동적인 요소들이 불룩하게 나온 배를 가라앉힌다. 그러니까, 마지막 한 연은 코로나 이후 불어난 뱃살의 무게만 20kg을 훌쩍 넘은 나에게도 멀미 나도록 움직이면 가라앉는다는, “빠진다”라는, 어떤 희망의 또 다른 함축이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