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온의 민화이야기] 어해도, 입신출세·군신유의…인간 삶 비유하는 다양한 함의 담다
[박승온의 민화이야기] 어해도, 입신출세·군신유의…인간 삶 비유하는 다양한 함의 담다
  • 윤덕우
  • 승인 2023.07.2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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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꺼풀 없어 항시 뜨고있는 눈
밤새워 학문 수행 정진 의미
비늘은 갑옷처럼 수호·제액 예방
많은 알 낳아 풍요·다산 상징도
성리학 모순 벗어난 조선 후기
실학 발전 더불어 관물인식 변화
동·식물과 어류 관심 증가시켜
어해도 성행에 지대한 영향

 

어해도-국립중앙박물관
작가미상 어해도. 6폭 병풍 19세기 말 지본담채 각 100×28.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오늘은 요즘 핵 오염수 방류에 따른 이슈로 힘들어하시는 어민들과 수산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을 위한 물고기에 대한 좋은 의미를 이야기해 위로의 마음을 드리고자 한다.

우리의 옛 그림 중에는 물에서 노니는 물고기와 그 외 다양한 수중 동물들을 그려놓은 그림들이 있다. 이런 그림들을 어해도(魚蟹圖), 어류화(魚類畵)라고도 한다. 어해도(魚蟹圖)란 물고기와 게를 그린 그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나, 넓은 의미에서 수중에 사는 생물을 소재로 한 그림을 말한다. 어해도에는 붕어, 잉어, 숭어, 피라미, 쏘가리, 메기, 도미, 가자미, 가오리, 홍어, 문어, 게, 새우, 전복, 조개 등이 그려지는데 이들 물고기는 암수 쌍으로, 혹은 새끼를 거느린 모습으로 나타나며 수초, 꽃, 새들까지도 등장한다. 다양한 어족들이 노니는 모습은 마치 한가로운 수중 낙원과 같이 보이며, 물고기의 자유분방한 유영은 답답한 삶의 현실에서 벗어난 해탈의 경지를 느끼게 한다.

우리나라는 물론 동·서양의 물고기 그림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특히 물고기는 눈꺼풀이 없어 항시 눈을 뜨고 있으므로, 학문 수행을 밤새워 정진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고, 재물을 밤낮없이 지킨다는 의미가 있다. 또 비늘이 갑옷에 비유되어 수호와 제액 예방의 뜻으로 쓰였다. 물고기가 곧 집안의 파수병이며 수호신이었던 것이다. 또 많은 알을 낳아 풍요와 다산, 생명력, 부귀영화의 뜻이 있다. 잉어는 ‘등용(登龍)’하여 입신출세하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많이 그려졌다. 또한 왕공사대부들은 물고기를 속세에서 벗어나 유유자적하는 존재로 환치(換置)시키기도 하였는데, 이처럼 어해도 제작의 주된 배경은 다양한 상징에서 찾을 수 있다.

어해도의 상징적인 의미는 그 의미하는 바에 따라 입신출세(立身出世), 부귀유여(富貴有餘), 수복장수(壽福長壽), 부부화합(夫婦和合), 다산기자(多産祈子), 가내평안(家內平安) 길상벽사(吉祥邪) 등의 길상적 의미와 군신유의(君臣有義), 은일자적(隱逸自適) 등의 유가·도가의 동양사상적 의미로 구분할 수 있다.

중국에서도 물고기를 소재로 한 그림이 일찍부터 그려졌다. 북송(北宋) 말기인 서기 1120년에 편찬된 <선화화보(宣和畵譜)>에 ‘용어문(龍魚門)’이 있어 그림의 소재가 되는 십문(十門)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당시 물고기가 이미 그림의 한 장르로 다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 이후 원대(元代), 명대(明代)를 거치며 어해도의 소재에는 정치적 의미나 인간의 삶을 비유하는 여러 상징이 부여되었으며, 따라서 다양한 함의를 가진 어해도의 역사가 전개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보다 더 기복적(祈福的) 성격이 강한 어해도가 많이 제작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물고기를 소재로 한 미술품의 경우, 울주군 반구대의 암각화를 비롯하여 고구려 고분벽화 등에도 많은 어종이 등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18세기 문예부흥기인 영·정조기를 거치면서 <자산어보(山魚譜)>와 같은 전문적인 물고기 백과사전류인 어보집이 편찬되는 등 물고기에 대한 관심은 당시의 어해도 제작에 자극을 주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어해도는 조선 중기까지는 현전하는 작품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도외시되던 분야였다. 그런 어해도가 19세기 이후 민화에서는 급증이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현전하는 작품이 많다. 그렇다면 왜 조선 후기에 접어들어 물고기 그림이 갑자기 급증했던 것일까?

한국적 어해도 화풍이 성립된 조선 후기는 대의명분을 중시하던 성리학의 모순에서 벗어나 실용적인 학문인 실학이 발전했고,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사고가 크게 중시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시켰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17∼18세기의 문인들의 관물인식(觀物認識) 변화와 자국(自國)에서 나고 자라는 동·식물 및 어류에 대한 관심을 증가시킴과 동시에 어해도의 성행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여기 그러한 관심을 생물의 실체적 묘사를 통해 새로운 어해화의 기능을 창출한 화가가 있다. 장한종은 정교한 필치와 채색으로 다양한 어종의 외양 및 생태를 정확히 표현함으로써 어류 관련 지식을 시각화하였다.

 

궐어도-장한종국립중앙박물관
<그림1>장한종 필 궐어도. 17세기후반 제작 지본담채 25.6×29.4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그림1>장한종(자 광수(廣叟), 호 옥산(玉山))은 안동 장씨 화원 집안 출신으로 그 또한 화원으로서 1795년(정조 19)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 제작에 참여했다. 장한종은 특히 어해화(魚蟹畵)를 잘 그려 이 분야의 제일인자로 손꼽힌다. 17세기에 활동한 김인관(金仁寬)의 어해화풍을 계승하였으며, 물고기의 종류를 다양화하고 표현에서 사실성을 높이고, 배경의 바위와 나무 표현법에서 김홍도(金弘道)의 화풍을 가미하여 조선 후기 어해화의 전통을 확립하였다.

가운데에 반으로 접힌 자국이 남아 있는 이 작품은 오른쪽 아랫부분을 중심으로 하여 물풀사이로 쏘가리 세 마리가 있고, 왼쪽 윗부분에 물 위로 솟아오른 쏘가리를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그의 기량을 확인할 수 있다. 유재건(劉在建)의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에 장한종은 물고기들을 사다가 자세히 살펴보고 이를 모사했다고 전한다.

복숭아꽃이 물 위에 떠 있는 것으로 보아 장자(莊子)의 ‘호복간상(濠濮間想 : 한가롭게 소요하고 아무런 욕심이 없는 생각을 말함’이라는 고사에 기원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쏘가리 그림은 쏘가리를 의미하는 ‘궐(鱖)’자가 대궐을 지칭하는 ‘궐(闕)’과 발음이 같아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살이를 기원하는 입신출세(立身出世)의 상징적 의미로 그려졌다.

‘입신출세(立身出世)’라 하면 높은 벼슬에 올라 많은 봉급을 받아 안정되고,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은 누구나 귀하게 되기를 바라는데, 여기서 귀함이란 높은 지위, 높은 벼슬을 가리킨다. 길상으로 대변되는 복·록·수 중 입신출세를 해서 벼슬길에 오르게 되면, 관직에 해당하는 록(祿)뿐만 아니라 경제적 부의 창출과 존경까지 한 몸에 받게 되니, 복(福) 또한 더불어 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주제에 복·록의 길상뿐 아니라 존경까지 담고 있어, 어해도에 있어서 많은 제작을 가능케 했을 것이다.

삼여도-경기대학교 박물관
<그림2>작가미상 삼여도. 19세기 지본채색 66.7×35 경기대학교 박물관 소장.
어해도의 상징적 의미를 학문탐구와 관련하여 알아보자.

<그림2>물결 사이에서 뛰어오르는 물고기 세 마리가 있는 그림인데 이러한 작품을 ‘삼여도(三餘圖)’라 부른다. 왜 물고기 세 마리를 그려놓고 삼여도라고 할까?

우선 ‘삼여(三餘)’의 뜻이 무엇인지 살펴보면 ‘삼여’란 ‘세 가지 여유’라는 뜻으로,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왕숙전(王肅傳)의 동우(董遇)에 얽힌 고사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옛날 한 농부가 학문 높은 선비인 동우를 찾아와서 공부 배우기를 청하자, 그는 “백 번의 책을 읽으면 뜻을 스스로 터득할 터이니 먼저 책을 읽으시라(讀書百意自見)”고 말했다. 농부 왈“저는 농사일이 바빠서 도저히 책을 읽을 시간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이에 동우는, “농사일이 아무리 바쁘다지만, 겨울은 1년의 여분(餘分)이고, 비 오는 날은 맑은 날의 여분이고, 밤은 낮의 여분이니 어찌 시간이 없다고 하는가?”고 하였다. 이 이야기에 연유하여 ‘삼여(三餘)’라는 말이 생겨났고, 학문하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정신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 되었으며, 이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 세 마리의 물고기로 그려져서 선비들 간에 사랑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왜 물고기를 그렸을까?

그 이유는‘여유로울 여(餘)자’와 ‘물고기 어(魚)자’의 중국식 발음이 서로 같음을 이용한 것이었으니, 물고기 세 마리를 ‘삼여(三餘)’의 의미로 표현해 놓은 것이다.

요즘 우리 수산물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덩달아 소금가격이 치솟아 필자도 불안한 마음에 소금 한 자루 쟁여두는 웃지 못 할 헤프닝도 있었다.

바다 속은 국경이 없고, 니 것 내 것이 따로 경계가 없는데... 국민들의 걱정하지 않도록, 안심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국제기구에서 끊임없는 관심과 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늘 물속을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 그림 하나로 시름에 잠겨있는 우리 어민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박승온ㆍ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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