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수성, 서정숙 개인전 ‘樂’
호텔수성, 서정숙 개인전 ‘樂’
  • 황인옥
  • 승인 2023.07.27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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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사람이 된 ‘樂’…“모두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
전통서예 쇄락하는 현실 직면
동시대와 소통하는 방법 모색
현대인에 익숙한 서양화 접목
글자 樂 뜻 전하고 조형적 해석
꽃·한자 담은 작품 50여점 선봬
서정숙연작-락
서정숙 작 ‘락’ 서정숙 제공

다완이나 꽃병에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들이 탐스럽게 피었다. 정물화인데 현실을 재현한 극사실적인 표현과는 거리를 둔다. 정지된 물체를 구도에 맞게 배치한 정물화의 정석을 따랐지만, 작가의 심상에서 재창작된 표현주의에 가깝다. 서정숙 작가의 작품세계인데, 자세히 보면 눈에 익숙한 정물화와 결이 조금 다르다.

그의 정물화를 특별한 지점으로 이끄는 요소는 한자(漢子). 그는 정물화에 한자를 차용한다. 50여년간 서예에 천착한 배경의 작용이다. “정물화의 형식을 취하지만 한자를 추가했어요. 한자는 저의 정체성을 설명해주는 중요한 소요입니다.”

혜림 서정숙 개인전이 호텔수성 로비 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다. 꽃을 단순화해 재구성하고 한자를 조형적으로 표현한 작품 50여점을 소개하고 있다. 전시작의 제목은 ‘락(樂)’. 정물화에 한자의 즐거울 락(樂)을 조형적으로 표현한 연작이다. 그가 그림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가 ‘락’자에 담긴다. “제 그림의 핵심은 즐겁고 행복한 기운을 화면에 불어넣는 것이에요. 락이라는 글자를 통해 저의 행복에 대한 염원이 세상으로 퍼져 나가기를 바라죠.”

한자는 뜻글자다. 글자에 뜻이 내포된다. 작가에게 한자는 두 가지 의미로 인식된다. 그는 한자에서 조형적인 요소를 발견하고, 글자가 가진 뜻, 즉 의미를 그림으로 전달하려는 태도로 일관했다. 특히 글자 속 의미를 그림으로 표현하려는 의지가 확고하다. 여기에는 50여년간 서예가로 살아온 그의 숨은 이력이 작용했다.

반평생을 정진해야 서예가라는 수식어에 당당할 만큼 서예는 꾸준한 정진을 요구하는 장르다. 그 역시 30여년간 서예의 멋과 맛에 빠져 살았다. 복병은 서예를 바라보는 사회적인 인식이었다. 20여년전 전통서예의 쇄락을 목도하면서 고민에 빠져들었다. 서예가 외면 받을수록 “동시대와 소통하는 예술가”로 살고 싶은 갈증이 차올랐다. 그가 내놓은 대안이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옛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작업의 가닥을 잡았다. 그 실천적인 행위로 한자를 조형적으로 재창작하고 서예와 서양화의 접목으로 표출됐다.

“20여년 전부터 서예의 현대적인 재해석을 통해 현대인과 소통하는 서예를 추구했어요.”

서예와 서양화화의 접목을 시도했지만 초기에는 서예적인 요소가 강하게 드러났다. 한자가 상형문자로부터 출발한 것에 착안해 문자의 조형화를 시작한 것. 하지만 그것마저 놓아야 한다는 생각 아래 또 다시 변화를 시도했다. 그림의 소재나 재료, 표현법 등에서 서양화적인 화풍에 더 다가갔다. 화려한 색채의 아크릴 물감과 캔버스, 광목, 모시, 비단 등의 재료들을 적극 활용했다. 소재나 구도 또한 서양의 정물화를 차용했다. 색채 또한 오방색 등을 적극 사용하며 화려함을 더한다.

“점 점 서양화로 변화하려 했어요. 요즘 사람들의 눈에 익숙한 재료와 소재를 찾다보니 그런 방향으로 간 것 같아요.”

서정숙 작가
서정숙 작가가 호텔수성 로비 전시관에 전시한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황인옥기자

정물화에 한자를 조형적으로 차용하는 것을 개별성으로 확보한 그다. 특히 ‘락’자를 간결한 선으로 구성해 춤추는 사람의 형상으로 의인화한 형상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락’으로 의인화한 사람은 작가 자신이기도 하고, 감상자이기도 했다. 그것이 누구이든, 그의 화면에서 근심 걱정을 떨쳐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즐거이 유영하기를 염원한다.

지난 20여년간 한자 활용의 변화 못지않게 다양한 화풍으로의 변화에도 적극적이었다. 문자 중심에서 그림 중심으로 옮아왔고, 다완이나 화병을 중심 소재로 채택하다 최근에는 꽃과 식물 등의 자연물을 추가했다. 그에게 화병이나 꽃은 모두 자연의 소산으로 인식된다. “꽃병도 흙과 불을 재료로 하기 때문에 결국 자연의 일부이며, 꽃이나 식물 또한 그 자체로 자연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표현하려는 것은 자연입니다.”

우주의 이치에 순응하며 본분을 지켜가는 존재는 자연이다. 인간은 욕망의 역사로 점철되어 왔지만 자연은 그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단 한 순간도 자신의 본분에 반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 작가는 바로 그 자연의 무욕(無慾)과 순응(順應)적인 삶에 주목했다.

“사람이 가장 즐거울 때는 자연과 벗 삼을 때인 것 같아요. 자연에는 치유의 기운이 스며있죠. 제가 자연을 저 만의 화풍으로 재해석하는 배경에도 자연이 가진 즐거움과 치유라는 덕목 때문입니다.”

정물화의 형식을 따르지만 그는 여전히 서예적인 요소를 작업의 중심에 놓는다. 내용적으로는 한자의 의미를 전달하면서, 형식에서 조형적인 요소로 활용한다. 정서가 점점 메말라 가고 외로움에 노출되는 강도도 강해지고 있는 현대인에게 문자가 가진 의미적인 측면을 경험하게 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이 곧 사유와 명상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전통서예가 현대인에게 친근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지만 그것을 현대적으로 풀어내면 좀 더 쉽게 소통할 수 있습니다. 재료나 소재, 색상을 현대적인 미감으로 표현하면 되니까요. 저는 그 작업을 앞으로도 계속해 갈 것입니다.” 전시는 8월 20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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