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다부동 전적지, 백선엽 이어 이승만·트루먼 동상도 제막
[데스크칼럼] 다부동 전적지, 백선엽 이어 이승만·트루먼 동상도 제막
  • 승인 2023.08.01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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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삼수 서울본부장
며칠 전이 정전협정 70주년이었다. 희한한 기념일이다. 전쟁에서 이긴 것도 아닌, 멈춘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기념일에 칠곡군 가산면의 ‘다부동 전적기념관’에 백선엽 장군의 동상에 이어 6.25 때 나라 지킨 이승만,트루먼 전 대통령의 동상이 제막됐다.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발발 한달만에 대구와 부산을 남기고 남한은 적의 수중에 들어갔다. 6.25 때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꼽히는 다부동전투(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는 아군 병력은 1만5천, 북한군은 3개사단 3만명, 전차 34대로 막강한 화력을 보유했었다. 흘린 피가 강물을 이룬 치열한 전투 끝에 국군이 북한군의 대 공세를 저지시키고 대구로 진출하려던 북의 세를 꺾었다.

백선엽장군은 국군 제1사단을 지휘해 칠곡군, 가산·동명면 등지를 아우르는 다부동 전투에서 미군과 함께 북한군 3개 사단을 격멸했다. 당시 백선엽 장군은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쏘고 가라”는 말을 남김으로써 임전무퇴의 군인정신을 실천했다. 전쟁을 이겨낸 건 참전장병들의 희생 덕분이다. 앞서 트루먼 미국 대통령 주도로 UN이 적시에 참전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면 한반도는 적화되었을것이다. 다부동 전적지에 동상이 세워진 까닭이다.

고 백선엽장군 추모비 옆에 ‘지게부대 추모비’도 세워졌다. 치열한 다부동 혈투 당시 칠곡 주민들로 구성된 지게부대원 2800여 명이 전사했다고 한다. 고 밴플리트 사령관은 “이들의 고귀한 희생이 없었다면 병력 10만명이 더 필요했을 것”이라고 생전에 말했다. 6·25전쟁 당시 국군을 지원했던 칠곡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지게를 지고 탄약과 연료, 식량 등 수십 kg의 보급품을 싣고 국군과 미군에게 전달했다. 하산할 때는 숨지거나 다친 장병을 지게에 태워 내려와 ‘지게 부대원’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6.25 때 전국에서 5만명 가깝게 지게부대원이 희생됐다.

당시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의 결단으로 유엔군이 한국전쟁에 참전하면서 서울을 수복할 수 있었고, 평양을 넘어 진군하면서 전쟁은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중공군이 북한 편을 들며 참전하면서 아시아의 작은 국가는 국제전쟁의 전장터가 됐다.

전쟁이 3년간 지속되자 미국은 더는 전쟁에 휘말리기 싫어했고, 전쟁이 계속되는 상황도 부담이었다. 영국 등 다른 유엔 참전국들도 전쟁에서 발을 빼길 원했다. 미국은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맥아더를 해임해 불러들이면서, 동시에 중공군과 포로 송환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전쟁을 끝낼 준비를 했다. 이승만은 동의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휴전이라는 일시적인 조치가 아닌, 보다 확실한 안전장치가 필요했다.

당시 이승만대통령과 한국민은 정전협상을 반대하고 통일을 열망했다. 열화 같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의 종말을 고하는 휴전협정은 전쟁 발발 만 3년 1개월 2일 만에 판문점에서 유엔군 측 수석대표 해리슨 중장과 북한측 대표 남일 간에 서명되었다. 대한민국이 빠진 채 정전협정이 체결됐다. 협정에 조인한 클라크 사령관은 탄식했다. “나는 승리하지 못하고 정전협정에 조인한 첫 미국 사령관이 됐다.” 38선에서 시작한 전쟁은 38선 부근에서 멈춘다.

정전협정 서명식장에 유엔군 측은 한국 기자의 장내 조인식 취재를 2명으로 제한했다. 당시 현장에 들어갔던 종군기자 고 최병우의 회고록에는 “백일몽과 같은 11분간의 휴전협정 조인식은 모든 것이 상징적이었다. 특히 우리 한국에는 너무도 비극적이며 상징적이었다. 학교 강당 크기만 한 조인식장에 할당된 한국인 기자석은 오직 둘 뿐이었다. 유엔 측 기자만해도 약 1백 명이고 참전하지 않은 일본인 기자석도 10개가 넘는데 휴전회담에 한국을 공적으로 대표하는 군 장교는 한 사람도 볼 수 없었다. 이리하여 한국의 운명은 또 한 번 한국인의 참여 없이 결정되는 것이다.”

북은 정전협정 기념일을 전승기념일로 명명한다. 전승이라니, 그들은 패배했고 밥도 못 먹고사는 나라가 되었다.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전승절’ 기념 열병식에 김정은이 러시아 국방장관,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 부위원장과 함께 참관했다. 중국은 항미원조(抗美援朝)를 강조하며 북과의 연대를 내세운다.

70년전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핵을 보유한 북은 거침없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고 정세는 점점 더 불안정해지고 있다. 우리는 단결해야 한다. 한미동맹을 더 견고하게 발전시키고 세계 자유주의세력과의 연대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전쟁은 늙은이들이 일으키지만 싸우고 죽는 것은 젊은이다” 허버트 후버 전 미국 대통령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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