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문예회관, 여류100호회 ‘한·미·불 국제교류전’
대구문예회관, 여류100호회 ‘한·미·불 국제교류전’
  • 황인옥
  • 승인 2023.08.02 21:2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른 문화권과 교류 활성화·예술환경 확장 도모
◇美 이리나 로드리코프
산 그려도 구상·추상 경계 허물어
관행 보다 우연적 효과에 ‘환호’
◇佛 라리사 누리
‘행복’ 그리기로 긍정 기운 넘실
자연성·입체감 위해 모래 활용
20230725_175507
이리나 로드리코프가 대구문화예술회관 전시실에 걸린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올해 대구에서 눈에 띄는 전시 경향은 해외교류전의 활성화다. 다양한 전시들에서 해외교류가 진행되고 있다. 그 중에 여류100호회의 기획 전시가 자리한다. 여류100호회는 지난 25일부터 30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 1,2전시실에서 한·미·불 국제교류전 ‘색채의 언어, 우주를 사유하다’를 진행했다.

코로나19로 다소 정체된 국제교류전의 활성화와 예술환경을 확장하려는 목적으로 열린 전시에 이리나 로드리코프(미국), 라리사 누리(프랑스), 금영숙(프랑스&한국)과 여류100호회 회원 23명이 참여했다.

서로 다른 문화권의 정체성, 비전을 과감한 색채 언어를 선보였고, 이들 중에서 전시에 참여한 두 명의 해외 작가의 작품세계가 관심을 끌었다.

◇ 미국의 이리나 로드리코프

“6년 만에 만난 대구 작가들의 작품에 변화를 발견하게 됩니다. 작가마다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기 마련인데,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연구하고 변화해가는 모습이 존경스러워요.”

이번 전시 참여를 위해 대구를 방문한 이리나 로드리코프에게 전지 참여에 대한 소회를 묻자 “대구 작가들과는 두 번째로 교류전에 참여하고 있는데 첫 번째 전시 때보다 작품 세계에 변화를 느낄 수 있어 인상 깊었다”고 했다. 모든 인생이 항상 변화하듯, 작업도 제 자리에 있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여야 하는데 다시 만난 대구 작가들에게서 그런 태도를 읽어 감동스럽다는 이야기였다.

이리나 로드리코프의 예술세계는 혁신성에 맞춰져 있다.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미의식을 개척하는데 예술적인 지향점을 부여해왔다. 이번 전시에 펼쳐놓은 그의 작품들은 사계절 변화하는 산의 모습이었다. 우주의 질서에 순응하는 자연의 섭리가 계절마다 색을 달리하는 화폭 속 산의 형상에서 발견하게 됐다. “산을 좋아해서”라는 것이 그가 산을 그리는 이유였다.

산을 그리지만 곧이곧대로 그리는 것은 그의 성향에 부합하지 않는다. 특이한 점은 정상에서부터 빗물처럼 흘러내리는 산의 형국에서 간단치 않은 기운들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이는 잉크가 이끈 효과다. 그가 잉크에서 발견한 것은 “판파지적인 효과”다. 기존의 물감에서 발견할 수 없는 독특한 효과인데, 산이 잉크를 만나면서 거친 호흡을 토해내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재탄생하는 듯했다.

잉크라는 새로운 물성에 과감성을 보여준 것에서 짐작하듯 예술가로서 가지는 그의 태도는 혁신적이다. 그는 관행을 답습하는 것보다 새로운 것에서 우연적으로 발견되는 효과들에 환호한다. 작가가 작업을 백퍼센트 통제하기보다 작업 과정에서 물성이 스스로 힘을 발휘하며 드러내는 우연적인 효과에서 새로운 미학적인 가능성을 발견하는데 스스럼이 없다. 그는 잉크는 물론이고, 돌가루 등의 다양한 물성을 활용한다.

“저는 재료에 구애를 받지 않습니다. 특히 물질 스스로가 어떤 재질과 만나면서 벌어지는 효과에서 놀라움을 느낍니다. 재가 붓을 잡지 않아서 물질이 스스로 알아서 자연의 현상같은 우연적인 효과를 제공하는데, 작가는 그런 것을 발견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산을 그렸지만 내일은 무엇을 그릴지는 미지수다. 새들이 끊임없이 노래하고 춤추듯이 인간의 생각 역시 단 한 순간도 머물러 있지 않기에 그의 변화하는 의식의 흐름에 따라 작업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여지를 안고 있다. “호기심이 많아 다음은 또 다른 무엇을 그리게 될 것입니다. 단지 제 마음을 저도 모르기 때문에 그것은 그때 가 봐야 들어날 것 같아요.”
 

20230725_174824
라리사 누리가 대구문화예술회관 전시실에 걸린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프랑스의 라리사 누리

“제 예술의 주제는 행복입니다. 먼저 제가 행복하고 그 행복감을 화폭에 표현하고, 그렇게 표현된 행복한 에너지가 감상자에게로 증폭되기를 희망합니다.”

작가 라리사 누리는 행복을 그린다. 그래서인지 전시장에서 만난 그에게서 긍정의 기운이 넘실댔다. 전시 개막 퍼포먼스를 위해 입은 잠자리 날개 같은 옷을 끊임없이 펼쳐보이고, 특유의 긍정 에너지를 표출했다. 그가 밝힌 행복론에 덩달아 행복감이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저는 저 자신이 행복할 때만 그림을 그리는데,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가 추구하는 그림의 방향성이 행복에 맞춰져 있으니 그럴 수밖에요.”

그의 행복한 감정들은 풍경으로 구체화된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것 같은 심연의 풍경들이 주를 이룬다. 대개 바다나 숲속 풍경들인데, 거침없는 색채들이 태고적 분위기로 끌어올린다. 이는 우주의 근원에 닿아있는 행복의 기운을 닮아있다. 특히 모래를 활용해 자연성과 입체감을 한껏 끌어들인다. 색채 또한 자연과 닮아 있다.

“모래는 자연의 일부로 때 묻지 않은 우주의 기운에 대한 은유”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관람객이 직접 작품을 만져서 작품 속 제가 심어놓은 행복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기를 바래요. 모래를 사용해서 입체감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구나 행복을 갈구하지만 행복은 신기루와 같다. 잠깐 머물다 속절없이 사라진다. 행복을 갈망하지만 찰나에 머물고 사라진다는 것을 알기에 사람들은 절망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특별한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상적인 행복을 만끽하기도 한다.

‘행복’을 그리는 라리사 누리에게는 그런 상황이 더 간절했을 것이다. 그는 자연에 주목했다. 자연과 교감할 때 행복감이 차오르는 것을 경험하고는 자연이야말로 행복의 원천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됐다. 그러면서 자연을 찾는 데 할애하는 시간도 길어졌다.

“자연 속에 있을 때 긴장이 풀리고 조금씩 행복감에 사로잡히는 것 같아요. 그 행복감을 화폭 속에 포착해 놓죠.”

하나의 작품은 3개의 타일로 구성된다. 하나의 풍경을 3개의 타일에 펼쳐놓는 것. 이런 방식은 그가 건축을 전공한 이력과 무관치 않다. 그는 그림 그리는 방식을 건축물을 쌓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는 인식을 가진다. 작업은 캔버스에 모래를 뿌린 후 색을 칠하는 과정들을 거친다. “건축물이 층을 쌓아 올리듯이 그림 또한 몇 개의 층으로 쌓아갑니다. 첨부하듯이 계속 그림을 그리는 것이죠.”

그의 작품에서 시간성도 포착된다. 3개의 타일 중에 첫 번째 타일에 과거 시대의 건축물인 고성(固城)을 그리고 또 다른 타일에는 현재의 풍경을 그리고, 마지막 타일에는 미지의 풍경을 터치한다. “형식에서 건축적 양식을 따라 층을 쌓았다면 내용에서도 시간을 층층이 쌓으려 했어요.”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