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과 멋으로 읽는 세상] 술 한잔의 자유, CCTV·통화 녹음·채팅 캡처…감시 당하는 시대, 술 땡기네
[맛과 멋으로 읽는 세상] 술 한잔의 자유, CCTV·통화 녹음·채팅 캡처…감시 당하는 시대, 술 땡기네
  • 윤덕우
  • 승인 2023.08.06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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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년 때 술 빚고 먹는 행위 금지
영조는 제사 때도 술 사용 막아
적발되면 관직 박탈·노비 강등
왕조실록 ‘금주령’ 120개 넘어
 
술2
아름다운 빛깔을 가진 술은 맛도 보기 이전에 취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각기 다른 색의 술잔들은 한잔 술에 기분 좋게 취하면 아름답게만 보이는 세상의 모습처럼 느껴진다.

“어디쯤 와있는 걸까 내 남겨진 삶들 속에 한번 뒤돌아 볼 만한 겨를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길 어디쯤 서 있는 걸까 내 지금의 모습들은 정말 이대로 이렇게 사는 게 다 남자의 인생일까 한잔의 소주잔에 나의 청춘을 담아 마셨다 매일 쳇바퀴 돌듯이 살다보니 내 청춘이 가버렸다.”

가수 김건모의 ‘남자의 인생’이라는 노래의 가사 일부이다. ‘술과 인생’이라는 단어 조합을 떠오르게 만드는 노래로서 특히 ‘한잔의 소주잔에 나의 청춘을 담아 마셨다’ 라는 가사는 중년 남성들에게 많은 공감을 줄 것이다.

취준생들이 혼자 훌쩍 마시는 캔맥주에 담긴 청춘의 잔향(殘香), 국밥 한 그릇에 소주 한병으로 서러운 마음 달래는 중년 남성의 뒷모습, 높이 들어 올린 건배 잔 속에 담겨 있는 직장인들의 희망과 애환 등 각기 다른 인생의 많은 순간에 술은 함께 한다. 또, 이별주, 축하주, 생일주 등 술은 다양한 감정과 모습들을 연출한다는 점에서 술은 인생의 대변인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우리나라의 연간 음주량은 세계 1, 2위를 다툰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 민족은 술을 좋아한다. 사실 술에는 좋은 기능들이 많다. 여럿이 모여 같이 담소를 나눌 수 있어 친교 수단이 되고 흥을 돋우는 ‘분위기 메이커’가 되기도 한다. 또, 약용이나 민간요법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알코올의 독성 작용과 중독성은 각종 질환을 유발하고 술은 주정이나 크고 작은 실수를 하게 만들어 구설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인류가 술을 먹기 시작한 날부터 지금까지 술은 ‘양날의 검’처럼 인류와 함께 공존하고 있는 듯하다. “술 마시는 시간을 낭비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 시간에 당신의 마음은 쉬고 있으니까”라는 탈무드의 글처럼, 술 한잔이 주는 위안은 좋은 친구보다 나을 때가 많다. 그러나 ‘술잔과 입술 사이에는 많은 실수가 있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술은 인류에게 갈등과 오해의 원인을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옛날 스파르타 사람들은 노예들을 만취시킨 뒤 그 모습에서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탈무드에도 술에 관해 교훈을 주는 이야기가 있다.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을 때 악마가 찾아와서 무엇을 심고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노아는 포도나무를 심어 수확 후에는 발효시켜 포도주를 만들 거라고 말해준다. 그러자 악마는 포도나무 농사가 잘될 수 있게 도와주겠다며 양, 사자, 돼지, 원숭이를 죽여 그 피를 포도나무 밭에 거름으로 뿌렸다. 그 결과 포도주를 빚어 마신 노아는 처음에는 양처럼 유순해지고, 좀 더 마신 뒤 사자처럼 강해졌고 더 많이 마시면 돼지처럼 지저분해졌으며, 거기에다 더 마시면 원숭이처럼 시끄럽게 됐다는 이야기이다. 이처럼 술을 많이 마시게 되면 신이 가장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추해진다는 교훈적인 이야기는 꽤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금주의 역사는 길다. 이슬람권은 종교적인 이유로 술을 금지하였는데 오늘날까지 금주령을 철저히 지키는 일부 아랍국가들도 있다. 불교에서도 술을 금지하는 규율이 있고 힌두교에도 신분이 높은 자에게는 금주의 규율이 있다고 한다. 가톨릭과 개신교 등 기독교의 성경에는 금주에 대한 직접적 구절은 없으나 성경 에페소서 5장 18절 “술에 취하지 마십시오. 거기에서 방탕이 나옵니다.”라는 구절의 해석에 의해 술을 금지하는 경향이 강하다. 다만 가톨릭은 술에 대해 비교적 관용적인 반면, 개신교는 금주를 엄격히 적용하는 편이다. 이렇듯 세계의 주요 종교들은 금주에 대해 옹호적이다.

우리나라도 금주법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백제 온조왕의 맏아들인 다루왕 때 자연재해가 심해 곡식을 아끼기 위해 술 빚는 행위를 금지한 바 있고, 고려시대에도 민간이나 절에서 사사로이 술을 빚는 것을 금지한 기록들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주로 기근이 들었을 때 식량을 절약하는 차원에서 금주령이 내려졌는데 특히 영조 때에는 강력한 금주령이 내려져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때에도 술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 적도 있었으며 술을 먹다가 적발되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관직 박탈이나 귀양은 물론이고 사형에 처하거나 노비로 신분을 강등시킬 정도로 강력한 억제정책을 펼쳤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에는 영조가 본인이 금주령을 내렸음에도 술을 마신다는 소문이 있어 신하들이 따지자 영조가 난 오미자차를 마실뿐인데 그것이 소주로 의심받는다고 말한 기록이 있다고 한다.

영조의 뒤를 이은 정조가 즉위한 후 금주령을 폐기하였는데 그때 정조를 지지하는 민심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간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금주령에 대한 언급만 120번이 넘는다고 한다. 조선 태조때부터 고종때까지 지속적으로 행해졌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금주의 역사는 종교적인 이유가 아닌 경제적인 이유에서 시행되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그만큼 술을 빚으려면 잉여 농산물이 있어야 하므로 흉년이 들면 곡식을 아끼기 위해 금주령 정책은 불가피했다는 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美1919~1933년 ‘금주법 시대’
주조·공급은 막고 음주는 가능
밀거래·무허가 술집·범죄 증가
악법으로 국가적 손해만 초래

금주법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나라가 미국이다. 1919년부터 1933년까지 ‘금주법 시대’라 칭해지는데 금주 운동의 시작은 사회적인 이유와 종교적인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그 당시 사회 개선 운동이나 도덕 재건 운동과 맞물린 시대적 배경하에서 기독교 근본주의의 영향이라는 설과 미국으로 이주한 독일 이민자들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 등 다양한 이야기가 있지만 분명한 것은 금주법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법이었다는 점이다. 법의 주요 내용은 미국 영토 내에서 술을 주조하거나 공급할 수 없게 할 뿐 술을 마시는 행위 그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결과 주류 밀거래, 무허가 술집 횡행, 주류 사업 이익을 노린 폭력 조직 간의 다툼과 범죄 등은 많은 사회적 부작용을 낳았고 술의 희소성에 집착해 사람들은 오히려 전보다 술을 더 마시게 되었다. “역사상 이보다 더 기만적인 법도, 이보다 더 위선적인 법도 없었다.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술을 마셨다.”는 빌 브라이슨의 말은 그 시대를 대변하는데 충분했다.

금주법은 국가적 입장에서도 큰 손해와 부작용을 낳았다. 금주법이 시행된 직후부터 미국 정부는 주세를 거두지 못해 세수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고, 술이 불법이 되니 술의 재료인 농산물을 구입하는 양조업자들은 하루아침에 망하게 되었고 양조업자들이 농산물을 사주지 않으니 잉여 농산물들의 재고는 나날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금주법은 술의 희소성에 따른 밀거래 횡행 등으로 인해 마피아들에게 막대한 자금력과 힘을 실어주는 계기가 되어 금주법이라는 악법은 결과적으로 마피아 세력을 키워주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금주법을 기점으로 파격으로 성장한 미국 마피아의 상징인 ‘알 카포네’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만든 술을 밀주라고 부르던 인간들이 그걸 은쟁반에 담아서 내놓으니까 ‘접대’라고 부르면서 기뻐한다. 내가 이 사업에 발을 들이기 전까지 정치인들처럼 비싼 옷을 입고 개소리를 지껄이는 한심한 인간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금주법처럼 자유를 억압하는 잘못된 법들은 그 법을 시행하기 위한 규제와 감시가 필요하게 되고, 이에 따른 비용과 부작용을 낳았을 뿐만 아니라 악법으로 인해 돈과 권력을 얻는 자들이 생기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그 악법을 유지하기 위한 파생적인 제도와 정책이 만들어지고 또 그 제도와 정책을 시행하기 위하여 예산이 투입하게 되어 결국 악순환의 고리는 끊을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특히 저성장시대에 살아가는 동안 성장동력을 만들 능력이 없는 자들은 특별법 등 입법 포퓰리즘 유혹에 빠질 우려가 있고 이로 인해 일반법이 형해화되어 법적 안정성을 약화시켜 결국 사회 전반적으로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타인에 사생활 쉽게 노출되고
익명에 조리돌림 당하는 시대
신뢰할 만한 사람은 점점 줄어
편히 술잔 기울일 상대 그리워

어디 가나 사방에 넘치는 CCTV, 신용카드 사용기록만 보더라도 알게 되는 개인의 사생활,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인간적 신뢰를 무너뜨리는 무분별한 통화 녹음, 카톡의 기록들이 캡처되어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 ‘조리돌림’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어쩌면 우리의 자유는 더욱 축소되고, 믿고 신뢰할 만한 인간 관계적 공간은 협소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맘 편히 술 한잔 여유 있게 할 수 있는 상대가 더욱 그리워진다는 푸념들이 더 와 닿는다.

술은 모름지기 세상을 배우는 자세로 마셔야 된다고 했던가!

한 잔의 술에 담긴 자유의 그 의미를 되새겨 보고 금주법에서 역사의 교훈을 제대로 배워보자.
 

 
이상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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