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 경영칼럼] 그 많던 태극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
[박명호 경영칼럼] 그 많던 태극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
  • 승인 2023.08.13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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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호 계명대학교 석좌교수 전 계명문화대학교 총장
내일은 제78주년 광복절이다. 국경일이며 공휴일이다. 돌이켜보면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무조건적 항복으로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우리나라는 36년 만에 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나 국권을 회복했다. 반만년 역사에서 이보다 더 기쁜 날이 없었다. 그러나 한반도의 독립은 준비 없이 갑자기 찾아왔고,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3년 뒤 유엔의 결의에 따라 남한서는 선거가 치러졌고, 광복절과 같은 날인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제헌의회가 구성되고, 의회에서 헌법이 제정되었다.

매년 이맘때면 국경일을 미리 자축하기 위해 관공서에서 내다 건 수많은 태극기가 거리에 물결친다. 참으로 감동적인 광경이다. 국경일은 나라의 경사이므로 공·사 기관들은 물론이고 각 가정에서도 국기 게양에 동참한다. 하지만 국경일에 집집마다 당연히 걸려 있어야 할 태극기가 요즘은 잘 보이지 않는다. 광복절을 국경일이 아니라 공휴일로만 여겨서일까. 아니면 국경일은 나라의 지도자들만 연례적으로 기념하는 행사이거나, 그도 아니면 대통령이 특별사면·복권을 하는 날로 치부되어서일까.

지난 3.1절부터 제헌절까지 우리 아파트에 걸린 태극기의 숫자를 세어보았다. 20층 높이 아파트 한 동에 걸린 태극기는 겨우 10개 정도였다. 국기는 국가의 상징이며 국민적 자긍심을 상징한다. 세계에 우리나라의 존재를 당당히 알리는 공식적인 징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국경일에도 가정에서 태극기를 게양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공·사 기관에서의 각종 행사에도 태극기나 애국가를 무시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당연히 행사 순서에 들어 가야할 국기에 대한 경례나 애국가 제창을 시간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대며 생략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국경일은 분명 우리가 경축해야 할 역사적인 날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온전한 주권 회복을 기념하는 8·15 광복절은 모든 국민이 당연히 그 의미를 기억하고 기리며 숭고하게 기념하고 기뻐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일의 시작과 기본은 가정에서의 국기 게양이다.

애국심의 출발점은 바로 국기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몸소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행동의 실천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가치가 되는 법이다. 그 어떤 거창한 애국보다도 나라의 상징인 국기를 귀중히 여기며 국기 게양을 실천하는 일이 나라사랑의 출발점이다.

미국이란 나라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다양한 종족이 모여 있다. 세계 각지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미국의 국민이 되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인들의 애국심은 정말 대단하다. 미국이 다른 나라와 전쟁하면 나이 많은 할머니도 전쟁에 무언가 도움이 될 일이 없는지를 묻는다. 길거리에서 격렬하게 논쟁하다가도 국기 하강식이 시작되면 말싸움을 즉각 멈추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한다. 국가에 대한 충성을 애국심이라고 정의한다면 그들의 충성 맹세는 그야말로 세계 최고다. “애국심은 나라 번영의 영원한 조건”이라고 한 토마스 칼라일의 말이 딱 들어맞는다.

기업에서도 구성원들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충성심은 경영의 핵심적 기본 자원이며 경쟁우위의 원천이다. 기업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구성원의 충성심은 애사심과 자긍심으로 이어져서, 조직목표 달성에 적극 기여하려는 동기를 유발한다. 애사심과 같은 정신적 차원의 동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성과를 실현한다. 구성원의 애사심은 고객의 충성도마저 확보하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오래전 어떤 여름날. 나는 어느 태평양 해변에서 바다 건너 어디엔가 있을 우리나라를 생각하며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이 바로 광복절이었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 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로 시작되는 광복절의 노래를 혼자서 나지막이 불렀다. 여전히 가난한 조국 대한민국이 겪어온 무수한 시련과 아프고 시린 역사가 떠올라 끝내 울었다. 이국땅 해변 모래밭에 앉아서 애국자연 했던 나의 모습이 쑥스럽기도 했다.

누구나 이국땅에 살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그들은 조국의 흙과 물조차도 그립다. 그래서 조국을 방문하고 돌아갈 때는 고향의 흙을 한줌 가져간다. 그들은 태극기와 애국가를 절대로 잊지 못한다. 오래전 TV 방영이 자정까지로 제한되어 있었을 때, 방송의 끝에는 늘 애국가가 흘러나왔다. 교포들은 누구나 반드시 애국가 4절까지 다 듣고 그날의 TV를 끈다. 이국생활의 고생과 고달픔으로 조국에 대한 정이 가슴에 사무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번영한 대한민국의 국경일에 집집마다 휘날려야 할 태극기가 실종되었다. 왜일까? 오늘의 풍요한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들에게 우리는 무슨 말씀을 드릴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 후손들에게 태극기가 보이지 않는 광복절을 물려주어도 될까. 도무지 명쾌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다시 광복절을 맞으며 가슴이 답답하고 애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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