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청년입니다] 해남 손명수씨, 해녀 어머니 푸른빛 철학 이어 새로운 문화 만든다
[나는 청년입니다] 해남 손명수씨, 해녀 어머니 푸른빛 철학 이어 새로운 문화 만든다
  • 윤덕우
  • 승인 2023.08.22 21: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토리텔링엔 설득의 힘 있어
클라우드펀딩 인기있는 이유
사라질 게 자명한 직업 해녀
이젠 해남이 주목 받는 시대
“해녀의 삶은 너무나 척박해
노동의 가치 침해받는 현실
남자들이 고귀한 일 이어야
해남의 역할 있을 거라 믿어”
해남이된해녀의아들-손명수씨
‘해남 손명수씨가 잡은 해산물을 손수레로 옮기고 있다. 그는 “어머니의 삶에서부터 자신의 삶까지 이어져 온 이야기가 그 자체로도 새로운 역사이며, 문화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피 땀 흘려 번 1억과 복권당첨금 1억의 가치는 같다?

얼마 전 한 대기업에서 우리나라 청년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가치’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영상으로 제작하여 배포한 바 있다. 그중 필자가 가장 흥미롭게 본 영상은 ‘땀의 가치’에 대한 질문이었다. 피 땀 흘려 번 1억과 복권당첨금 1억의 가치가 같다고 생각하는지 다르다고 생각하는지 질문하고, 그 이유를 들어보는 영상이었다. 영상에서는 필자의 예상대로 경제 논리에 의해 과반수 이상의 청년들이 돈의 가치는 같다고 응답했다. 그렇지만 영상을 본 200건 이상의 시청자 댓글은 다양했을 뿐만 아니라 인상 깊기까지 했다. 많은 이들은 돈을 어떻게 벌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돈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가치를 두고 있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다시 말해 과거가 아닌 미래의 관점에서 의견을 나누고 있었고, 이러한 관점에서 같음과 다름을 논하고 있었다.

먼저, 1억의 가치를 ‘같다’고 응답한 이들의 생각에는 냉정한 경제적 산술가치가 내포되어 있었다. 주식이나 코인 등을 통해 벼락부자를 꿈꾸는 일부 청년들의 그릇된 가치관이 아니라 미래관점에서의 응답이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1억의 가치를 ‘다르다’고 응답한 이들의 생각에는 1억을 벌면서 쌓아 올린 인생의 내공은 분명한 차이를 만들어 냈을 것이라는 가설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내공은 돈을 쉽게 사용하지 않고 보다 가치롭게 사용할 수 있는 힘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점에서 분명히 다르다고 응답했다.

영상을 본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였다. 우리 사회에 피 땀 흘려 번 돈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사회는 더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 때문이다. 이러한 신념은 ‘나는 청년입니다’를 연재하며 만나온 청년들의 기백에서 시작된 듯하다. 지역의 혁신적인 청년들은 돈의 가치보다는 자신의 정체성과 미래비전, 지역(지역자원)의 가치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있었으며, 이러한 생각을 가진 청년들은 자신의 땀과 피가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는 ‘다름’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맥락의 힘

필자는 지역을 찾는 청년들에게 ‘맥락’과 ‘스토리텔링’을 강조하며, 지역이라는 터전을 기반으로 자신의 경력을 어떻게 설계하고 발전시킬 수 있을지 고민해 보라는 주문을 자주 한다. 결국 맥락이다. 맥락이 있다면 내가 어떤 행위를 함에 있어서 나 스스로를 설득시켜 지속가능 할 수 있게 하는 힘을 갖게 한다. 또한 예측하지 못 한 이유로 계획이 틀어지더라도 문제상황을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한다. 돈을 사용함에 있어서도 그 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분명한 이해가 수반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맥락에 의해 다음 스텝을 생각하고, 그 돈의 효용 가치를 어떻게 하면 극대화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에 사용하게 될 가능성 또한 높다.

맥락의 힘은 나 자신을 설득하는 힘뿐만 아니라 타인을 설득하는 힘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지역에서 제품을 만들어 판매할 때 제품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요인 등을 설명하며, 그 가치를 강조할수록 수익은 더 크게 발생하는 장면을 종종 목격해 왔다. 이러한 이유로 텀블벅, 와디즈, 카카오메이커스 등 클라우드펀딩 플랫폼을 활용하여 제품을 판매하는 전략이 전국적으로 통용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삼복더위의 끝자락에서 필자는 피와 땀의 가치를 귀하게 여기는 삶을 살아가며, 자신만의 철학으로 남들과는 다른 도전을 꿈꾸는 ‘해남 손명수 씨’를 만났다. 그의 삶은 단순히 가업을 물려받은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삶과 철학까지도 이어받은 특별함이 있었다. 그는 ‘어머니의 삶에서부터 자신의 삶까지 이어져 온 이야기가 그 자체로도 새로운 역사이며, 문화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가 살아가고 있는 삶은 그저 평범한 바다에서의 삶입니다. 지금이야 지역에 청년들이 많지 않아 특별해 보이는 것이지,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그렇게 특별한 삶의 이야기는 아니거든요. 굳이 특별함을 꼽자면, 제가 남자라는 점? 그렇지만 저에게는 이 평범한 삶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다는 목표가 있습니다. 아이러니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평범함이 남들과는 다른 스토리고, 특별함이며, 도전이더라고요.”

◇해녀의 아들

해녀들의 삶과 함께 성장한 손명수 씨는 해녀의 아들이다.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는 해녀의 속담처럼 위험을 감수하고 살아온 여러 삶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자랐다. 손 씨는 해녀들의 삶을 존경하면서도 측은하게 생각해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역이 고령화되고 있는 장면들을 마주하게 될 때면 남다른 안타까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도시의 뭇 여인들과는 비교도 안 될 기세로 젊음을 살아오신 어머니 세대의 삶이 역사 속 저편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었다. 시대가 변했고 바다도 변했다. 다시 말해 바다는 청년을 붙잡을 명분이 없다. 손명수 씨의 경우는 특별한 경우였다.

“해녀의 삶은 여성의 삶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척박한 삶이에요. 저는 해녀의 삶이 어떤 삶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고귀한 삶을 잇는 일은 저 같은 남자들이 해야 한다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해녀의 삶을 잇는 일이 숙명처럼 느껴진 손 씨는 용기를 내어 해남이 되었다고 말했다.

손 씨가 해녀의 삶을 이어받아 해남이 되겠다고 말했을 때, 어머니의 반대는 정말 심했다고 회상했다. “어머니는 어머니와 같은 길을 선택한 저를 바라보시며 애틋해하십니다. 해녀 일이 고된 일임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다른 일을 했으면 하시죠. 사실 처음엔 반대가 좀 심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처음보다는 많이 괜찮아지셨어요. 이제는 선배로서 노하우도 많이 알려주시거든요(웃음).”

◇포항 최초의 해남이 된 경매사

대학 졸업 후 수협에서 3년 이상 경매사로 일해온 손 씨는 의젓한 직장을 그만두고 해남의 길을 걷고 있는 특별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2021년 말 기준, 경북의 해녀(해남 포함)는 등록인원 기준 약 1,370여 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고령화와 소득감소 등의 이유로 해녀의 수는 매년 감소하고 있는데, 감소하는 수만큼 해녀들의 입지도 좁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경매사로 일할 때, 우리 어머니들이 힘들게 건져 올리신 해산물이 중간 유통업자들에게 더 많은 수익이 되는 장면을 종종 목격하곤 했어요. 저는 이 장면이 정말 눈물 나더라고요. 해녀분들은 보통 40년 이상 물질을 하셨거든요. 그래서 대부분 몸이 성하신 곳이 없으세요. 어떻게 보면 이분들이 건져 올리신 상품들은 더 귀하게 평가받아야 마땅하죠. 그런데 해녀분들이 건져 올린 상품이 저평가되고 있는 현실은 정말 냉담했습니다.”

경매사로 일하며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를 목격한 손 씨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해남으로서 자신의 역할은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해녀의 일이 여성향 직업이다 보니까 남자는 저밖에 없어요. 그런데 사실 이 직업은 고되고 힘든 직업이라 남자의 역할이 더 많이 요구되거든요. 물질도 힘든데 물질이 끝나고 해야 하는 작업강도도 만만치 않아요. 무거운 물건을 옮기는 일에서부터 같은 자세로 오랫동안 앉아 손질하는 일까지 여성의 몸으로 견뎌내기는 정말 어렵죠. 시대가 바뀐 만큼 금남의 직업으로 규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피와 땀의 가치가 소중히 여겨지는 사회를 꿈꾸다

“저는 피와 땀의 가치가 소중히 여겨지는 사회를 꿈꿉니다. 거창한 미래를 꿈꾸거나 문화유산을 계승하겠다는 포부 그런 건 없어요. 저는 그저 열심히 일한 만큼 벌어갈 수 있는 이 상황과 환경,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귀할 뿐입니다. 그리고 해녀들의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부심을 느끼고 있죠. 그래서 저는 지금의 제 삶에 매우 만족합니다”

손명수 씨의 삶에는 해녀들의 삶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간절함과 진정성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고유의 따뜻함까지 배어 있었다. 그는 어머니 세대에서 어머니 세대로 이어져온 전통적 해녀의 정신을 지키고 있었으며, 오늘을 살아가는 청년세대에게 진정한 행복과 삶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생각하게 해 주는 소중한 교훈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미나 (청년활동연구가/교육학박사)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