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온의 민화이야기]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다양한 도상·화풍 결합…본 적 없으니 자유롭게 재구성
[박승온의 민화이야기]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다양한 도상·화풍 결합…본 적 없으니 자유롭게 재구성
  • 윤덕우
  • 승인 2023.08.23 21: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호남성 8개 화제로 그린 산수화
송적이 그린 8폭 기준 자리매김
중국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 간주
가볼 수 없어 그리기 쉬운 경치

소상팔경도-국립민속박물관소장
작가미상 소상팔경도 8폭 병풍. 19세기 후반 31×49.5 지본채색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지금의 더위는 처서가 지나면서 한풀 꺾이고도 남을 만 할 텐데 여전이 폭염이 전성기이다. 우리의 산하(山下)도 여전히 그 푸르름이 절정인 듯하다. 최근 기후변화와 이상기후 현상으로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산불로 지구의 산하가 힘들어하는 이때, 오늘은 우리의 산수도로서 그 여름의 추억을 풀어보고자 한다.

산수도란 산과 물이 어우러진 풍광을 그린 그림을 말한다. 그런데 같은 산수화라도 자연이 주는 흥취와 감격을 표현한 소경(小景) 또는 인물 산수화가 있는가 하면, 대자연의 이치를 드러낸 관념 산수화가 있고, 승경락도(勝景樂道) 풍조와 맞물린 실경산수화도 있다. 이들 모든 종류의 산수화를 종전까지는 양반 계층이 독점하고 있었으나, 조선 후기의 민화 유행과 함께 일반 서민들도 다양한 형식과 내용의 산수화를 향유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조선후기까지 향유되었던 산수화 중 하나인 소상팔경도를 소개하고자 한다.

소상팔경도는 호남성(湖南省) 동정호(洞庭湖)의 수원(水原)인 소수(瀟水)와 상강(湘江)이 합류하는 지역의 아름다운 경관을 여덟 개의 화제로 그린 산수화를 말한다.

그 종류는 평사낙안(平沙落雁)· 원포귀범(遠浦歸帆)· 산시청람(山市晴嵐)· 강천모설(江天暮雪)· 동정추월(洞庭秋月)· 소상야우(瀟湘夜雨)· 연사만종·어촌석조(漁村夕照)를 내용으로 하는 그림이다.

우리가 현재 흔히 볼 수 있는 소상팔경도는 조선 초기 세종 때 안평대군과 안견에 의해 정립되어 후대에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소상팔경도는 중국 북송의 문인화가 송적(宋迪)이 처음으로 그렸다는 8폭 그림이 소상팔경도의 전형(典型)이 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전해진 후 조선 말기까지 유행했다. 소수와 상수는 중국 호남성 동정호(洞庭湖)의 남쪽 영릉(零陵) 부근으로,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는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그린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우리에게 있어서 소상팔경도는 가보지 못하고 그렸던 그림이다. 그것은 궁중 화원이나 사대부화가들도 마찬가지으며 민화작가 역시 그랬다. 일제강점기 이전, 우리나라 화가들이 소상팔경을 직접 보고 그렸다는 기록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실제 전하는 작품들을 보아도, 직접 현장을 유람하고 그렸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소상팔경이 위치한 호남성은 예로부터 유배지로서, 중국인들조차 가기 쉬운 곳은 아니었으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이처럼 소상팔경은 ‘보지 못해서 그리기 쉬운 경치’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와 일본에도 일찍부터 전해져 크게 유행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명종(재위 1170∼1197)대 에 그려졌다. 소상팔경은 고려와 조선시대 왕실과 문인사대부들에게 시와 그림으로 그 이후에는 고전소설의 배경으로까지 발전하기도 하였다.

명종은 문신들에게 소상팔경을 소재로 글을 짓게 하고, 이녕(李寧)의 아들 이광필(李光弼)에게 그림으로 그리게 하였다. 그러나 이 작품은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다. 또한 이인로(李仁老), 이규보(李奎報), 이제현(李齊賢) 등 여러 문인들이 소상팔경시를 남기고 있어 당시 인기 있는 주제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림·시·소설…조선 대유행
이규보는 소상팔경 詩 짓고
안평대군, 화가에 그림 주문
심사정·김득신도 즐겨 그려

조선시대 들어와 소상팔경도는 더욱 크게 유행하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세종대 안평대군(安平大君)이 화가를 시켜「소상팔경도」를 그리게 한 바 있고, 16세기에는 안견파(安堅派) 화가들이 빈번하게 그렸다. 조선 중기에는 이징(李澄), 김명국(金明國) 등이, 후기에는 정선(鄭敾), 심사정(沈師正), 최북(崔北), 김득신(金得臣), 이재관(李在寬) 등의 작품이 현전하고 있다. 이 밖에 민화로 전하는 작품도 적지 않아 유행의 폭이 넓었음이 확인된다. 이렇듯 조선시대에는 초기부터 말기까지 줄곧 유행하였고, 조선 후기의 민화(民畵)에서도 종종 그려졌다.

어촌석조도-국립중앙박물관소장
전 안견 작 소상팔경 중 어촌석조도 조선초기 견본담채 16.4×11.9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소상팔경도는 고려시대에 유입된 이래 조선시대 내내 제작되어 향유되었고. 특히 소상팔경도는 당대에 유행한 화풍으로 그려졌으며, 민화 소상팔경도는 기존의 팔경과 함께 소상팔경가라고하는 문학 등의 영향으로 새로 만들어진 화제로 그려진 예가 많다. 그리고 이들 화제의 그림에는 새로운 도상이 출현하고 있다 .

 

19세기 후반 민중에 확산
시의도·금강산도 등과 조합
고착화된 8폭 형식→12폭
보수적인 그림에 개성 부여

사대부계층을 중심으로 발전했던 소상팔경도는 19세기 후반 민화로 확산되면서 소상팔경도의 여러 도상들이 망라되고 아울러 서민 특유의 상상력에 의한 자유로운 이미지가 추가되면서 다양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조선시대 5백 년 동안 전개된 소상팔경도의 다양한 도상과 형식과 양식이 민화로 유입되면서 민화식 이미지를 창출했다. 각 시기별 유행한 도상과 안견파 화풍, 절파 화풍, 남종화풍 등 화풍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것이 민화 소상팔경도이다. 고려후기부터 조선시대 내내 수많은 문인들이 찬탄하고 화가들이 형상화했던 제재라 그 역사의 두께만큼 보수적인 성향을 강한 그림이 소상팔경도이다. 그러한 점에 민화 소상팔경도는 ‘조선시대 소상팔경도의 집적(集積)’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소상팔경도가 민화에 와서는 매우 다양하고 매우 개성적인 그림으로 탈바꿈했다. 그렇게 두텁게 여겨졌던 보수적 껍질도 민화작가의 자유로운 상상력 앞에서는 아무 거리낌 없이 어떤 주저도 없이 자유롭게 해체되고 재구성되었다. 그리하여 8폭의 소상팔경에 다른 산수그림을 조합하여 12폭의 소상팔경도를 창조해 내었다.

민화 소상팔경도의 형식에서 흥미로운 변화가 보였다. 그것은 화제간 조합하거나 융합하는 현상이다. 즉, 소상팔경도와 시의도(詩意圖)의 조합, 소상팔경도와 소상팔경도의 통합, 소상팔경도와 금강산도의 혼합과 같은 현상이다.

소상팔경도를 비롯하여 시의도, 금강산도 등은 민화 산수화에서 인기가 높았던 제재이다. 시의도란 옛 시의 내용을 이미지로 표현한 그림이다. 여기서 옛 시는 주로 당나라와 송나라 시가 중심을 이루는데, 더러 원나라나 명나라 시도 다루어진다. 특히 조선시대 문인들 사이에는 당나라와 송나라 시를 애호하는 경향을 보였고, 민화에도 이러한 경향이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민화 소상팔경도에서 시의도를 삽입했다는 것은 소상팔경도를 시의도와 동일선상에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소상팔경도 그림을 보고 있으면 고요한 자연의 풍경이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주는 듯 한 느낌을 받는다. 지근 지구촌 곳곳의 산하가 산불로 몸살을 않고 있는 가운데.. 평온하고 소박한 자연의 풍경으로 많은 이들의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박승온의 민화이야기는 이번 글로서 마무리를 지으려 한다. 그 동안 서투르고 보잘 것 없는 글을 읽어주시고, 응원을 보여주셨던 독자들께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바이다. <끝>

박승온ㆍ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