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영남의 의리
[대구논단] 영남의 의리
  • 승인 2023.08.24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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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환 전 경산시교육장
골목길에 주차한 초보님께서 차에 재미있는 글을 써 놓았다. ‘결초보은 結草報恩,’ ‘오늘 은혜는 다른 초보님에게 꼭 갚겠습니다’ 컬러로 써놓은 결초보은이란 고사성어가 산뜻하였다. 결초보은은 ‘풀을 묶어서 은혜에 보답한다는 뜻으로, 죽은 뒤에라도 은혜를 잊지 않고 갚음’을 이르는 말이다.

진(晉)나라 위과의 아버지 위무자는 자기가 죽으면 자기 후처(위과의 서모)를 개가시켜 순사(殉死)를 면하게 하라고 하였다. 그 뒤 정신이 혼미해진 위무자는 이제는 후처를 순장하라고 하였다. 위무자가 죽은 뒤 위과는 첫 번째 유언에 따라 서모를 개가시켜 순사를 면하게 하였다. 그 후, 위과는 진(秦)나라 장수와 싸우게 되었다. 위과가 위태로움에 처했을 때 어떤 노인이 적군의 앞길에 풀을 잡아매어 말이 걸려 넘어지게 했다. 위과는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그날 밤 위과의 꿈에 노인이 나타나서, 자신은 ‘서모의 아버지인데, 자기 딸을 구해 주어 고맙다’고 하였다.

영남지방 사람들은 ‘결초보은’ 즉, ‘의리’를 삶을 살아가는 소중한 덕목으로 간직하고 있다. 물론 요즈음은 그런 단어는 구년묵이가 되어 입에 올리기도 어색한 시대라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그래도 다른 어느 지방 사람보다도 의리는 예로부터 강하게 내재 되어 있다.

조선은 왕이 다스리는 나라였지만 임금의 정책이 잘못되었을 경우 유생들이 개별적으로나 집단으로 자신들의 의견과 주장을 내세울 수 있었다. 일종의 민주주의 실천이다. 유생들의 집단 상소는 성균관 유생들에 의해 주도되었으나 지방 서원이나 사학 세력의 증대에 따라 차츰 지방 유생들에 의해서 주도되기 시작하였다. 지방 유생들의 집단 상소는 처음에는 수백 명이 연명하는 정도의 규모였다. 그러나 후대로 내려가면서 1,000명대를 능가하는 규모로 커져 18세기 말 이후에는 1만인 내외의 대규모 집단 상소가 나오게 되었는데, 이를 일컬어 흔히 만인소라 하였다. 만인소는 ‘만 사람의 뜻은 천하의 뜻‘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만인소는 정조 때부터 고종에 이르기까지 주로 영남 선비들이 주도하고 있어 영남 만인소라 하기도 했다. 영남 만인소는 총 7차례가 있었고 그중 두 건이 유네스코 아시아 태평양 기록물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 중 6차 만인소의 대표는 퇴계 선생의 후손 ‘이만손’이며, 3차 만인소의 대표 ‘이휘병’의 아들이다. 6차 만인소의 내용을 요약하면 ‘서양 오랑캐(洋夷)들은 예수교를 믿어 부자 군신 사이의 의리도 모르는 짐승들이므로 상종하지 말아야 한다 (위정척사 衛正斥邪)’는 것으로 부자 군신 간의 의리를 강조하였다. 영남 만인소에 쓰인 위정 척사파의 주장은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눈감고 모르쇠로 일관하자’라는 것으로 폄하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본래 주장 ‘공자와 주자의 가르침을 더욱 밝혀 백성들이 의리로 나라의 어려움을 헤쳐 나가야 한다’라는 것을 간과함에서 오는 비판이다.

만인소를 작성한 이들은 벼슬이 없는 만 명의 유생들이다. 양반이어도 벼슬이 없는 선비들은 국가 대소사에 대한 발언권이 없다. 그들에게 ‘만인소’는 목숨을 담보로 한 것이다. 목숨을 내어놓은 영남인의 만인소에서, 우리는 영남인의 기개가 가슴에 내재하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영남의 선비 정신은 2·28 민주 운동의 근간이 되기도 하였다.

대구 최대 번화가인 동성로에는 2·28 민주의거를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2·28 기념 중앙 공원이 있다. 2·28 민주운동은 1960년 자유당 정권 아래에서 제4대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저질러진 불의와 부정에 항거하여, 1960년 2월 28일 대구에서 일어났던 고등학생들의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다. 2·28 민주 운동은 대한민국 최초의 학생 민주화 운동으로 3·15 마산의거와 4·19혁명으로 이어지면서 대한민국 민주화 역사에 큰 이정표로 기록되었다. 특히 2.28 민주 운동은 대구 시내 8개 고교 학생들이 조직적으로 항거하며 시위를 벌인 사건으로 세계사적으로도 학생이 주도한 민주화 운동사에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의거이다. 2·28은 자유, 민주에 대해 의리를 지키기 위한 횃불이었다.

영남에서는 유독 진위야 어떻게 되었던 의리 없는 사람, 변절한 사람으로 낙인찍히면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정치인이나 사회인이나 경제인이거나, 심지어 학생들에 까지, 의리라는 덕목은 민주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 덕목이고 지켜야 할 불문의 규칙이다. 다른 지방에서는 흔하게 볼 수 없는 암묵적 전통이다.

이것은 영남인의 장점일까? 단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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