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인문학] 허그의 효용성
[치유의 인문학] 허그의 효용성
  • 승인 2023.08.2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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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삼 대구한의대 교수
교통사고 트라우마 대상자들을 위한 심리치료 등의 이유로 병원에 자주 간다. 몸이 아픈 환자들이 대부분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아픈 환자들이 더 많아지는 곳이 이곳이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가족 간의 갈등, 경제적 이유 등으로 병실에는 혼자 투병하는 환자들이 더 많다. 고독과 외로움은 몸의 상처 외에 마음의 상처까지도 함께 싸우고 견뎌야하는 대상이다.

병마와 싸우는 그들을 마주하다보면 환우들이 가장 고마워하는 것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것에 대한 감사함과 고마움이 가장 크다.

그런 활동 중 특별히 필자의 기억 속에 오래토록 남아 있는 환자가 있다. 80대 중반의 할머니는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하셨다. 장기 입원자다. 아들이 한명 있었지만 바쁜 탓에 늘 혼자 계셨다. 필자가 자주 방문한 탓인지 특별히 필자를 반겨주셨다. 내가 자신의 아들하고 비슷한 또래라고 하시고 꼭 아들을 기다리는 마음이라며 필자를 한결같이 기다려주셨다. 3일째 방문하는 날 그날따라 할머니는 기침도 하시고 많이 아프셨다. 몸과 마음이 동시에 지친 듯 보였다. 무엇이 고마웠는지 모르겠지만 마치고 나가는 필자를 꼭 한번 안아보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마음으로 쾌유를 빌며 필자의 어머니를 안아주듯 꼭 안아 드렸더니 고맙다며 한참을 우셨다.

"교수님 사실 저는 한 번도 우리 아들이 절 안아 준 적이 없어요"
"물론 저의 손 한번 따숩게 잡아 준 기억도 없고요"

조용히 눈물을 훔치는 늙은 할머니의 쳐진 어깨가 너무 안쓰러웠다.
병실을 나서며 나도 모르는 눈물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아들의 차가운 정서가 늘 불편하셨을 할머니의 몸과 마음이 오래도록 안쓰러웠나보다.

많은 사람들을 상담하고 심리치료를 하다 보니 비슷한 환경 속에서 성장한 성인들의 정서가 한끝차이로 달라지는 건 어린 시절 부모 혹은 가족 간의 응원과 지지 그리고 따뜻한 포옹의 기억 유무에 달려 있다는 걸 알았다.

따뜻한 사람을 받아 본 기억이 없는 이들은 사랑을 나눌 방법을 모른다. 따뜻한 정서와 감각의 기억은 그런 것이다.

1940년대 사랑의 본질을 최초로 연구한 실험이 있었다. 심리학자 해리 할로우(harry F. Harlow)는 새끼 원숭이 실험을 통해서 스킨십과 사랑의 본질을 알아보려했다. 그는 두 개의 우리를 만들어 놓고 그 안에 원숭이 새끼를 넣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두 개의 어미 원숭이 모형을 만들어 놓았다. 한쪽은 철사모형으로 그리고 또 한쪽은 헝겊모형의 어미 원숭이를 만들어 놓았다. 차이라면 철사모형에만 우유를 먹을 수 있는 장치를 했다는 것이 차이였다.

놀라운 것은 대부분의 새끼 원숭이들이 모두 헝겊 원숭이 실험 모형 쪽으로 몰려가 머물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조금 성장해서는 우유를 먹을 때만 철사 모형 쪽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헝겊모형의 어미 원숭이 쪽으로 이동했다. 이 실험을 통해 음식이라는 본능보다는 친밀한 안정감이 우선한다는 것이고, 동물의 사랑이라는 것이 생물학적 접촉을 통한 감각이 우선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다양한 원숭이 애착 실험에서 철사 모형 우리에서만 지낸 새끼 원숭이들의 설사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고 성장하면서 폭력성이 많았다는 대목이다. 차가운 정서가 새끼 원숭이들의 감정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결론이다. 아이가 엄마의 품에서 엄마의 따뜻한 시선과 사랑의 체온을 온몸으로 느끼며 엄마의 심장 박동소리를 느끼며 먹는 젖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안전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시선을 마주하며 웃고, 손을 잡고, 안아주는 가장 기본적인 상호접촉은 나와 상대가 함께 행복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다. 유년 때나 성인 때나 그 감정과 기분은 동일하다.

유년기 시절 돈을 벌기 위해 자식과의 교감이 적어 나중에 돈으로 자식에게 보상하려는 부모보다는 가난해도 사랑과 교감을 함께 나누었던 부모의 아이가 더 많은 행복을 느끼고 나눈다는 결론의 배경실험이다. 80년이 훨씬 더 지난 이 실험이 아직도 유효한 것은, 오은영 박사의 <금쪽같은 내 새끼>가 장안의 화재가 되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사랑과 애정을 갈구 한다는 증거가 아닐까?

필자의 어머니가 폐암4기로 돌아가시기 전 가족회의를 했다.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은 선명했다.

"난 절대로 요양원에 가지 않으련다. 집에서 가고 싶다"

가족회의 끝에 집에서 모시기로 결정했다. 누님이 월요일부터 목요일 오전까지 어머니를 모시고 필자가 대학 강의를 목요일 오전까지만 짜고 목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점심까지 어머니를 지키기로 합의했다. 사시는 동안 최대한 먹고 싶은 것, 가보고 싶은 곳 모두를 건강이 허락하는 시간까지 함께 나누었다. 그리고 필자의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포옹을 하면서 어머니와 수백 번의 짧은 이별을 나누었다. 돌아가시기 이틀 전 병원 응급실에서 얼핏 필자를 바라본 어머니께서 비몽사몽간에 두 손을 높이 들면서 웃으며 필자에게 안기시던 그 따뜻한 포옹이 필자가 느낀 어머니의 마지막 온기였다.

6개월을 수십 번 수백 번 안아 주었지만 여전히 안고 싶고, 깊게 패인 얼굴의 주름을 어루만지고 싶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행복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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