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최욱경 작가 개인전…국제갤러리 부산점 10월 22일까지
故 최욱경 작가 개인전…국제갤러리 부산점 10월 22일까지
  • 황인옥
  • 승인 2023.09.03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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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외로움 달랜 드로잉이 추상문법으로
이질감·고향 그리움 등 일기처럼
美서 잠시 귀국 국문 시집 출간도
대담한 필치로 독자적 세계 구축
현실은 암담해도 미래희망 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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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욱경 작 ‘무제(AM I AMERICAN)’. 국제갤러리 제공

동양인이 1960년대의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했다면, 정체성의 혼란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한국과 미국의 문화차이가 큰데, 60년대의 유학생이 느꼈을 혼란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최욱경(1940~1985) 작가의 미국 유학은 그가 ‘뿌리를 흔드는 경험’이라 표현했을 정도로 혼란의 연속이었다. 이방인이 갖는 이질감, 고향에 대한 그리움, 미국 화단에 적응해야 하는 생활은 뿌리까지 흔들리는 혼란이었다.

그는 당시의 생경한 환경과 혼란한 감정들을 회피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직시하며 시(詩)와 드로잉으로 남겼다. 이방인의 고뇌를 예술적 자양분으로 승화한 것. 유학 시기 겪었던 정체성의 혼란과 예술에 대한 갈구를 일기처럼 담아냈던 시와 드로잉은 1972년 첫 미국 체류를 마치고 잠시 귀국했던 시기에 국문 시집 ‘낯설은 얼굴들처럼’으로 출간됐다. 시집은 45편과 16점의 드로잉으로 구성했다.

최욱경 개인전 ‘낯설은 얼굴들처럼’이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시작됐다. 강렬한 색채와 꿈틀대는 기운으로 화면을 압도하는 추상회화로 한국 추상을 대표하는 작가로 알려진 그의 이번 전시에는 날것 그대로 표출한 흑백 드로잉 작품들을 선보인다. 유학 당시 다양한 매체를 실험하며 개인 및 작가로서의 고민을 고스란히 담은 종이작업 26점과 크로키(인체 드로잉) 8점을 모았다. 이번 전시는 그의 시집 ‘낯설은 얼굴들처럼’으로부터 출발했다.

드로잉 작업에 몰두하며 이방인 유학생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을 드로잉과 시에 표출했던 1960년대 최욱경을 소환한 것이다. 전시에는 시집에 삽화로 소개된 16점의 작품 중 6점이 포함됐다.

1940년에 태어난 최욱경은 서울예고와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미국 크랜브룩 미술학교 서양화과와 브루클린 미술관 미술학교에서 수학했다. 1968년부터 1971년까지 미국 프랭클린 피어스 대학의 미술과 조교수로 일했다. 1978년 귀국해 영남대 회화과 부교수, 덕성여대 서양화과 교수 등을 역임하면서 후학 양성 및 창작활동에 전념하다 1985년에 요절했다.

대담한 필치와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며 한국 추상회화의 대표 작가로 알려진 그는 초기 미국 유학시절 본격적으로 자신의 독자적인 추상문법을 구축해가기 시작했다. 강렬한 색채와 꿈틀대는 생동감으로 한 편의 완견된 서사를 구축한 그의 다수의 회화 작품과 달리 이번 전시는 드로잉만으로 구성했다. 정체성의 혼란과 예술에 대한 희망 등 당시 그의 의식을 지배하던 다양한 감정들이 날것의 일기처럼 담긴 드로잉 작품들이다.

유학 중 잉크와 연필, 차콜, 콩테, 판화 등 다양한 매체를 접하고 탐구하고, 낯선 환경에서 숱한 실험과 수행을 거쳐 자신만의 독자적인 언어를 구축한 그가 드로잉에 대해 재발견했던 시기도 미국 유학 때였다.

학부 졸업 이후 작가는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작가로서의 역량을 확장하기 위해 유학길에 올랐고, 크랜브룩 아카데미 오브 아트(Cranbrook Academy of Art) 대학원 과정에 진학하며 단순히 연습 과정이라 여겼던 드로잉의 중요성을 인지하게 된다.

그는 당시 기본기에 충실하기 위해 방대한 양의 드로잉을 남겼다. “그때 정말 많이 그렸다” 회고했던 생전의 작가는 “2년을 그렇게 그리고 나니까 졸업할 무렵엔 ‘아, 이것이 그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나는 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마음을 굳힐 수가 있었다”라 말한 바 있다. 당시 그의 감정들을 가감없이 표현하며 그를 자유롭게 한 매체가 시와 드로잉이었다.

드로잉 작품에 의식의 흐름에서 즉흥적으로 나온 단어 또는 생각 등이 담긴 텍스트들도 종종 발견된다. 정제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감정들을 정제되지 않은 글귀 속에 담아냈다. 작품 ‘Untitled’(1960년)에선 자신을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이질적인 인물로 표현한 드로잉 작품에는 영문으로 “I DON‘T KNOW WHAT YOUR DOING, BUT. I CAN’T HELP YOU BECAUSE I DON‘T LIKE IT. (당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렇지만. 내 맘에 안 들기에 난 도와줄 수 없겠다)”라는 문구를 썼다.

또한 1969년 3월 22일이라는 날짜가 명시된 ‘Untitled’ 작품 속 컴컴한 어둠에서 태아가 웅크리고 있는 형상과 함께 “When the time comes will the sun rise / … / will the time ever come to me? (때가 되면 해가 뜰까 / … / 과연 내게 때가 오긴 할까?)”라는 글귀도 눈길을 끈다. 암담한 당장의 현실 속에서 기대해보는 희망의 미래에 대한 갈구를 꽤나 솔직한 언어로 서술했다. 전시는 10월 22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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