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바보경, 현대인에게 필요한 처세술
[대구논단] 바보경, 현대인에게 필요한 처세술
  • 승인 2023.09.03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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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규 행복학교 교장
세상 어리석은 사람은 없으나, 지혜로운 사람도 드물다. 학력 수준과 인터넷 보급률이 우리나라처럼 높은 나라도 흔하지 않다. 이 말은 특정 분야에 대하여 대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그 이외 지식은 인터넷을 통하여 지식을 습득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쉽게 말해 현대사회. 점차 똑똑해지고 모르는 것이 없는 세상으로 되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심지어 인터넷 포털사이트는 불과 몇 분 안에 우리의 궁금증을 해결해주고, AI에게 부탁하면 전문가처럼 글도 써주고, 멋진 디자인에 발표자료까지 만들어주는 세상이다.

과학기술의 성장과 발전으로 상식을 넓혀가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하지만 상식이 도를 지나치는 경우도 보게 된다. 병원을 찾는 요즘 사람들은 미리 검색을 통하여 자신의 병명을 짐작하며, 때로는 온라인을 통한 단편적인 지식을 믿고, 의사의 말에 오히려 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이뿐만 아니다. 요즘 사회를 보더라도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드물다. 마치 자신이 더 똑똑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목소리를 크게 내는 것 같다. 정작 해야 하는 일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을 가끔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파온다.

깊은 물은 겉으로 물살을 크게 내보이지 않는 법이다.

얕은 지식일지라도 목소리 큰 사람이 인정받는 세상인가? 아니라면 어떻게 사는 것이 과연 바른 처세일까? 강의 때 가끔 소개하는 책이 있다. 정판교의 바보경이다. 이 책은 혼란한 세상에서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 보이면 화를 당하기 쉬우므로 자신의 색깔을 감추고 그저 바보인 척 세상을 살아가라는 인생 철학을 담아낸 책이다. 위인편을 보면 내지외우(內智外愚)라는 말이 나온다. 속은 지혜로우나 겉은 어리석다는 말이다. 지나친 총명은 위험하며, 어리숙함으로 화를 비켜 간다는 말을 품고 있다. 모난 돌이 정 맞는 것처럼, 알아도 모른 척하는 겸손의 태도가 필요한 시대에 사실 우리는 살고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요즘 세상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 그러기에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누가 잘난 척하는 사람인지, 정말 겸손한 사람인지 분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나를 알아도 두 가지를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열 가지를 알아도 한 가지만 말하는 사람이 있다. 마케팅 시대에 살면서, 트렌드를 읽을 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100m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오늘과 내일만 사는 하루살이가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는 내일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주위에 좋은 운도, 사람도 함께 오는 법이다. 그래서 바보처럼 사는 것을 정판교는 역설하였을지 모른다.

동네 오래된 한의원이 있다. 단 한 번의 광고도 하지 않은, 간호사도 한 명만 있는 작은 의원이다. 하지만 같은 장소에서만 벌써 30년째 진료를 보고 있다. 아침이면 동네 어르신들이 줄을 선다. 지금까지 요란한 광고를 했던 인근 한의사들도 10년을 넘기지 못하였지만, 이 한의원은 지난 코로나 시기에도 문전성시를 이룰 정도였다. 그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진료하는 한의사는 동네 할아버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항상 웃는 얼굴로 환자를 대하고, 이런저런 환자의 속사정까지 다 들어주는 자상함과 여유가 있었다. 때로는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준다고 점심까지 먹지 못하는 것에 바보 같다고까지 하였지만, 그냥 웃음으로 대답을 하기 일쑤였다. 그는 자신을 내려놓고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더 많은 것을 얻는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정말 가지고 싶은 것이 있는가?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이 명예이든지, 재물이든지, 먼저 자신을 버릴 수 있는 마음,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가 선행되어야 한다. 굳게 힘주고 있는 두 손에 다른 무엇을 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상 이치가 다 그렇지 아니한가? 많은 고사를 보면 버릴 사(舍)를 앞에 두고 얻을 득(得)을 뒤에 두었다. 그 말은 먼저 버려야만 얻을 수 있음을 말하는 지혜이다. - 불사부득(不舍不得), 버리지 못하면 얻을 수 없다.

지혜로운 사람은 말을 아끼고, 심지어 해야 하는 말도 삼키고 버리기도 한다. AI시대 작은 생각만으로도 큰 결과치를 볼 수 있음을 우리는 선물이라 생각하기에 앞서, 반드시 지켜야 할 귀한 마음조차 침범당하지 않을지 경계해야 함이 옳지 않을까? 계절이 바뀌고 있다. 가을에는 평소 좋아하는 사람에게 문자 대신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손편지를 낙엽과 함께 보내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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