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인문학] 직면의 힘
[치유의 인문학] 직면의 힘
  • 승인 2023.09.07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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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삼 대구한의대 교수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평가받는 대한민국이 병들어가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부유하다는 서울 강남이 시들어가고 있다. 공개적인 살인사건부터 최근 연이어 발생하는 교사 자살사건까지 아픔도 사연도 다양하다. 그 사건 사고들에게 한걸음 걸어 들어가면 우울이 검은색 옷을 입고 모두의 가슴 한 모퉁이에 앉아 있다. 언제 들어왔는지도 모르고 언제 나갈지도 모른다. 오래된 우울은 딱딱한 돌이 되었다.

부와 화려함의 상징 강남이 왜 거대한 정신병동이 되었을까? 결국 그것은 부가 우리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분명한 사실이다. 두꺼운 콘크리트 바닥 위 경쟁과 생존이 존재하는 그곳엔 욕망과 성공이라는 거대한 바벨탑이 존재할 뿐이다. 우울은 바벨탑이 만든 어둡고 습한 죽음의 그림자다. 그곳엔 민들레가 살지 않는다.

최근 우울증과 관련된 상담도 많고 강연도 많다. 강연요청의 주제에 따라 세상의 시류를 읽는다. 최근의 화두는 분명 '우울감의 극복'이다. 그래서 필자는 항상 강연을 '내 마음의 빛을 찾아서'라는 긍정의 제목으로 강연한다. 우울대신 긍정으로 세상을 바라보자는 뜻이고 긍정으로 내 마음의 빛을 찾자는 직면의 의미가 담겨있다.

<직면直面>이라는 단어는 심리학에서 매우 의미 있는 단어다. 비슷한 용어는 필자가 좋아하는 '무외無畏'가 있고 '직시視'도 있다. '두려움에 당당하게 마주하다'라는 의미가 담긴 단단하고 자신을 성장시키는 용어다. 필자는 약방의 감초처럼 이 용어를 사용한다. 효과는 기대이상이다. 다른 스토리와 잘 결합되면 심리 치료적 효과도 있다. 사례를 들어보자.

영화 <명량>에서 조선의 수군은 칠천량에서 모든 걸 잃었다. 조선 수군의 전부인 판옥선 160척과 조선 수군 1만을 모두 잃었다. 5년 동안 한산도에서 이순신과 그 부하들이 모은 조선 수군의 8할에 가까운 전력을 하루 반나절 전투로 모두 상실했다. 그 참담함과 절망감을 감히 짐작하기 어렵다. 426년 전의 일이다. 김한민 감독은 영화 <명량>에서 주옥같은 명대사를 만들었다. 절망에 빠진 조선의 수군에게 용기를 주고 힘을 줄 수 있는 딱 한 줄의 명대사. 영화 <명량>을 살린 촌철살인의 명대사를 보면서 필자의 무릎을 쳤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그 용기는 백배, 천배의 무서운 용기로 나타날 것이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 힘은 무엇일까? 이 위대한 명대사의 대답은 직면이었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방송국과 생방송 인터뷰에서 필자는 막연한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공포는 두려움의 대상이 명확할 때 나타나지만 두려움은 대상이 명확하지 않을 때 나타난다고 말했다. 두려움의 대상이 명확하면 두려움은 결코 존재하지 않을 거라 말했다. 이순신과 예하 병사들은 죽음의 사지에서 적의 존재를 선명하게 인식했다. 그리고 지간 승리의 과정들을 떠올렸다. 승리에 대한 명확한 확신. 승리를 경험한 자의 몸의 기억. 그리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당당함. 바로 이것이 직면의 기적이 만든 426년 전 역사의 증거다.

그래서일까? 김한민 감독은 당대 최고의 영화 <명량>에서 전설의 어록을 만들기 4년 전 <최종병기 활>에서 위대한 어록을 먼저 만들었다. 그리고 성공했다. 조선인 50만 명이 볼모로 잡혀간 치욕의 전쟁사 병자호란이 영화의 배경이다. 조선최고의 명궁사 남이가 여동생 자인을 구하기 위해 청나라 최고의 장수 주신타와 마지막 합을 겨눈다. 남이와 주신타 사이에 홀로 선 자인. 활을 쥔 남이 칼을 쥐고 자인 뒤에 바짝 붙어 숨은 주신타. 바람이 멈추고 숨이 멈춘다. 자인을 구하기 위해선 활을 곡사로 날려야 한다. 그래야 동생을 살릴 수 있다. 간절함…, 여동생을 구해야한다는 간절함,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이라는 간절함이 뒤섞여 화살은 간발의 차이로 자인을 스치며 적장 주신타의 목을 관통한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힘. 그것이 직면의 힘이다.

'두려움은 직시하면 그뿐,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흐릿해지는 시선을 뒤로 한 채 카메라 앵글이 거꾸로 뒤집힌다. 이어진 남이의 독백은 직면의 위대한 어록이 되었다. 상담심리학자의 시선으로 보면 직면은 무의식의 깨움이다. 유명한 정신분석학자인 아들러는 인간을 의지의 산물이라고 보았고 니체는 인간의 정신이 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유일한 존재라고 칭송했다. 그 칭송 뒤에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인간이 가진 위대한 '직면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언어가 가진 위대한 힘은 가끔 잃어버린 나의 신념과 무의식을 일깨우는데 있다. 어쩌면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위대한 힘이 돈, 명예, 권력이 아니라 매 순간 세상에 당당하게 맞서는 작지만 위대한 직면의 힘은 아닐까? 세상 두려움에 맞서는 용기 있는 분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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