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에서 달려온 영혼들이
다 하지 못한 사랑을 가지에 내다 걸었다
먼 길 걸어온 사람들이
상처 입은 청춘의 발을 잎으로 닦고 있다
하늘로 솟구쳐 오르던 열망들이
땅으로 떨어져 아물게 하는 곳이
하필 팔공산이라니!
목덜미 뒤집어쓴 찬 서리 흔들겠다고
취한 걸음 옮기다가
허리 아래 발등까지 뜨거워졌다
여기는 아마도 말 달리던 전쟁터였나!
고향 집에 홀로 남겨둔 어머니를 부르며
다친 무릎 끌고 어린 용사는
절룩절룩 비탈을 내려오고 있다
◇이승권= 대구 출신. LG전자 상무. 중소기업 대표 역임. 계간 ‘문장’으로 등단. 형상시학회 회원.
<해설> 아마도 시인이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이 파군재 너머 어디일 것이다. 전해오는 팔공산의 여러 이야기를 그는 시에서 자주 데려오곤 한다. 그는 팔공산의 시인인 셈인데 지금은 공원화되어 식당가며 밤이면 불빛들이 휘황찬란하다. 도시의 사람들이 쉼을 찾아 몰려드는 이곳이 신라와 백제의 전투가 치열했던 전쟁터였다니! 시인 뇌리에 남아있는 팔공산의 가을은 피 흘리는 단풍이 있는 어린 병사의 가을이다. 어머니가 그리워, 어떻게든 살아서 돌아가야겠다고 상처를 이끌고 비탈을 내려오는 그런 가을이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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