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따라잡기] 남춘모 개인전 ‘From Lines’ 15일 보건대 인당뮤지엄 개막
[전시 따라잡기] 남춘모 개인전 ‘From Lines’ 15일 보건대 인당뮤지엄 개막
  • 황인옥
  • 승인 2023.09.11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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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으로 채운 공간 걷다보면, 시공간 초월한 듯 ‘황홀’
미래지향적 질문서 회귀로 변화
자기 증명·회화 근원 탐구 의지
“이번 전시서 본래 모습과 마주”
무한 확장성 특징인 ‘선’ 기반
ㄷ구조물·공간감 가진 회화 등
현대적인 방법으로 변주 시도
드로잉·조각·회화 등 신작 81점
“크기와 층고 다른 전시실 흥미”
내년엔 세손갤러리 전시 계획
5전시실
5전시실 전경. 인당뮤지엄 제공

작가 남춘모가 작업을 막 시작하던 20대 때의 외침은 절박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라는 질문에 봉착했다. 여물었다고 하기엔 불투명하고 불완전한 시절이었다. 작업에 대한 불안한 감정들이 외침 같은 질문 속에 녹아들었고, 답을 찾기 위한 고군분투의 시간들이 한동안 이어졌다. 당장 미술적인 행위로 완성된 조형성을 보여주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미술이 어디로 가고 있고, 어떤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적인 측면을 점검하고, 그것을 바로 세우는 것을 선결 과제로 삼았다.

“무엇을 그릴 것인가?”로부터 촉발된 작업에서의 실체 찾기는 한국화로 환원됐다.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대학 재학 시기 동양화 수업에서 경험했던 선(線)의 무한한 확정성을 상기하면서 동양적인 선이 가진 응축성과 확장성에 주목했다.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찾자 그는 주저 없이 ‘선’을 작업의 중심으로 우뚝 세워갔다. 한국성의 상징으로 선에 주목하고 그것을 서양의 물성과 형식으로 표현하려 한 것.

그가 표현하는 선은 한국인으로서 서양미술을 기반으로 작업하는 자신의 위치와 동일시였다. 먹의 농담으로만 사물의 형태와 작품의 원근감까지 완벽하게 표현했던 조상들의 전통 그림 속 ‘선’의 미학을 작업의 출발로 삼은 것이다. “선조들이 화선지에 선 몇 개와 먹의 농담만으로 사물의 형태와 원근감을 표현하며 충분한 공간감을 획득했던 기억에 착안해 우리의 선을 현대적인 방법과 물성으로 입체적으로 표현하게 됐다”는 것이 그가 밝힌 선의 출발이었다.

당시 그에게는 “동서양의 만남으로 우리 시대의 보편적인 미의식으로 승화해 내겠다”는 나름의 목적이 깔려 있었다.

20대 때 시작한 선을 기반으로 한 작업은 지난 40여 년간 다양한 변주를 거쳤지만, 모두 ‘어디로 가고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들과 맞물렸다. 하지만 15일 개막하는 보건대학교 인당뮤지엄 남춘모 개인전 ‘From Lines(선으로부터)’에는 또 하나의 질문이 추가돼 있다. “나는 어디서부터 왔는가?”다. 미래지향이었던 과거의 질문과 달리 이번 질문은 보다 회귀적이다. “젊은 시절엔 앞으로 무엇을 그릴 것인가가 중요했는데 지금은 내가 어디서 왔는지에 더 관심을 두게 됐어요. 젊은 시절부터 앞만 보면서 열심히 달려왔지만 이제는 작업의 근원을 살펴볼 때가 된 것 같아요.”

근원을 향한 그의 질문은 두 가지 측면에서 유효해 보인다. 그 첫째는 미술이 자기 증명이라는 전제 하에 자신과 그의 미술의 출발지가 어디인지에 대한 재확인이며, 둘째는 선을 회화, 평면부조, 설치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한 것을 거슬러 그것들이 촉발하고 확장하도록 이끈 최초의 회화, 즉 회화의 근원으로의 환원에 대한 의지였다.

“이번 전시에서 모든 치장과 허물을 벗고 초심, 즉 본래의 모습과 마주하고 싶었습니다.”

 

4전시실 전경
로비. 인당뮤지엄 제공

◇ 인당뮤지엄 개인전에 선을 기반으로 다양한 작품 세계 펼쳐..

인당뮤지엄 전시는 인당의 공간적인 특수성을 적극 활용했다. 대형로비와 5개의 전시실에 지금까지 그가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방식의 대형 설치작품을 포함해 드로잉, 조각, 회화 등 약 81점의 신작들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로비와 4개의 전시실로 분리되고, 전시실마다 다른 층고와 전시장 크기와 형태에 맞는 작품 배치로 새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작가는 늘 새로운 공간에 자신의 작품이 놓여 지기를 희망합니다. 공간 자체가 창작의 일부가 되기 때문에 새로운 공간을 만나면 흥미를 느끼게 되죠. 인당뮤지엄은 작가에게 공간 해석에 대한 과제가 함께 주어지는 흥미로운 공간입니다.”

전시 작품 ‘From Lines’은 근원에 대한 표현이다. 그는 “대지, 땅”에서 인간 남춘모와 작품의 근원을 발견한다. 고향인 영양에서 태어나 비탈진 땅을 일구며 자랐던 기억을 통해 땅이 그를 있게 한 근원임을 상기하고는 땅을 캐스팅했다. “제가 나고 자라서 살고 있는 지구 행성, 더 나아가 우주 행성 본래의 모습을 고랑이 일궈지기 전의 땅에 투영하고는 땅의 표면을 뜨고, 군더더기를 덜어내 굳히고 색을 입히는 등의 최소한의 예술적인 행위를 부가했어요.”

또 다른 설치 작품인 ‘Beam’ 연작은 이전 ‘Beam’ 연작의 확장된 버전이다. 기존에 캔버스를 채우던 ‘ㄷ’모듈에서 폭과 길이를 대폭 확장한 35개의 모듈로 25m가 넘는 긴 벽을 채웠다. 작품에서 광활하고 웅장한 대지의 기운이 묻어난다. 밭전(田)자가 연상되는, 입체의 선들을 겹쳐 만든 격자무늬 설치작품 ‘Spring-Beam’은 나무가 서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거대한 입체 선들의 겹침으로 만들어진 공간에서 빛이 스며든다. 전통 창호지를 통해 내부로 들어오는 따뜻하고 포근한 빛에 대한 상기이자 그가 빛의 작가임을 증명하는 작품이다.
 

3전시실 전경
3전시실 전경. 인당뮤지엄 제공

 

◇ 직선에서 곡선 부조회화. 설치에서 회화로의 회선까지 다양하게 변주해 온 선(線)

선을 근간으로 해서 다양하게 변주되어 왔지만 그의 첫 선 작업은 ‘디귿(ㄷ)’형 구조물로부터 촉발했다. 2007년부터 시작된 건축물 골조의 기본이 되는 에이치빔(H Beam)에서 힌트를 얻어 단색 부조회화 ‘Beam’ 시리즈를 시작했다. 좀 더 입체적인 선에 관심을 갔고, 그때 착안한 것이 ‘디귿(ㄷ)’형 구조물이었다. 디귿자형 구조물을 캔버스에 반복적으로 붙여 수직, 수평의 격자 골조로 패턴화 된 공간을 만든 후 검정과 흰색, 빨강과 파랑 등의 단색 아크릴 물감을 칠해 완성했다.

2018년 대구미술관 개인전에서 처음 곡선이 등장했다. 곡선을 끌어들이자 그의 평면 부조에서 형용할 수 없는 오묘한 기운들이 찾아들었다. 빛이 곡선의 흐름을 따라 변화하면서 생겨난 오묘함이었다. 특히 요철의 그림자로 인해 생겨난 묘한 분위기는 한옥의 창호지를 투과한 빛의 오묘한 느낌과 일치했다. ‘ㄷ’자 형태도 ‘ㅅ’, ‘<’, ‘∨’ 등의 다양한 형태로 확장했다.

곡선 부조회화는 정서적으로도, 형식적으로도 직선 작업보다 섬세하다. 작업의 개념적인 기반은 어린 시절 기억으로부터 소환했다. 그의 부친이 오지였던 경상북도 영양 산비탈을 개간해 담배농사를 짓던 기억이었다. 아버지의 밭에 길게 늘어선 밭이랑의 선들에서 식물을 키워내던 생태학적 생명력과 동양의 미의식을 동시에 발견했다.

부조회화에서 회화로 되돌아간 것은 작품 ‘Stroke lines’였다. 블루나 레드 또는 짙은 검정 등의 강렬한 선들의 부딪힘으로 공간감을 형성한 작품이다. 2020년,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19 팬데믹이 준 선물이다. 당시 유배 아닌 유배 생활을 하며 자기 성찰의 기회가 주어졌고, 그때 사유에 대한 깨달음을 기반으로 시작한 작업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인간의 나약함을 보게 되었고, 인간성 회복에 대한 열망이 자라났다”는 것이 당시 그의 통찰이다. 특히 작가로서의 통찰을 뼈아픈 대목으로 다가왔다. “‘미술 시장’에 끌려 다니는 저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됐고, 그러면서 저의 모습이 객관적으로 보였어요. 그때 작가로서의 순수성 회복에 대한 행동을 시작했어요.” 그 실천이 근원적인 회화로의 회귀로 이어졌다.
 

4전시실 전경. 인당뮤지엄 제공
4전시실 전경. 인당뮤지엄 제공

◇ 해외에서의 러브콜로 국내외에서 인정받아

동서양의 화합으로 획득한 그의 보편적인 미감은 해외 무대에서 증명되고 있다. 국내는 대구의 가창, 해외는 독일 퀼른의 작업실을 오가며 작업해 온 그는 독일 베를린, 중국 상하이, 미국 뉴욕, 프랑스 파리 등에 초대되며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왔다. 2020년에는 독일의 대표적인 미술관 중 하나인 코블렌츠 루드비히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지난해는 프랑스 생테티엔 세손 앤 베네티에르 갤러리 본점에서 성공적으로 개인전을 열었으며, 중국 상하이 파워롱미술관에서도 대규모 전시를 진행했다. 내년 5월에는 세손갤러리 지점 중 가장 규모가 큰 룩셈부르크 지점에서 대규모 스위스 바젤 아트페어 기간에 대규모 개인전도 계획되어 있다.

특히 세손 갤러리는 뉴욕, 파리, 리옹, 쌩테덴느, 제네바, 룩셈부르크 등 전 세계 여섯 개의 지부를 둔 갤러리로, 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프랑스 작가들의 사조인 ‘쉬포르/쉬르파스(Supports/Surfaces)’의 중심이 된 갤러리이자 참신하면서도 내실 있는 전시를 진행하는 곳으로 유럽에서 정평 난 갤러리여서 세손과의 인연은 유럽에서 그의 입지를 다지는 교두보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세손은 세계적인 작가들인 프랭크 스텔라, 생 오를랑, 베르나르 브네 등과 협업해왔고, 내년에는 일본 동경 지점도 문을 연다.

그가 “시공간을 넘나드는 착시현상을 경험한다”는 것이 해외 관람객들이 그의 작품에서 느끼는 감흥이라고 귀띔했다. “텅 빈 공간에 몇 가닥의 선으로 구현한 설치 작품을 거닐면서 시공간을 넘나드는 느낌을 받는다는 프랑스 관람객들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제 작품이 보편적인 정서로 거듭난 것 갔다는 것을 실감했죠.”

선을 근간으로 시공간을 초월하는 공간감으로 동서양 미술의 경계를 허무고 있는 남춘모는 지난 40여년간 끊임없이 변주를 거듭하며 작업의 확장을 실천해왔다. 작업의 핵심은 흔들림 없이 유지하면서 회화에서 설치, 드로잉까지 다양한 매체로 확장해가는 여정을 그는 “농부”에 비유했다. “새로운 작업에 대한 갈구는 끝이 없고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도 쉽지 않지만, 묵묵하게 밭을 갈고 일구었던 제 아버지처럼 저 역시 제게 주어진 삶을 묵묵하게 받아들이고 땀이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그런 농부의 마음으로 계속해서 작업할 것입니다.” 인당뮤지엄 전시는 12월 14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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