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석 작가 개인전…청도 이서갤러리 내달 15일까지
장준석 작가 개인전…청도 이서갤러리 내달 15일까지
  • 황인옥
  • 승인 2023.09.12 21:1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시 장소는 작품 배치공간 넘어 창의성 발현 공간”
콘셉트·공간 모양 맞춰 작품 제작
젊은 시절의 인연 청도 풍경 구현
안개 덮힌 풍경을 흰색으로 축출
동선 따라 하나씩 등장하도록 연출
글자 숲을 나무의 숲으로 형상화
창문 없는 전시장에 가상 창·바람
텍스트 통합적 연결 당위성 선명
역사적 장소·사건에 퍼포먼스도
장준석_대표사진
장준석 작 이서갤러리 제공
인물1
장준석 작가가 자신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이서갤러리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장준석 제공

개인전을 준비하는 작가에게 전시가 열릴 공간은 풀어야 할 또 하나의 과제로 다가온다. 전시장의 장소적 특성이나 공간의 구조에 따라 같은 작품이라도 아우라가 확연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공간 활용이 최적화될 때, 작품이 전달하려는 의미가 최대화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고, 작가들은 그것을 위해 공간 해석에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한다.

장준석 작가는 유난히 전시 공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남다르다. 전시 공간을 단순히 작품을 배치하는 장소를 넘어, 그 자체로 작품이 될 핵심 요소 중의 하나로 인식한다.

그에게 전시 공간은 작품을 최종적으로 완성시켜주는 화룡점정으로 다가온다. 단순히 그림을 배치하는 소비적인 공간이 아닌 작가의 고유한 창의성이 발현되는 생산적인 공간으로 인식하는 것. 이에 따라 그는 전시가 결정되면 작품을 전시 콘셉트와 공간의 모양이나 환경에 맞춰 새롭게 제작하고 배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최근 개막한 이서 갤러리에서의 개인전 또한 그의 전시 스타일에 따라 진행되는 전시다.

그는 ‘꽃’, ‘숲’, ‘별’과 같은 문자, 즉 텍스트를 이용해 작업하는 개념미술 작가로 알려져 있다. 하나의 단어에 장소성이나 사회적 의미, 또는 개인적 경험을 그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표현한다. 그렇다고 주관적인 작업이라고 제단하면 오산이다. 그의 작업은 주관을 넘어 객관화의 단계를 거친다. 감상객들로 하여금 다양한 해석을 이끌기 위한 나름의 장치들을 열린 태도로 장착한다. ‘꽃’이나 ‘숲’, ‘별’과 같은 텍스트의 선택이 대표적이다. 이들 텍스트들은 텍스트 중에서도 대중적인 것들이다.

텍스트를 조형요소로 채택한 것은 우연적이었다. 작업실을 구하고 사람들에게 개방 했을 때 축하선물로 화초나 꽃 화분을 선물 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선물 받은 화초들이 시들어 죽는 일이 다반사가 되자 작은 생명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혔고, 그 사유의 구체적인 실천으로 텍스트를 차용하게 됐다. 그는 당시 A4 용지에 ‘꽃’이라는 단어를 적고 창문에다 걸었다. “창문에 걸린 ‘꽃’이라는 글자가 너무 예쁘게 보였어요. 물론 시들지도 않았죠. 이거다 싶어 여러 가지 색도 넣어보면서 텍스트의 내용도 다변화해 갔어요.”

텍스트의 차용에는 자유에 대한 갈망도 빠트릴 수 없는 요인이었다. 당시 그는 “진정한 자유란 어떤 경지일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텍스트야말로 철저하게 틀에 갇힌 대상으로 다가왔다. 그는 그 규정된 틀에 자유를 주고 싶어했다. “문자에 덧씌워진 개념을 자유롭게 깨부수고 싶었어요. 그것을 통해 의식의 확장을 도모하려 했고, 인간이 만든 수많은 규범들로부터도 자유롭고 싶었어요.”

텍스트를 작업의 근간으로 하는 작업 특성과 함께 그의 또 하나의 특수성은 장소성에 대한 인식이다. 그는 2017년 발표한 설치작품 ‘ㅅ ㅜ ㅍ’ 연작을 시작으로 장소의 행정구역을 지명과 관련짓는 일에 열성을 보여왔다. 이번 이서 갤러리 전시에서도 ‘청도 이서’라는 장소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갤러리 공간에 대한 그만의 해석을 작품 전반에 녹여냈다. 꿈 많던 청년시절 청도 작업실로 향하던 길목인 이서 지역에 대한 따뜻한 기억을 토대로 제작한 작업들을 펼쳐놓은 것.

“대구에서 청도 작업실로 향할 때 온화하고 반짝이는 이서의 풍광에 매료됐어요. 지루한 일상에서 또 다른 세계로 이끄는 관문처럼 느껴졌죠.”

그가 이서 갤러리 초대전 제안을 받았을 때, 단순한 화이트 큐브에 제한되는 전시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의 조형언어 중 중요한 요소인 장소성을 진하게 녹여내는 전시로 구현하겠다는 방향성을 정하고, 고민을 거듭했다. 그때 이서와의 연연을 떠올렸다. 그와 이서는 특별한 인연으로 연결돼 있다. 30대의 젊은 시절, 청도의 각남에 위치한 폐교를(구,대산초등학교) 공동 작업실로 사용하며 이서를 지나다닌 경험이다.

작가로서 첫 출발하는 시기에 3년 동안 각남의 폐교 작업실에서 열정을 불태우며 대구의 집과 청도의 작업실을 오간 그는 청도에서 다양한 풍경을 경험했다. 특히 그의 뇌리에 각인된 이서의 풍경은 안개 자욱한 풍경이었다. 이번 전시에는 당시 느꼈던 안개 덮힌 풍경을 흰색으로 축출했다. 전시 제목 또한 ‘이서에서 : 흰’이다.

“일반적으로 흰색은 색이 없다는 이야기도 되는데 이런 인식은 우리의 관념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흰색은 비어있지만 채워간다는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거든요. 모든 것들을 펼칠 수 있는 색이 흰색인 것이죠. 그런 의미로 ‘흰’이라는 단어를 선택했습니다.”

전시된 거의 모든 작품들에서 흰색이 발견된다. 청도의 기억을 ‘안녕, 흰, 마음, Sunshine, Love U’ 등의 다섯 개의 개념어로 구현한 작품들인데, 전시장 입구부터 동선을 따라 하나씩 등장하도록 연출했다. “특히 ‘안녕’이라는 단어는 이중적인 의미로 사용됐어요. 대구에서 이서로 들어설 때는 반가움의 인사였고, 대구로 들어갈 때는 아쉬움의 인사였어요.”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작품은 ‘이서면 대곡숲1길’이다. 숲이라는 글자를 바닥 가득히 세워놓고 가운데 길을 터놓은 작품이다. 이른바 글자로 형상화한 숲길인데, 현실의 숲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숲’이라는 글자에 덧씌워진 개념에 워낙 의식이 강하게 지배된 탓도 있지만, 텍스트를 현실태로 구현하는 그의 탁월성도 한 몫 했기에 글자의 숲이 나무가 무성한 숲으로 여겨질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숲길을 “이상 세계로 가는 길”이라고 명명했다. “청도 초입의 굴다리를 넘어오는 순간부터 무한한 자유를 느꼈어요. 그런 기억을 소환해서 전시장에 펼쳐놓았어요.”

전시에는 이서의 바람을 시각화한 작품 2점도 걸렸다. 작품명 ‘Landscape_scale1:300M’인데, 가로1cm와 세로 1cm 크기의 ‘꽃’이라는 글자를 창틀 모양의 캔버스에 빼곡히 붙였다. “창문이 없는 전시장에 가상의 창과 바람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바람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청도와 이서의 강렬한 빛을 형상화한 작품 ‘Landscape_scale 1:80M’에는 다이아몬드 형식의 패턴을 구현했고, 그 옆에는 별이라는 글자를 재해석한 설치 작품도 걸었다. 특히 ‘안녕, 흰, 마음, Sunshine, Love U’ 등 다섯 단어의 LED 부조 작업은 전시장 곳곳을 은은한 불빛으로 채워 잔잔한 감동을 자아낸다.

그의 작업은 철저하게 장소성에 기댄다. 이번 이서갤러리 개인전에서도 ‘이서’라는 장소를 탐구하고 추출한 장소에 대한 개념을 기반으로 작품을 구현하고 펼쳐놓았다. 그가 이처럼 장소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에 맞춰진다. 바로 ‘진정성’이다. 그가 “진정성이야말로 감상객들과의 자유로운 소통과 깊은 감흥의 원천”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에게 장소성은 작업의 진정성을 확보하는 역할 외에도 통합성이라는 의미와도 결부된다. 그는 개별적인 작품들을 통합적으로 연결하는 매개체로 장소성을 바라본다. 장소성에서 추출한 개념들을 통해 각각의 텍스트들을 통합적으로 연결 짓는데, 이럴 경우 “작품의 당위성이 훨씬 선명해진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지금까지 다양한 공간에서 전시하며 다양한 의미로 장소성을 탐구해왔다. 대구의 성매매 집결지였던 자갈마당이 사라지기 직전에 실제 성매매가 진행됐던 장소에서 전시를 하거나, 울산의 태화강변 국가정원에서 전시를 했을 때 동일한 텍스트로 작업했지만 개념이나 형식에서 결이 완전히 다르게 작품을 구현했다. “각각의 장소에 맞는 콘셉트를 정하고 그것에 부합하도록 작업을 제작했어요.”

꽃을 조각한 설치 작품에 물조리개로 물을 주는 퍼포먼스도 꾸준히 진행해왔다. 이는 보다 강렬하게 개념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채택됐다. 퍼포먼스는 주로 중요한 사건이나 현상이 일어난 장소에서 행해진다.

대표적인 퍼포먼스는 2007년에 대구지하철폭파사건 근처, 2017년엔 베를린 장벽이 있던 베르나우어 거리에서 행해졌다. 이후에도 그는 역사적인 장소나 사건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꽃에 물을 준다는 의미는 물을 주는 순간 벌써 과거가 되고 새로운 공간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난 장소도 사건 자체는 과거가 되고 그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미래가 시작되겠죠. 저는 과거에는 위로를, 현재와 미래에는 희망을 전하기 위해 퍼포먼스를 진행합니다.” 이서갤러리 전시는 10월 15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