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수도권 중심의 판을 깨야 나라가 산다
[데스크칼럼] 수도권 중심의 판을 깨야 나라가 산다
  • 승인 2023.09.12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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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만
경북본부장
경북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문경새재 입구에는 옛길박물관이 있다. ‘길’을 주제로 다양한 콘텐츠와 유물 등을 전시하고 있는데 독특하고 흥미로운 내용들이 가득하다. 과거길, 성공길, 출세길 같은 테마별로 재미나게 구성되어 있는데 상소길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상소길에 대한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때는 1717년, 숙종 43년. 안동지방의 사빈서원이 철폐 위기에 놓이자 이 서원의 유생들과 후손들은 서울로 올라가 궁궐 앞에 엎드려 상소문을 전달하기로 한다. 여행경비는 주변의 서원과 선비들이 십시일반 모았다. 머무는 숙소에서 상소문을 수정하고 대책을 의논하면서 하루에 100리 길을 걸어, 출발한 지 8일 만에 드디어 서울에 도착한다. 그러나 상소문을 전달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다. 한양 도착 약 1주일 동안, 상소문 전달을 도와줄 고위층을 만나러 다니고 급기야 돈화문 앞에서 연좌농성까지 벌이지만 상소문 전달은 번번이 무산된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백방으로 도와줄 사람을 찾아다니면서 다섯 차례나 궁궐 내 전달을 시도했으나 결국 실패한다. 이 와중에 양식과 여비도 떨어져 고향으로 사람을 내려 보내 추가 지원을 요청하기도 한다. 우여곡절 끝에 지방 서원 철거에 조정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비변사의 해석을 얻어내는데 성공하고 서원철거 명령 철회 소식을 안고 두 달 만에 고향으로 내려간다는 내용의 옛 문헌을 알기 쉽게 풀어놓았다.

옛길박물관에서 위 내용을 보자니 그 당시의 여러 상황들이 떠오르고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동시에 우리나라의 뿌리 깊은 중앙집권적 권력 구조를 다시 한 번 느끼게 되면서 씁쓸함 또한 감출 수 없었다. 소위 지역 현안 해결을 위해 서울까지 가 여러 채널을 동원해서 국회나 중앙부처의 고위층을 만나러 다니는 방식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도리어 모든 분야에서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고 수도권 카르텔은 더욱 견고하기만 하다. 서울과 경기도 몇몇 곳을 제외한 모든 곳이 지방소멸 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는 현실이다.

어제 12일, 경상북도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조례안이 경상북도의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조례안에는 도지사가 5개년 단위로 분권과 균형발전을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지방시대 계획을 수립하고 다른 지자체와 초광역권을 설정, 발전 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개인이나 법인의 대규모 투자 유치를 위해 경북지역 일부를 기회발전특구로 신청, 행·재정적 지원을 하고 조세특례제한법 등 관련법에 따라 지방세를 감면할 수 있다. 수도권 대학에 경북 이전에 대한 지원 근거도 마련했다. 경북의 자치분권과 균형발전 사항을 심의할 경북지방시대위원회와 실무적인 일을 추진할 지원단도 설치 운영된다.

지방이 잘살고 지방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새로운 시대 개막은 경상북도의 화두다. 이철우 경북지사는 연일 지방시대를 외치고 있다. “지방에게 권한을 주어야 능력도 생긴다”면서 지방시대를 위한 자치조직권 확대, 균형발전인지예산제 전면 도입, 지방소멸 극복을 위한 외국인광역비자 제도의 입법적 해결을 국회와 중앙정부에 요청하고 있다. 대한민국 역사를 구심력의 역사라 보고 수도권 쏠림과 지방의 위기가 국가의 위기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방에 양질의 일자리와 좋은 교육 환경이 만들어질 때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고 국민행복시대를 열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지방으로 과감한 권한이양이 우선되고 국가 예산편성 과정에서 비수도권에 대한 영향을 철저히 분석해서 반영하는 국가균형발전인지예산제를 즉각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지방을 살리기 위한 타당한 생각이다. 이 지사의 이런 생각은 경상북도의 도정을 통해 체계적으로 현실화 되고 있다. 실례로 경북도에서는 지역과 대학을 연결해 인재를 육성하는 K-U시티 정책을 추진 중이다. 지방정부 중심의 대학 진흥정책을 이민 다문화정책과 연결해 확장할 필요가 있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이 정책은 외국의 청년들이 지역의 대학에 와서 교육받고 본국의 가족들과 함께 정착해 사는 다양한 공동체의 모습을 만드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이를 위해 광역단체장에게 비자발급 권한을 주는 외국인 광역비자제도 도입도 추진 중이다.

지방을 살리기 위한 확실한 방법은 예산과 인허가에 대한 중앙정부의 과감한 권력이양과 수도권 카르텔의 이권 포기이다.

지방을 가장 잘 아는 지방정부에 실질적이고 포괄적 권한이 이양되어야 한다. 수도권 중심의 고정화된 판을 깨는 경상북도의 거침없는 행보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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