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령 작가 개인전…보나 갤러리 17일까지
이희령 작가 개인전…보나 갤러리 17일까지
  • 황인옥
  • 승인 2023.09.1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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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사물 그리되 기운·영혼까지 동시에 표현
대상보다 삼라만상 본질 상징화
형상-기운 대립 아닌 균형 추구
이중 장치 감상자 열린세계 유도
이희령 작
이희령 작 ‘비움-생명에너지’

예부터 동양에서는 생물과 무생물을 포함, 삼라만상(森羅萬象)에 기(氣)가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바위, 바람, 물, 나무에도 기가 흐르고, 사람이 사용하는 그릇이나 옷, 책상 등에도 기가 있다고 믿었다. 같은 기운이라도 바위와 옷의 기운에 대한 인식은 달라. 바위는 바위 속에 고유한 기를 내포하고 있다는 입장이었고, 옷에는 옷을 입은 사람의 기운이 흡수되어 있다는 견해를 가졌다. 전자든, 후자든 삼라만상에 기가 있다는 믿음은 변함이 없었다.

방천시장 인근에 위치한 보나 갤러리에서 지난 11일부터 개인전을 시작한 이희령 작가는 기(氣)의 존재를 전제로 세상을 인식한다. 그 역시 모든 대상에 기가 깃들어 있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기운의 존재를 믿을 경우와 믿지 않을 경우, 세상을 이해하는 진폭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세상을 보다 넓고 깊게 이해할 개연성이 높은 쪽은 전자다. 자연이나 사물을 무생물이 아닌 생명체로 접근하는 것인데, 이 경우 무생물도 인간처럼 상생이나 정의 등의 가치로 바라보게 된다. 세상에 대한 인식의 지평이 보다 넓어지는 것이다.

그가 존재의 기운까지 표현하고 얻고자 하는 것 또한 “세계관을 넓히는 것”이다.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을 모두 표현하고 싶었어요. 모든 대상들에 육체와 기운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믿었고, 그래서 그 둘을 동시에 캔버스에 담아내고 있어요. 자연이나 사물을 그리되, 형상과 기운을 동시에 포섭하는 것이죠.”

그가 형상과 기운을 동시에 하나의 화면에 구현하는 과정은 복잡다단하다. 캔버스의 재료인 광목 생지를 캔버스 틀에 끼우고, 그 위에 원하는 색의 한지를 붙인다. 초벌칠을 하기 전의 생지를 사용하는 것은 한지의 흡착력을 놓이기 위해서다. 한지 위에 그가 대상에서 받은 기운을 흑백의 드로잉으로 표현하고, 이후에 찢어놓은 한지 조각들을 겹겹이 붙이며 형상을 구현한다. 색을 물들인 채색 한지를 사용하지만 의미를 명료하게 부각하기 위해 작가가 부가적으로 채색을 한다.

“대학 재학 시절에 신문지나 한지 등 여러 물성을 연구했고, 그때 한지가 제 작업의 개념과 잘 맞는다는 생각에 한지를 중심 재료로 선택했고,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어요.”

캔버스와 한지, 드로잉과 오브제의 겹침으로 드러나는 화면은 현실 같기도 하고, 초현실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산의 형상인가 싶으면 산 아래 표면에서 꿈틀대는 흑백의 기운들이 처음 가졌던 확신을 흩트린다. 자연이나 사물을 그렸다곤 하지만 구체성을 낮추고, 추상성을 높인 까닭에 정확한 대상 인식은 쉽지 않다. 설상가상 한지의 표면에서 드러나는 닥종이의 입자는 초현실성과 추상성을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작가가 “대상 속에 깃들어 있는 기운까지 표현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대상을 그렸는지는 명확하게 판별하기 어렵다”고 했다. “영혼과 육체의 합일체인 인간의 구성요소를 자연이나 사물에 동일하게 적용하기 때문에 보다 추상적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의 작업에선 드러나는 동양과 서양, 내면과 외형 등의 이중적인 장치는 감상자로 하여금 보다 열린 세계를 경험하도록 이끈다. 두 요소들 사이가 팽팽한 이항 대립처럼 보이지만, 그가 추구하는 경지는 조화와 균형이다. 동양과 서양, 형상과 기운이 서로 다투지 않고 평화롭기를 희망하는 것. 그렇기에 그림을 그릴 때 작가 자신의 상태까지 균형된 상태에 놓여 지고자 노력한다. 그것이 비우기와 채우기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한지를 찢는 작업을 먼저 해요. 찢으면서 제 안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비워내는 것이죠. 찢어놓은 한지를 캔버스 위에 쌓는 과정에 비워서 정화된 저의 기운이 다시 채워지게 되는데, 그 과정을 거치면서 화면에는 균형을 찾아가게 됩니다.”

캔버스에 한지라는 재료는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 하지만 화면 속 형상은 변천사를 거쳤다. 초기에는 구체적인 대상보다 도형적인 요소에 천착했다. 특별한 대상보다 삼라만상의 본질을 축출해 상징화한 측면이 강했다. 그러다 자연이라는 대상으로 옮아왔다. 관계로부터 상처받은 그에게 상처주지 않을 존재로 자연에 주목했다. “자연과의 관계에선 서로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지켜보며 대화를 주고받을 뿐이죠. 자연이야말로 저를 치유하는 존재였죠.” 전시는 17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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