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수상가옥(水上家屋)
[좋은 시를 찾아서] 수상가옥(水上家屋)
  • 승인 2023.09.1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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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의 핏줄 깊이

한 사내가 내려놓은 집은

오래 머물 양으로 지어진 것 아님



부레옥잠 가시연꽃이 그러하거늘

바람에 조금씩 떠밀리며

어린 물고기들에게 그늘 만들어 주는 것



타는 햇볕으로 몸이 달궈진들

막히는 숨통 끝, 작고 여린 꽃 피워

벌레 같은, 시 몇 편 남기는 일은

본시 없는 집에 연연할 까닭 없는 슬픔도

둥둥 띄우는 것



이유가 더 이상 없는 삶에도

한 사내, 물 위의 집에 머물러 있음은

청개구리 울음 끝 번지는

비와 바람이 일으킨 물결 위에

뿌리를 떼어주기 위한 것



미련 없이

그리곤 넌지시 바라보기 위한 것


◇박윤배= 1962년 강원도 평창 출생. 1989년 매일 신춘문예에 시 ‘겨울판화’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와시학’ 신인상 수상.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금복문화상 수상. 여섯 번째 시집 ‘오목눈이집증후군’(북랜드, 2018). 한국시인협회 회원. ‘형상시학회’대표이사로 있음.



<해설> 비와 바람에도 자유롭고 싶었던 나는 이 시를 쓰고, 20년 근무한 중등학교 미술 교사직을 접었다. 전업 시인이 되었다. 이웃들에게 그늘을 나누어 주기도 하는, 부평초로 살고 싶다는 작은 생각을 점점 물 주어 자라나게 한 시다. 대구 북구 비산동 어느 버스 정류장에 이 시가 걸렸는가 본데, 가끔 일용직 노동을 하시는 분과 또 다른 몇몇 사는 게 힘든 분들이, 내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전화를 걸어오곤 한다. 지쳐서 돌아오는 퇴근길에, 이 시를 읽고 얼마간 힘을 얻는다고.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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