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작가 개인전, 그림 아닌 유리판 조각에 빛 투사해 드러난 그림자
이상민 작가 개인전, 그림 아닌 유리판 조각에 빛 투사해 드러난 그림자
  • 황인옥
  • 승인 2023.09.2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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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전 10월 14일까지
도자 색·문양 빼고 형태만 취해
작업 힘들어도 독창성 독보적
이상민작-백자청화모란문해주명호
이상민 작 ‘백자청화모란문 해주 명호’

물처럼 맑고 투명한 순백의 도자기가 태초의 침묵을 머금었다. 이상민 작가의 ‘기’ 시리즈다. 캔버스에 백색 물감으로 작정하고 그린 백자 도자기 같지만, 우리가 보는 것은 유리판에 조각한 도자기에 빛을 투사되어 드러난 그림자다. 실재하는 것은 유리판에 새겨진 도자형태지만, 시각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빛에 의해 드러나는 허상이다. 유리판 조각과 그림자가 두 개의 작품 같지만 따지고보면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작품이다. 그가 “판유리 후면을 음각으로 연마하여 질감과 굴곡만 남겨서 조각했다”고 했다.

‘기’ 시리즈는 주객전도의 전형적인 예다. 1mm 두께의 유리판에 새긴 반입체 도자기 조각인 실재가 조연이 되고, 빛에 의해 투사된 그림자인 허상이 주연이 된다. 입체 조각은 가까이 가서 자세히 살펴야 식별할 수 있다. 유리판과 그림자는 실재과 비실재의 공존인 것이다.

이런 구조는 사물의 보이는 형상보다 보이지 않는 진실에 관심을 두려 하는 작가의 세계관이 투영된 결과다. 이를 통해 그는 본질의 의미에 다가가려 노력한다. 물질에서 정신으로, 형이하학에서 형이상학으로의 진화다. “물질성에서 비물질성으로의 전이를 통해 본질의 세계로 나아간다.”

“내 작품 속에 보이지 않았던 진실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가 무엇인지 외쳐야 한다고 주문한다. 나는 그것이 나의 솔직한 외침이며, 사물과의 대화가 작품 속의 잔상이 되어 존재해야 의미가 만들어 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리라는 재료는 기억 속 트라우마로부터 촉발됐다. 그의 기억에는 어린 시절 유리 파편에 맞아 큰 상처를 입었던 사건이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유리를 다루다 보니 유리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가 조금 무뎌졌다”는 그의 말에서 트라우마에 정면으로 맞서고 싶었던 것을 아닐까?라는 유추가 자연스럽게 떠오르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이유일 뿐 결정인 배경은 따로 있다. 유리는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이후 채택했다. 그는 프랑스 국립 스트라스브르 마륵블록인문대학원 조형예술학과 동대학 고등장식미술학교(오브제 전공)을 졸업했다.

유리는 비물질적인 것, 즉 본질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며 관심을 둔 재료다. 그는 냄새나 파장, 빛 등 순간적으로 존재감을 발산하다 사라지는 비물질적이고 비가시적인 대상에 끌렸었다. 그 이면에는 “우리가 보는 것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의문이 자리한다. “분명 존재하지만 눈으로 확인할 수 없고, 존재하는 시간은 순간적인 존재들을 진정으로 보았다고 말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다. 그가 내린 결론은 “내재된 본질만이 변하지 않는 진리”라는 시각이다. “그림자를 끌어내기 위해 조각을 하는 것이 그릇 자체를 조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림자가 곧 본질인 것이다.”

도자를 조각할 때 색과 문양은 빼고, 고려청자나 조선백자의 형태만 취한다. 그에게 색이나 문양을 물질의 차원이며, 형태는 혼의 차원으로 인식된다. 물질은 실재, 혼은 본질인 것이다. 그는 도자에서 본질의 단초를 보았지만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을 발견한다. 그것이 도자에 중첩되어 있는 ‘시간성’이다. 예부터 내려온 도자에는 다양한 시간성이 중첩되어 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다.

그는 스스로를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두 시간대를 연결하는 가교자로서의 역할로 인식한다. 예술이 결코 독자적으로 성립될 수 없으며, 과거의 수많은 예술로부터 영감을 받아 함께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 아래 가교자의 역할에 충실을 기해왔다. 그가 “지금 존재한다는 것은 현재와 미래와 과거가 함께 한다는 것”이라며 시간의 연결성을 언급했다. 그 연결 과정에서 그의 감수성이 능동적으로 관여하는 것. “도자들은 옛 도공들이 만든 것이다. 나는 현대인인 나의 시선으로 재해석한다.”

유리 표면을 기술적으로 깎는 일은 거칠고 지난한 노동이다. 그가 “수도승 같은 작업”이라고 할 정도로 힘에 부친다. 투명한 재질이어서 육안으로 잘 보이지 않기에 손의 감각과 연마과정에서 나오는 소리만으로 형태를 잡아야 한다. 섣불리 시작할 수 없을 만큼 육체적으로 힘들고, 기술적으로 예민한 작업이다. 하지만 독창성에서 만큼은 독보적이다. 예술에서 독창성은 존재 이유이자 예술을 지속하게 하는 가치라는 점에서 그의 작업이 어느 지점에 위치해 있는지를 가늠하게 한다.

“작가에게 제일 중요한 부분이 독창성이다. 그걸 찾고, 만들어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시선을 발견하고,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한다.” 전시는 10월 14일까지 갤러리 전에서.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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