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날 아침
제사 물린 음식으로 아침을 먹는데
밖에 키우는 개들이
아들이 먹는 쌀밥을
딸내미가 먹는 갈비찜을 침 흘리며 쳐다본다
맛있게 쳐다본다
만난 것 몇을 골라 고깃국에 말아 주었다
꽝꽝 얼었던 저 그릇
숟가락 없는 저 그릇
족보도 모르고 핏줄도 모르는 저 그릇
핥았던 빈 발우에 따뜻한 물 부어 드렸다
◇고철= 강원 철원에서 태어나 홍천에서 성장. 2000년 ‘작가들’에 꽃상여 외 네 편의 시로 등단. 시집으로 ‘핏줄’ ‘고의적 구경’ 있음.
<해설> “핥았던 빈 발우에 따뜻한 물 부어 드렸다” 이런 문장 하나면 이미 시는 완성된 것이 아닌가? 발우를 오래 바라보다가 발우 너머의 또 다른 발우를 본 것이다. 개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개가 개인가? 아닌가? 는 시를 읽는 독자의 몫이다. 삶의 주변에서 만나는 모든 사물은 다 나름 살아있는 것들이어서 제 목소리를 낸다. 가끔은 가장 변덕의 폭의 넓은 것이 인간이어서 슬플 때가 종종 있다. 자신의 감정에 자신이 휘둘릴 때 가만히 발우를 들여다보면 내가 어디서 왔는지, 내 핏줄에는 어떤 욕망이 끓고 있는지도 보인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