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따라잡기] 빅토르 안·황인모 2인전…갤러리 팔조 25일까지
[전시 따라잡기] 빅토르 안·황인모 2인전…갤러리 팔조 25일까지
  • 황인옥
  • 승인 2023.10.0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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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한 순간을 남긴 사진 속 예술성 탐구
◇빅토르 안
우즈벡 고려인 기록 40여년 지속
개인 초상·지문 사진예술로 포착
◇황인모
곧 사라질 농촌 거주 노인 삶 담아
배경 집·물건은 인물 설명 도구로
빅토르안-황인모작가
빅토르 안(좌), 황인모(우) 작가가 자신들의 2인전이 열리고 있는 갤러리 팔조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카메라의 비약적인 발전은 사진의 대중화를 완성시켰다. 특별한 기술이나 기능을 습득하지 않아도 만족스러운 사진을 얻을 수 있게 되면서, 사진의 위상은 급상승했다. 자신을 표현하는 손쉽지만 효과적인 매체로 사진이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에 마냥 편승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예술사진을 추구하는 사진가들이다. 사진과 인간이 밀착될수록 그들의 고뇌는 깊어만 간다. “어떤 지점에서 사진이 예술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상최대의 과제가 그들 앞에 주어졌다. 사진의 예술성 확보에 대한 과제다.

갤러리 팔조에서 2인전인 '시간위에 박제된 초상'전을 시작한 빅토르 안과 황인모 작가의 사진들에서 “사진의 지향점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발견한다. 그들의 화면에 “사진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들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인간을 피사체로 삶의 근원을 파고들고, 삶의 한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며 사진의 기록성이라는 매체 본연의 역할에도 충실을 기하고 있다.

022-02шшш=006_2
빅토르 안 작 ‘022-02шшш=006_2’

 

◇ 빅토르 안의 ‘생체인식여권 컨셉’

우즈베키스탄 국적 고려인 사진작가인 빅토르 안의 사진예술은 두 개의 축으로 전개된다.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을 기록하는 것과, 주변 인물을 통해 사진의 예술성을 탐구하는 것이다. 고려인을 기록한 일은 40여년 지속됐다. 그는 고려인들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사진예술로 기록하고 책으로 출판해왔다. 이번 전시에선 예술성에 집중한 사진들을 모았다. 주변인들의 얼굴을 촬영해 인화하고, 화면 모서리에 지문을 찍은 사진 20여점을 걸었다.

사람들의 얼굴과 지문은 고유성과 개별성의 대상들이다. 그는 고유성을 자신만의 미학적인 표현으로 예술로 격상하는데 열정을 할애한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개별성을 노출하는데 사회적인 분위기는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얼굴까지는 이해하지만 지문을 허용하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범죄 이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마치 자신을 광장에 벌거벗겨 세워놓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작품 제목인 ‘생체인식여권 컨셉’에 이러한 문제의식이 표명돼 있다.

지금까지 그는 주변인 100인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냈다. “자신의 고유한 생물학적인 정보를 공유하는데 설득이 가능한 범주의 사람들을 선택하다보니 지인들이 피사체로 낙점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지문이라는 은밀하고 사적인 부분을 허용하려면 사진작가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있어야만 했다.

사실 사적인 사진을 공적으로 공유하는 것은 현대인에게 매우 익숙하다. 자신을 표출하고, 나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중요 수단이라고 믿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사적인 사진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불과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사적인 사진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의 경우만 보아도 카메라가 최초로 유입됐던 시기에 “사진은 인간의 영혼을 뺏어간다”는 인식이 강했다. 사진을 찍히는 것이 그들에게는 공포였던 것.

권위적인 시대나 전쟁 시기에도 사진은 부정적으로 활용됐다. 정적을 감시하고 탄압하는 수단으로 전락하는 예가 많았다. 사진의 노출이 일상화된 현대사회에는 어떠한가? 사진이 공기처럼 우리 삶 속으로 파고들었지만 여전히 특정 분야에선 좋지 않은 이미지로 기능하고 있다. 예컨대 범죄자의 신상 공개용 사진이 대표적이다.

빅토르 안 작 '018-04шшш=150-(бум)'
빅토르 안 작 '018-04шшш=150-(бум)'

빅토르 안에게 얼굴이나 지문은 개인의 생물학적 개별성이나 역사성을 품고 있는 대상으로 다가온다. 태생적으로 타고난 지문이나 삶의 여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얼굴 주름은 개인의 개별성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표상이다. 그는 인물사진에서 예술성을 추구하지만 역사성은 예술성을 위한 중요한 개념으로 다가온다.

개인의 초상이나 지문을 사진예술로 포착한 최초의 시기는 10여년 전이다. 당시 그는 타슈겐트의 어느 지역에서 촬영한 사진 때문에 경찰서에 곤혹을 치러야 했다. 사진 촬영이 금지된 장소에서 촬영한 사진이 문제가 되어 경찰서로 불려갔다. 물론 그는 그런 정보를 모르고 사진을 촬영했다. 그 사건 이후 그는 얼굴과 지문을 예술사진의 대상으로 삼아왔다.

덜 발달된 사회에선 이웃집 창문을 호기롭게 들여다보면 분개하고, 나이, 키, 몸무게, 그리고 생활 방식에 대한 전문적인 의학적 질문에 불쾌감을 표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선 개인의 정체성은 세상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의사소통 도구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초상과 지문을 생체 인식을 위한 지극히 개별적인 공간으로 인식하고, 예술성 확보의 기반으로 활용한다.

현대인이 인터넷 상에서 가장 사적인 정보를 친밀하게 공유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문을 공유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선뜻 그의 사진에서 지문을 공유해 준 지인들에 대한 그의 고마움은 크다. 그가 지문 공유를 허용해 준 사진 속 대상들을 영웅이라 칭한 것에서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사진 촬영과 지문 공개를 허용해준 지인들은 범죄의 동반자로 뿐만 아니라 공동 저자로 취급한다”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배순석 1918년생
황인모 작 ‘배순석 1918년생’

◇ 황인모 ‘민중의 초상’

대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황인모의 사진예술에선 개념적인 태도가 짙게 배어난다. 그는 특정 장소나 인물, 풍경이나 라면 등의 대상을 증명사진처럼 표현하며, 설파하고자 하는 개념을 견고하게 서술해왔다. 특히 피사체에 중첩된 역사성이나 문화적 특성을 포착하며 자신만의 감수성을 입혀왔다.

‘민중의 초상, 영남지역 (Portraits of the Populace)’이란 제목으로 꾸린 이번 갤러리 팔조 2인전에선 영남지역 농촌에 거주하는 노인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 14여점을 소개하고 있다. 농촌의 노인들을 피사체로 삼은 것에 대해 그는 “포항 출신인 나는 나고 자라면서 변화해 왔던 농촌 풍경과 노인들의 삶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가장 잘 이해하는 대상이기에 사진에 진정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에게 영남지역의 농촌마을은 자신의 본질이 시작되고 확산된 출발선이라고 믿는다. “농촌 출신이기에 농촌 노인들의 모습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진으로 남겨왔습니다.”

황인모 작 '박종대 1937년생'
황인모 작 '박종대 1937년생'

 

우리나라 농촌은 고령화와 공동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는 곳이다. 농촌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우리나라 농촌의 당면한 현실을 대변한다. 그들은 곧 사라질 대상들이다. 사진작가인 그의 책임의식은 이 지점에서 극대화된다. “사라질 것들에 대해 기록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차오른 것. “몇 년 후 농촌의 노인들이 돌아가시면 다시는 그들의 모습과 그들이 살았던 삶의 현장을 볼 수 없게 됩니다. 당연히 기록해야죠.”

사진 속 화면은 70대 이상의 할머니들과 그들의 생활 터전 등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멀지 않은 미래에 사라질 대상들이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초상들이기도 하다. 특히 할머니들이 주로 촬영됐는데, 이 또한 할아버지들이 일찍 타계하고 할머니들만 남은 농촌 마을의 현실에 대한 반영이다.

노인들의 모습 뒤에 배경으로 포착되는 배경은 화면 속 인물을 설명하는 개념적인 도구로 활용된다. 노인들이 젊은시절부터 평생 생활하고 사용했던 집과 물건들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한 시대를 풍미한 초상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화면 속의 어떤 인물이나 물건들은 일제강점기에서 한국전쟁과 산업화를 거쳐 정보화 시대까지 거치며 유구한 역사의 물줄기를 지나온 대상들이다. 그 자체로 역사인 것이다. 그는 “하나의 문화적 코드가 변화되는 것들에 대한 관심”이라고 표현했다. “모든 존재는 사라지지만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가치는 분명 큽니다.”

역사적으로 기록이나 유물로 남겨진 사람들은 지배층이었다. 민중이나 민초에 대한 기록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절대다수를 차지했던 민중이야말로 그 시대를 온전히 이해하는 진정한 주체일 수 있다. 그가 농촌의 할머니들을 기록하는 진정한 이유는 ‘민초에 대한 기록’을 염두에 두어서다.

피사체가 되는 노인들의 삶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그의 사진 한 점이 한 권의 역사서가 된다. 그는 충실한 내용의 역사서를 집필하기 위해 노인들과 충분히 교류하고 그들의 삶에 대해 소통한다. 그 이야기들을 한 장의 사진으로 기록하고, 글로 표현한다. 글과 사진을 모아 책으로 만들기도 했다.

“세상의 시각으로 보면 이분들은 이름없는 조연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저의 사진 속에서는 주인공이 됩니다. 비록 얼마 뒤에 사라지게 되겠지만 이들의 자료가 우리의 역사를 풍요롭게 하겠죠.” 빅토르 안과 황인모 2인전은 10월 25일까지 갤러리 팔조에서.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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