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 경영칼럼] 사흘이 4일이라니요
[박명호 경영칼럼] 사흘이 4일이라니요
  • 승인 2023.10.08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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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호 계명대학교 석좌교수 전 계명문화대학교 총장
OECD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실질 문맹률’은 무려 75%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나라 국민의 10명 중 7명이 우리 글을 읽어도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금일’을 ‘오늘’이 아니라 금요일로, ‘심심한 사과’를 두고 ‘사과가 심심했나’라고 알아듣는다. 인터넷에서는 ‘사흘’이 4일인지 3일인지에 대한 견해가 분분하다. 가결과 부결의 뜻도 헷갈린단다. 문해력 상실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 말글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필자와 같은 대학의 교수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유난히도 긴 명절 휴가 기간에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단편소설을 꺼내 읽었다.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아 뜻을 알 수 없는 어휘들을 만난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며 문장의 뜻을 파악하느라 바빴다. 그러다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생소한 어휘들로 꽉 찬 정말 난해한 글을 만났다. “그 말이라도 듣자 왠지 복대기던 그의 심사가 단숨에 잔자누룩해져서 배나 채우는 그 음식만 먹으면 물컥물컥 성가신 객수도 설핏해졌다(김원우, 『객수산록』).” 이 글로써 결국 나의 문해력은 부족한 정도를 넘어서서 매우 부끄러운 수준임을 실감했다.

문학 작품에서는 사전을 뒤적거리며 골랐을 법한 무척 어렵고 생소한 어휘들을 자주 만난다. 말과 글을 태깔스럽게 쓰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런 경우 독자의 문해력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곤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상에서 자주 쓰이는 우리 말글의 뜻을 몰라서 심하게 헷갈린다면 그것은 분명 큰 문제다. 우리 말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실질 문맹’은 지식 습득은 물론이고, 심각한 의사소통 장애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렇듯 삶의 기본 도구인 언어능력에 문제가 있다면 삶의 현장에서 숱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2021년에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대다수(73%)가 초·중등 학생들의 문해력이 60점∼70점대(C∼D등급)에 해당한다고 답했다. 이처럼 낮은 문해력은 학생들이 ‘유튜브’와 같은 영상매체에 익숙하거나, 독서를 소홀히 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그래서 교육전문가들은 국어 교육에서 한자 교육과 독서를 강조한다. 한국어의 어휘 중 상당수가 한자어로 구성되어 있어서다. 또 디지털 영상매체가 문해력을 떨어뜨리므로 학교 수업에서 디지털기기 수업을 제한하고 종이책을 읽을 것을 권고한다. 과연 이러한 처방이 교육 현장에서 실행 가능한지는 의문이다. 나아가 학생들의 문해력과 언어능력을 높여서 의사소통에 큰 도움이 될 것인지도 미지수다.

기업경영의 핵심 키워드도 바로 소통이다. 상사와 직원, 기업과 소비자 간의 소통 능력이 일의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가장 먼저 할 일은 구성원과의 소통이다. 리더가 좋은 의사결정을 내리려면 반드시 동료와 종업원이 어떤 말을 하는지를 잘 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기업의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고객과의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 고객과 공감하지 못하면 고객의 외면을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공을 위해서는 고객의 진정한 바람을 알아내야 한다. 고객과의 소통은 그들의 말을 경청하면서, 그들이 원하는 바를 확인하고, 그들이 바라는 것을 제공하는 최상의 도구다.

소통의 본질은 설득이 아니라 상대방의 공감을 얻는 것이다. 공감이 없이는 어떤 감동도 성공도 기대할 수 없다. 상호 간의 공감과 교감을 도출하려면 먼저 서로의 언어를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언어능력이 있어야 관계가 잘 유지되고 강화된다. 문해력 부족으로 우리 말글로 소통이 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문화의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상호 간에 언어 이해가 안 되면 문화의 핵심인 가치관을 공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통이란 또한 상대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제야 마음을 열고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게 된다. 이 모든 일들이 바로 상대방의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는 능력에서 출발한다. 언어능력의 결핍은 당연히 상호존중의 부재로 이어지게 된다. 따라서 어휘력을 길러야 하고, 시간과 장소에 적합한 언어 구사 능력도 개발해야 한다. 나아가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 자세, 곧 경청이 중요하다. 경청에는 의도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경청하려는 노력과 언어능력을 갖출 때 비로소 상대방과 공감하게 되며 상대방을 인정하는 긍정적 소통이 이루어진다.

오늘은 577돌 한글날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글날을 기념해 10월 4일부터 10일까지 ‘2023 한글 주간’을 개최하였다. ‘미래를 두드리는 한글의 힘’을 주제로 한글의 가치를 체험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디지털 고도화와 인공지능(AI) 시대로의 변화 속에 한글이 새로운 미래를 여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여러 가지 행사도 기획했다고 한다. 이 모든 행사와 프로그램이 우리 말글의 문해력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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