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가보아서 그립기만 하던 산맥이
천장에 떠 있다
에베레스트에 스며든 빗방울은 지난 장마의 흔적
태양의 영양분도 엽록소 없이도 자라는 은둔형 곰팡이가 있다
하얗게 뿌리까지 피운 꽃은 자신이
이룬 업적을 알리듯 의기양양한 표정이다
쓸쓸함과 짙은 고독을 지우려고 기웃거리는 눈길로
나 천장에 낙서를 그으며 하루의 운세를 점친다
도전적인 삶의 한가운데 인내의 경계를 넘어서 만나는
모든 사물의 본질적 속성은 동사다
걸레를 들고 그가 밟고 간 벽면의
얼룩을 지우며, 가장 우울했던 겨울을 정복하려고
찬 손 호호 불어가며 길 미끄러운
설산을 오른다
◇전기웅= 2016년 계간 ‘서정문학’으로 등단. 형상시학회 회원. 시집 ‘촛불 바위’가 있음.
<해설> 본시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가난의 현실을 딛고 일어서기가 어렵다. 그러나 많은 걸 가졌다는 것의 별것 아닌, 몇 가지 편리성을 무시해 버릴 수만 있다면, 사는 일이 그리 절망적이고 고되어질 이유는 없을 것이다. 작은 행복에도 들뜰 수 있고, 새로 쓴 시 한 구절에도 가슴이 뛸 수 있다면 그보다 큰 만족이 어디 있겠는가. 전기웅 시인은 그런 시인이다. 자주 만나고 싶은 시인이다. 항상 나보다 빨리 먼저 밥값을 내는 시인이다. 만삭에 가깝게 불러온 내 배를 걱정했던지, 실내에서 타는 중고 자전거 운동기구를 끙끙거리며 사서 들고 온 그런 시인이다. 비가 새는 달방에 살며 부엌에서 키우는 닭이 개에게 물렸을 때 아낌없이 연고를 발라주는 그런 시인이다. 진짜 시인이다. 그런 시인의 시를 세상에 널리 알리는 일이 나는 즐거울 뿐이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