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그로테스크한 정치문화
[수요칼럼] 그로테스크한 정치문화
  • 승인 2023.10.10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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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광 대구경북소비자연맹 정책실장·경제학 박사
문화는 다양한 단어를 통해 꽃 피운다. 유럽 문화는 그리스·로마 신화와 기독교 사상을 기원으로 형성되었으며, 표현 방법은 라틴어를 바탕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 유교 문화권인 한·중·일은 사서삼경(四書三經)을 기본으로 하며, 한자를 이용하여 단어를 만들어 표현한다. 따라서 유교 문화권인 한·중·일이 서양문화를 도입하여 자기 나라에 소개할 때 옛부터 전해오는 사서삼경과 같은 고전에서 한자를 찾아내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또한 한자를 조합하여 새로운 언어를 만들지만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언어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하고, 의사를 소통하기 위한 소리나 문자 따위의 수단"이라 한다. 우리 문화를 다른 나라에 전하고, 다른 문화를 받아드릴 때 문화적인 토대의 차이로 인해 그 의미를 명확하게 밝히는 언어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근대 개혁가들은 서양문화를 받아드리면서 어떻게 하면 알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다듬을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했으며, 이를 위한 방법이 단어를 올바르게 번역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번역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창의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메이지 유신의 소용돌이 속에서 일본의 문명개화를 이끈 정신적 지도자인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도 그중 한 사람이다. 후쿠자와는 애도막부시대에 태어나 서양문물을 받아드려 일본에 소개하려고 했으며, 연설, 문명, 토론, 민주주의를 번역하였다. 민주주의(democracy를 의미하는 데모크라시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 데모크라티아, 즉 민중(demos)과 권력(kratia)의 합성어이다. 그가 살던 시대는 사농공상의 봉건적인 신분제도 때문에 위에서의 지시는 있어도 밑에서 위로 의견을 나타낼 수는 없었다. 그러한 문화적 토대 아래에서 데모크라시를 하극상으로 번역하였지만, 이후에 민주주의로 바꿨다.

경제를 의미하는 이코노미(economy)는 라틴어 오이코노미아(oikonomomia)에서 유래했다. 오이코노미아는 '집'이라는 뜻의 오이코스(oikos)와 '규칙', '관리'라는 뜻의 노미아(nomia)의 합성어로 '집안 살림을 관리한다'라는 뜻이다. 이코노미를 중국 청나라 말기의 사상가 옌푸(嚴福)는 생계학으로 번역하였다. 반면 일본 유학자 다자이 ㅤㅅㅠㄴ다이(太宰春臺)는 중국 고대 사상에서 경세제민(세상을 경영하고 백성을 구제한다)을 찾아내 그의 저서 <경제록>에서 처음 사용했다.

경영을 의미하는 매니지먼트(management)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매니지먼트는 손을 뜻하는 라틴어 마누스(manus)를 어원으로 하는 13세기 이탈리아어인 말고삐로 말을 다루는 능력을 의미하는 마네기아레(maneggiare)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메니지먼트를 중국에서는 관리학으로 번역한 반면, 일본은 <시경>에 나오는 경지영지(經之營之)를 빌려 경영학으로 번역했다. 기원전 8세기 주나라 문왕은 영대라는 제단을 만들어 건국으로 상징으로 삼으려 했다. 이를 위해 문왕이 측량하고 설계해 집을 지으려고 하니까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왕을 도와 하루 만에 완성했다고 했다.

그로테스크(grotesque)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15세기 말 작은 동굴에서 발견된 섬뜩하고 이상한 느낌의 로마 유적 벽화에서 기원한다. '동굴'이라는 이탈리어로 그로토(grotto), '~풍을' 뜻하는 에스크(esque가 결합하여 그로테스크라는 말이 파생되었다. 그로테스크는 괴상하다, 기이하다, 우스꽝스럽다는 뜻으로 비아냥댈 때 쓰는 단어다.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이 법사위에서 김진욱 공수처장과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출석한 가운데 '그로테스크'란 단어를 사용하면서 논란이 되었다. 국민의힘 김도읍 법사위원장이 기관장을 상대로 그로테스크라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적절치 않다고 비판했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 언어들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선각자들이 서양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에 의해 재창조되었다. 이들은 단순히 언어의 번역이 아니라 선진문명에 대한 철저한 해부와 모방이었다.

정치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정치권에서 사용하는 언어 선택에 좀 더 신중해야 한다. 정치권에도 케이팝의 인기에 편성하여 만든 이름이 개딸(개혁의 딸)이다. 이들은 이재명 대표의 여성 지지자들이며, 대중가요를 틀고 인형탈을 입고 코스프레 하면서 새로운 정치문화선도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재명 의원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의원을 찾아내 수박 표시하여 온라인 린치를 가하면서 실망감을 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단순히 언어 선택도 중요하지만 행동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정치문화는 그로테스크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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