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겨울 사랑
[좋은 시를 찾아서] 겨울 사랑
  • 승인 2023.10.15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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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림 시인

수저를 무겁게 들다 말고

먼 산을 바라보는 노스님 미소처럼

눈의 가슴이 따스하다

보드랍던 땅의 살들이

매섭지 않게, 잔인하지 않게

앞가슴 옷깃 꼭꼭 여미어주던

어미의 손 냄새를 지녔다

미끄러지며 넘어지는 눈은

오르는 산 중턱 산사길

서로 부대끼다 상처 난 댓잎에도

흰 연고 잔뜩 발라주는가

눈의 손은 입 붙은 개구리도

돌 밑에 꼭꼭 숨겨주었다

진회색 망상을 지붕으로 덮고 있는 나

몇 번의 재채기에도 훌훌

나비처럼 날게 하는 입자들

팽팽한 긴장으로 언 입술

양지의 진달래 봉오리에게도

반가이 손을 내밀게 한다

◇반유림= ‘계간문예’ 신인상으로 문단에 나옴. 대구문인협회, ‘형상시학회’ 회원.

<해설> 눈의 가슴이 따듯한 건 겨울이 혹독하리만치 춥기 때문일까? 춥다는 것은 계측의 도구이기도 한, 물리적인 온도계가 알려주지만 실은 시인의 마음이 외롭다거나 무언가 그립다는 어떤 심리의 다름 아닐 수도 있겠다. 수저를 무겁게 들다 말고 먼 산을 바라보는 노스님의 눈에는 눈이 눈으로 보일까. 어쩌면 희미하게 잊힌 어미의 손 냄새가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시인은 알아채고 있음에, 눈은 약이라는 상상 또한 가능한 것은 아닐까? 반유림 시인의 상상력은 지붕처럼 덮어쓰고 있는 망상들마저 나비로 날리는, 그리고는 겨울 끝자락에서 봄을 기다리는 진달래 몽우리의 온기를 손끝으로 느끼고 있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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