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에서 던져진 비닐봉지 하나가
건물과 건물 사이 오르내리다가
비틀비틀 빈터를 살핀다
불협화음은 군중들의 침묵이거나
꼬리 잘려 침잠되는 음표들이다
입 벌린 물새처럼 낯선 파도에 진입하는
당신, 허풍으로 가득 찬 호기도
이젠 잠잠할 때가 된 것이지
한때 푸르렀다, 해도
도시를 찬미하던 무음의 창법에 지쳐
붉게 구겨지면 쓸모를 잃어 가겠지
경계의 넋을 버린 뒤에야
도시의 날 선 구호가 되어
비닐봉지는 펄럭일 거야
점점 다급해지는 사이렌 소리 앞에서도
여유로운 저 날갯짓
◇채자경= 서울출생. 월간 ‘순수문학’ 등단. 형상시학회 회원. 국제펜클럽. 한국여성문인협회. 한국문인협회 회원. 시집 ‘목련꽃 사다리’가 있음. 2023년 제9회 한국문학인상 수상.
<해설> 이 시는 2023년 제9회 한국문학인상을 수상한 시다. 시인은 지금 이념의 대립에 몸살을 앓고 있는 광장을 둥둥 떠다니는 비닐봉지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비틀비틀 살피던 빈터 거기가 광장이고 보면 비닐봉지인 자신은 불협화음과 꼬리 잘려 침잠하는 음표 신세임을 한탄 조로 표현하고 있다. 한때는 입 벌려 파도 속으로 진입하던 물새였지만, 어느새 후줄근해진 비닐봉지라는 걸 시인을 깨닫는다. 광장의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디로 가야 할지, 자신에게 혹은 혼란스러운 역사에게 길을 묻고 있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