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우리 모두 장애인
[대구논단] 우리 모두 장애인
  • 승인 2023.10.1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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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환 전 경산시교육장
가을에는 대구를 비롯해 각 시·군마다 축제가 많이 열린다. 대구에서는‘2023 대구 정원박람회’가 열렸다. 요즈음은 어느 축제장을 막론하고 교통편이 문제이다. 사람마다 자가용을 타고 인산인해로 몰려들어 교통지옥을 이루기 때문이다. ‘낙동강 세계문화평화 대축제’에 갔다가 차가 밀려 행사장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돌아온 지인도 있다. 정원 박람회장은 셔틀버스가 운행된다고 한다. 지하철역에 내리면 바로 환송된다. 낙동강 대축제와 비교된다. 실제로 지하철역에 하차하니 관광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공짜이다. 종점에 내려 팔달교를 건넜다. 이제 행사장인 하중도로 내려가야 한다. 낭패가 생겼다. 계단이다. 몇 계단 안 되지만 장애인은 내려갈 수 없다. 장애인 한 사람이 오던 길로 뒤돌아간다. 허리가 좋지 않은 사람도 고역이다. 유모차에 아기를 태워 온 부모도 마찬가지다. 엄마가 아기를 안고 위험스럽게 내려가고, 아빠는 무거운 유모차를 등에 메어 짐꾼이 된다. 땀을 뻘뻘 흘린다. 대구시에서 여기까지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 디테일이 부족하다. 우리 생활에도 이런 곳이 많이 숨어 있다.

지난봄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와 서울시의 대치가 있었다. 전장연은 그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지하철 탑승 시위를 시도하였고, 경찰과 지하철 보안관은 이를 저지하였다. 서울시에서는 시민의 안전을 위해 불법 행위를 반드시 바로 잡겠다고 강경 대응에 나섰다. 전장연과 서울시의 대립은 수십 일 동안 신문과 방송을 통해 보도되었다. 특히 지하철을 이용하는 일반 시민들은 매일 출근길을 불안하게 보냈다. 이에 일부 시민들은 전장연의 시위 내용을 자세히 모르는 상태에서, 그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하였다. 평소에 전장연을 이해하고 호의적이었던 사람들마저 ‘이제까지 쌓아 올린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나쁘게 하는 처사이다’ ‘장애인에 대한 순수한 사랑을 오염시킨다.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우리의 노력을 힘들게 한다’고 우려하였다.

우리는 장애인 관련 시설들을 ‘비장애인 관점에서 마련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장애인 시설은 찾기 쉬운 센터에 있지 않고 혐오시설인 양 멀리, 한쪽 구석에 있다. 다른 도시에 가면 지하철 승강기가 어디에 있는지 한 참 허둥대기도 한다. 허리가 좋지 않은 사람은 계단을 올라갈 때도 힘들지만 내려올 때 충격의 강도가 더 높다. 에스컬레이터는 상행선에는 있고 하행선에는 없는 곳이 있다. 장애인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 운전 초보 수준일 때다. 시골길을 달렸다. 전방에 촌로 넷이 일렬횡대로 걸어가고 있었다. 속도를 줄였다. ‘차 소리가 들리면 비키겠지’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나 그들은 그대로이다. 무슨 재미있는 일이 그리 많은지 웃고 떠드느라 정신없다. 크랙 손을 올렸다. 반응이 없다. 더 크게 울렸다. 우왕좌왕하면서 비켰다. 넷 중 셋은 비켰지만, 한 사람은 퍽 느리다. ‘차의 속도로 보아 차가 곁으로 가면 비켜지겠지’ 예상 운전을 한 거다. 차가 그의 옷깃을 스친 것 같다. 그가 넘어졌다. ‘아이코 사람 죽네’ 그의 목소리는 산골짜기를 진동하였다. 옆에는 흰 지팡이가 버려져 있었다. 아!, 그는 같은 동네에 사는 앞 못 보는 노인이다. 친구의 형이다. 다른 이들도 같은 동네 사람들이다.

다른 이들이 ‘이 영감 가짜 장님’이라 하면서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를 싣고 달렸다. 그의 부인이 병원으로 왔다. 부인은 ‘내일 장님협회 회장이 온다’고 협박을 했다. 다치지 않은 것 같은데 당사자가 아프다니 할 말이 없다. 그의 동생이 왔다. 형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프지도 않으면서 왜 아프다고 하느냐, 의사가 괜찮다고 하는데 빨리 퇴원하자. 전번에도 버스 운전사를 괴롭히더니….” “너는 형 편을 안 들고 친구 편을 드느냐, 나쁜 놈아” 그는 ‘엉엉’ 우는소리를 했다. 사실 그는 동네에서 ‘장님이 아닌데 장님 행세를 한다’는 좋지 않은 소문이 나 있었다. 그 일은 그렇게 끝났다. 그러나 ‘가짜 장님’이라는 동네 소문에 의지하여 쉽게(?) 끝낸 것 같다. 가짜 시각장애인이든 아니든 지팡이를 짚는다는 것은 자기 신체만으로 걷기 힘들다는 뜻이다. 스스로 서기 어렵다는 뜻이다. 누군가 지팡이 혹은 목발을 사용한다면 그는 장애인이다. 그의 처지에서 그를 생각하지 못했다.

고대 그리스의 테베에 스핑크스(Sphinx)라는 괴물이 있었다. 스핑크스는 바위산을 지나가는 행인이 있으면 반드시 수수께끼를 내었다, ‘목소리는 하나인데 네 다리, 두 다리, 세 다리로 되는 것이 무엇인가?’. 답은 인간이다. 인간은 어렸을 때는 손발로 기어가고, 어른이 되면 두 발로 걸어가고, 늙으면 지팡이를 짚는다. 사람은 누구나 늙고 병든다. 누구나 장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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