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인문학] ‘슬픔’을 인내하는 마음 한 조각
[치유의 인문학] ‘슬픔’을 인내하는 마음 한 조각
  • 승인 2023.10.19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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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삼 대구한의대 교수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중략~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이 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서정시인 정호승 시인의 시 '수선화에게'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이며 필자의 심상 시치료에 가장 부합하는 시라서 자주 인용, 애독하는 편이다. 정호승 시인의 시 속에는 슬픔, 외로움 등의 메타포가 보석처럼 숨어있다. 그리고 위로와 치유로 마무리를 한다. 그래서 귀하고 빛난다.

상담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호소하는 자신의 고통은 슬픔과 외로움이다. 그것이 뽀족한 송곳이 되어 스스로를 공격하는 무기라고 했고 그것 때문에 아프다고 했다. 사회적 가면에 가려져서 그렇지 우리들 대부분은 그런 아픔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래서 필자의 책 <128분, 나를 바꾸는 시간>에 '조금 덜 아픈 사람이 조금 더 아픈 사람을 안아주고 위로하며 사는 게 인생이다'라는 표현에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셨다. 맞다. 살다보면, 나이가 들다보면 301호에 사는 영숙이네와 302호에 사는 미숙이네도 모두 아픔을 가지고 산다는 걸 깨닫는다. 내 심장에 박힌 작은 돌덩이 하나를 내려놓는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따가운 가을 볕 때문에 손으로 얼굴을 가려야 늦더위를 피할 수 있을 즈음 시인과 4시간 정도 깊은 사색의 대화를 나누었다. 의성으로 함께 토크콘서트를 가기 위해 차 안에서 나눈 오롯한 대화였으니 참 깊숙이 들어갔다. 예술치유와 심리상담을 전공한 필자와 평생을 함축된 언어로 스스로 깊은 대화를 나눈 시인과의 대담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갔을까? 무뚝뚝한 사내들 둘이 술도 없이 어떻게 네 시간이나…, 과연 대화가 가능할까? 그것도 대낮에? 그런 세인들의 시선과 걱정에도 불구하고 대화는 즐거웠고 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행복했다.

'시인은 고독을 어떻게 다룰까?' '시인은 슬픔을 어떻게 극복할까?' 이 화두가 필자가 시인을 만나기전 반드시 물어야할 필수 출제문항 같은 질문이었다. 그런데 딱, 만나는 순간 질문을 할 이유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첫 대면에서 '아~ 이 질문은 의미 없구나'를 직감했다. 왜냐하면 시인의 맑은 표정에서 모든 걸 읽었기 때문이다. 의성 봉양온누리터로 가는 길은 특별했다. 따스한 가을 햇살을 온몸으로 맞기도 했고 저녁노을과 잘 어우러진 황금색으로 물든 가을 들녘을 함께 보면서 노년의 제비와 장년의 제비는 끝없이 조잘거렸다. 순간, 붉은 저녁 노을과 황금빛 들녘에 반사된 시인의 얼굴빛이 고승의 얼굴보다 더 맑게 보였다. 더 이상 무슨 질문이 필요할까? 이심전심이었다. 질문도 없었고 답변도 없었다. 웃음 속에 모든 질문과 답변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첫 눈에 서로를 알아보는 특별한 무엇이 있다고 한다. 어쩌면 필자가 15살이나 더 많은 큰 형님뻘 시인과 첫 눈에 가볍고 묵직한 담론들을 주고받을 수 있었던 것은 '저녁노을'의 감성을 사랑하고 '슬픔'을 공통으로 언어적 묵상과 인문학과 예술적 묵상으로 표현해본 사람들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중국 송대 문인 소동파가 당대 최고의 서화가 왕유의 작품을 보고 '시중유화 화중유시(詩中有畵 畵中有詩,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라고 말한 것은 시와 그림이 한 몸 이란 걸 진작에 알았기 때문이다.

조선 동국진경의 완성자 겸재 정선이 시인 사천 이병연과 형제 이상의 정을 나눌 수 있었던 것도 저녁노을의 아름다움과 슬픔미학을 첫 눈에 알아본 감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시에는 슬픔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슬픔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토크콘서트의 말미에 화두처럼 던진 질문이다. 자신의 감정을 60여 년 통찰한 사람은 많지 않다. 그걸 화두처럼 문자로 육필한 시인은 더욱 드물다. 시인의 대답은 놀랍게도 담백했다.

"견디는 것입니다"

30호 화선지에 수만 가닥의 털을 묶은 붓 한 자루로 꾹 눌러 농먹의 점을 찍은 노화가의 필묵처럼 그의 대답은 담담했다. 그리고 중얼거리듯 한 문장을 더 덧붙였다.

"이겨내는 것입니다"

이 두 문장으로 시인은 슬픔의 모든 해법을 완벽히 설명했다. 70대 중반의 종교인 같은 맑은 얼굴을 가지고 툭 던지는 두 문장의 힘이 이렇게 위대한지 몰랐다. 김수환 추기경의 미소도 성철 스님의 미소도 그러했을 것이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어쩌면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도 이런 슬픔의 고갱이 속에서 나왔을 것이다. 수선화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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